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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tional Doragraphycs/시사

사진은 예술이 아니다?




19세기 초에 사진기가 발명된 이후, 초기 사진사들은 어떻게 하면 사진을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릴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사진이 예술의 한 분야가 된다는 것은 사진의 지위를 격상시키는 것을 의미했고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예술가라는 권위와 막대한 지원을 얻을 수 있기 떄문이었다. 그러나 보수적인 예술계는 사진을 처음에 인정하지 않았다. 보들레르는 한때 사진은 재능 없는 화가들이나 하는 회화의 대체 수단 정도로 여기기도 했다.

 

 일반적인 화가들과 다르게 사진은 예술성을 갖고 있으면서도 상업적인 용도나 정치적인 용도로도 쓰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사진이 갖고 있는 미디어적인 성격 때문이었다. 글과는 다르게 사진은 말하고자 하는 바를 '한눈에' 보여준다. 이것은 사진이 갖고 있는 위력이다. 사진이 다큐멘터리와 깊은 연관을 갖게 된 것은 어쩌면 필연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진이 예술이 될 수 있을까? 사진은 직접 손으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사진기라는 기계 문명과 자본이 잉태한 도구를 통해 만들어진다. 또한 미술가들이 미학을 연구하고 삶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할 때 사진가들은 사진을 찍는 기술을 연마해야 했다. 물론 회화 작가들이 자신들의 도구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진가는 사진기라는 기계를 능수능란하게 다룰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은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화가들이 자신이 경험한 세상을 나름의 화법으로 재구성한 것이 미술 작품이라면, 사진은 그들이 본 시야 그대로를 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사진기를 얼마나 잘 다루는가 라는 문제는 결국 자신이 본 그대로를 담아내기 위한 방법의 연구다. 사진이 자신이 본 그것을 담는 일이라면 미술가들은 자신이 본 것을 토대로 자신의 세계를 재정의한다. 그것은 분명 회화와 사진이 다른 점이다.

 

 그런 면에서 사진은 창조 행위가 아니다. 그리고 모방 행위도 아니다. 사진은 현상 그대로를 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사진은 언어이며 말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미적 경계에 속한 것이 아니다. 마치 언어를 사용하는 예술 행위와 같다. 우리가 언어 속에서 어떤 아름다움을 느낄 수는 있겠으나 언어 그 자체는 예술적 태생이 아닌 것처럼,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창조'가 아닌 '발견'이다. 그리고 발견한 사건을 타인과 공유하는 행위이다. 우리가 일상에 보는 것, 혹은 익숙한 물건에서 느껴지는 위화감이나 놀라움, 이러한 시선을 고정시켜논 결과물이다. 사진은 우리에게 말을 한다. 저 사람은 무엇을 하고 있어. 슬퍼보이는군, 뭐야, 엄청나게 큰 산이 있네!

 

 발견은 미적 행위가 아니다. 새로운 것의 발견이든 익숙한 것의 발견이든 그것은 어떤 것을 보고 그것을 다른 이들과 공유하는 것이다. 사진은 때로 거짓말을 하지만 없는 것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발견된 것을 종이 혹은 인상된 매체 위에서 단지 보여줄 뿐이다. 따라서 사진은 철학자나 예술가처럼 세계를 재구성하는 시도를 하지 않는다. 다만 보고 싶은 것을 더 잘 관찰하려는 노력을 할 뿐이다. 만약 사진 속에서 어떤 아름다움을 발견한다면 그것은 피사체가 가지고 있는 아름다움이지 사진 그 자체가 예술성을 갖고 있다고 말 수 없다. 사진이 아름답다고 말하는 것과 사진 속 피사체가 아름답다고 말하는 것, 이 두 가지에는 큰 차이가 있다. 사진은 삶 속에서 보여지는 가치로운 것들을 잠시 이곳에 빌려왔을 뿐이다. 사진은 그러므로 예술보다 겸손한 행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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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 그래픽아트와 사진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추세이다. 필자는 초보 사진가로서 식견이 짧지만, 사진과 그래픽아트를 엄연히 구분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후보정은 엄연한 사진행위의 일부이고 후보정에서 작가가 의도하고자 하는 방향으로 사진을 인화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권리일 것이다. 물론 그래픽 아트가 사진을 이용한 색다른 시도가 왕성한 것은 사실이며 이것은 사진의 기본적인 기능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사진을 가지고 예술을 한다고 하여도 사진을 찍는 행위 그 자체는 예술이 아니다. 마치 시인이 언어를 가지고 예술을 한다고 해서 언어를 예술이라고 하지는 않는 것처럼. 그리고 시인이 오로지 자신의 작품만을 위해 언어를 사용하지는 않는 것처럼, 사진을 예술이라는 좁은 테두리에 가두기는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