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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tional Doragraphycs/시사

애국주의를 욕하지 마라

 문화평론을 겸하는 진중권 씨가 심형래 감독의 '디워'를 애국주의에 호소하는 불량식품으로 묘사했습니다. 확실히 디워의 흥행 이면에는 바로 애국주의적인 마케팅이 큰 효과를 거두었습니다. 애국주의는 기성 세대를 중심으로한 하나의 사상적 기조라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물론 애국주의는 어느 곳이나 희미하게 존재하기 마련이고, 애국주의적인 풍조를 비판한다고 해서 '애국'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진중권씨가 비판한 '애국주의'란 말 그대로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을 문제로 삼은 것이 아니라 '애국' 속에 가려진 탈자유, 몰상식, 반민주적인 분위기를 혐오하는 것이겠죠.

건물 위로 또아리를 튼 용가..아니 디워의 드래곤...전 왜 자꾸 올갱이 내장이 생각나는지 모르겠습니다.




 디워의 흥행에서만 애국주의가 사용된 것은 아닙니다. 모든 '-주의'가 그렇지만 사상적 무기들은 핵심적인 개념들만 적절히 사태에 배분할 수만 있다면 어느 곳에서든 쓰일 수 있는 법이지요. 민족에 대한 자긍심과 개별성도 민족주의의 한 면모겠지만 배타적이고 파쇼적인 성격도 민족주의의 또 다른 모습인 것처럼요. 공원에서 밥타먹는 어느 어르신에게 요새 사는 것이 어떠냐고 물으니까 "FTA 반대시위 때문에 나라꼴이 엉망이다"라고 한탄을 하는 우스갯소리를 들어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당장 본인의 거취도 불안한 사람이 FTA 운운하면서 나라 걱정을 하는 사람들, 혹자는 이들을 광신적 보수주의자라고 비웃을런지도 모르겠습니다. 

 애국주의의 사례는 다양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애국주의가 반드시 빠지지 않는 분야 중 하나는 스포츠입니다. 금메달리스트에게 지겨우리만치 국위선양의 뻐꾸기를 날리는 것도 모자라서 허락도 없이 그들을 구국영웅쯤으로 추겨세워 올립니다. '태극전사', '파이팅 코리아' 등 초등학생이 보는 만화에나 쓰일 거 같은 문구로 치장한 월드컵 홍보를 봐도 잘 알 수 있습니다. 베이징 올림픽에서는 김연아양과 장미란양이 '자랑스런 대한민국'의 기수가 되었죠. 마치 끼워팔기를 하는 것처럼 메달리스트들의 얼굴에 대한민국의 국기를 오버랩하는 수법, 여러분은 이미 익숙하실 겁니다. 



 애국주의에 대한 열광은 반이성주의, 전체주의적인 성향을 갖고 있습니다. 애국이라는 가치에 함몰된 시야는 좁아지기 마련입니다. 전체의 이익이 개인의 이익보다 앞선다는 생각이 마치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이는 순간 애국주의는 기본적으로 다수에 의한 대수에 대한 폭력이나 금기로 이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애국주의적인 성향을 갖고 있다고 무조건 경멸하거나 조잡한 감성주의라고 비난할 것만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낮은 수준의 이성에서만 가능할 법한 파쇼적인 애국주의는 많은 대중들에게 효과가 있다는 것입니다.

 기본적으로 애국주의는 국가의 흥망과 개인의 이해관계를 일치된 것으로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물론 모든 국가 형태는 개인의 삶에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말하는 경우는 애국주의자들은 국가과 개인의 흥망을 보다 직접적인 관계로 '인식'한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나라가 잘 살아야 개인이 잘 산다'는 말입니다. 

 이 말이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지만 현대의 기성세대에게 있어 애국주의의 마력이란 강력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군부 정권을 거치면서 나라 경제가 비약적인 발전을 하는 것을 목도하는 지금의 기성세대들은 국익의 증가가 곧 개인의 물질적인 풍요라는 등호를 갖기에 충분하지 않을까요? 마치 행동주의 실험과도 같이 '국가가 발전하니 그 밑에서 일하던 우리들도 이제 잘 살고 있다.'라는 신념을 가진 것을 전혀 납득할 수 없는 건 아닐 겁니다. 

 제가 추측하건데 애국주의나 파시즘, 전체주의와 같이 국익을 사익보다 우선으로 하는 풍조는 대개 발달이 급격히 진행된 나라에서 일어나는 것 같습니다. 독일은 나치즘이 일어나고 나서 기적과 같은 부흥을 맞보았습니다. 1차 대전에서 패전한 이후 독일은 나치당과 함께 엄청난 발전을 경험했고 이는 독일 국민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안겨주었습니다. 국익=사익이라는 등호를 경험한 이들에게 나치즘은 어쩌면 자연스럽게 조성된 분위기도 어느 정도 있을 것이라고 봅니다. 



 열렬한 애국주의는 이성을 마비시키고 시민의식을 저급한 수준에 머물게 합니다. 그러나 애국주의적인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지적으로 저급한 것일까요? 어쩌면 그들에게 애국주의는 국가와 그들 자신을 가난에서 벗어나게 한 성공 신화일지도 모릅니다. 성공 신화 속을 살아온 어느 개인이 '지금까지 나라가 잘 살아서 우리가 잘 살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란 생각을 하는 것이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