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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tional Doragraphycs/시사

복수심에 찬 자들이 소설이나 쓴다.

복수심에 찬 자들이 소설이나 쓴다.

 먼저 일러두어야 할 것이 있다. 하나, 나는 음모론을 좋아하지 않는다. 둘, 그러나 진실을 밝히는 모든 행위를 음모론이라고 단정 짓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진실은 언제나 눈에 보이는 사태와 그 이면에 발을 한 쪽씩 담그고 있다. 즉 눈에 보이는 사안은 그것 너머에 어떠한 진실을 비추고 있지만 그 현상 자체만을 본다면 그저 시간 순으로 일어난 현상만 있을 뿐이다. 뉴스에서 떠드는 많은 이야기들은 분명 진상의 일부분을 말해주고 있다. 그러나 뉴스만을 좇는다면 당신은 아무런 이해도 하지 못한다. 
 
  나는 지금 천안함 사태와 더불어 북한을 언급한다는 것이 누구의 아이디어인지, 그 전략의 최종 수혜자가 누군인지 말하고 있는 것이다. 천안함이 어떻게 침몰하였든, 그에 대한 구체적인 사안은 과학과 역사가 밝혀내겠지만 적어도 지금 여기에 벌어치는 현상은 정치적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이러한 가정을 해보자. 실제로 북한의 수중 폭파원이나 반잠수정이 잠입하여 천안함을 격침시켰다 치자. 도대체 북한이 실질적으로 얻을 수 있는 이득이 거기에 있는가? 단지 서해교전 때의 앙갚음일까? 그럴 리는 없다. 북한도 엄연히 하나의 국가이며 국제적인 사안들을 정치적으로 다루고 또 해석할 것이다. 피해를 입었다고 무작정 보복을 감행한다는 발상은 이경규 감독의 모 영화 속에서나 가능한 논리이다. 아무리 북한의 전략가들이 창의력이 부족하다고 해도 단지 "원수를 갚는" 스펙터클함을 맛보기 위해서 쏟아질 국제적 비난과 외교적인 압력을 감안하면서까지 그러한 공작을 하려고 할까? 이 질문에 아니오, 라고 대답하는 것이 더 합리적으로 보인다. 남북 문제는 동네 코흘리개들끼리 싸움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천안함 사태는 북한에게 불리한 작용을 한다. 급속하게 냉각되는 남북 문제는 북한을 정치, 경제적으로 고립되게 만든다. 천안함 침몰 초반에 북한은 말 그대로 "숨 죽이고" 사태를 지켜보고 있었다. 까딱 밑보이면 이 말도 안되는 해프닝에 휘말릴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하는 추측을 해본다. 그런데 요즘 언론이 북한을 지목하게 되자 적극적으로 이를 부정하는 북한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만약 북한이 했다면 혁명 용사 동지의 "혁명적 파괴공작"을 자랑할 일이지 침 튀겨가며 부인할 일은 아니다. 
 
 곧 치루어질 선거전에서도 반북 감정이 강해지면 북한에게도 달갑지 않은 소식이 된다. 내가 추측하는 바, 북한 정부의 대남 전략의 핵심은 친북 정권이 나와서 대북 지원을 더 받아내는 것이다. 소위 김정일 국방위원장님께서 몸소 남한의 대통령를 천명한다는 황당무계한 논리도 조금은 일리가 있는 말이다. 어쨋거나 남한의 선거는 북한에게도 중요한다. 이 즈음에 반북은 표심을 보수당, 거론하자면 한나라당에게 몰릴 수 있게 된다. 이렇게 북한이 자기 얼굴에 침을 뱉는 행위를 할까? 대답은 역시 아니오, 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천안함 사태를 북한이 했다고 쳐서 득 보는 자들은 누구인가? 확실한 것은 북한은 천안함 사태에서는 아무런 "건져 먹을 게" 없다. 오히려 남한의 보수적 정치가들에게 수랏상이 올라갈 일이다. 선거철이 되니 그런 거겠지만, 북한이라는 외적을 만들어서 내부의 갈등 상태를 잠재우려는 고전적인 전략이라는 것이 내 결론이다. 지난 주 TV에 방영한 토론대회가 그를 반영한다. 흔히 우리가 "우"라고 칭하는 두 개의 정당이 확실한 증거도 나오지도 않은 지금, 천안함 사태와 북한이 연관이 있음을 강력히 주장했다. 한나라당은 여당으로서 안보의 초당적 협력을 운운하면서 그 반대편 당들을 국론 분열자로 몰았다. 북한이 실제로 관계가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주목할 것은 천안함을 그들의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안보 문제나 대북 관계가 긴장되면 표심은 -특히 연령이 높아질 수록- 보수적 정당에 직중되는 경향을 그들은 알고 있었다. 반대로 민주당은 노선적으로 친북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으므로 그들에게 대북긴장은 선거전에 유리하게 작동되지 않는다. 그 밖에 좌파적 성향을 갖고 있는 정당은 실제로 친북 성향이 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좌파적 성향이 곧 친북적 성향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일부 우파들의 억측일 뿐이므로- 일단 집권 여당에 대한 안티 테제와 국방비 증강에 대해 경제적 차원에서 불만을 가지고 있으므로 북한 관계설을 성급한 판단이라고 일축한다.

 그리고 대북 관계를 긴장시켜서 표심을 얻겠다는 그들의 작전은 유효하다. 4월 8일자 프레시안 뉴스의 기사 통계에 의하면 당시 여론 통계로 46%정도가 북한 공격설을 공감한다고 한다. 그 후로 북한과 관계가 있다고 '해석 가능한' 증거들이 더 발견되었으니 장담할 수 없지만 공격설을 지지하는 수치는 더 높아졌을 것이다. 그 대상이 북한이라니 어쩐지 좀 촌스러운 감이 있다. 비록 '왕년에 잘 나갔다'지만, 어쨋거나 현재 북한은 매년마다 몇 천, 몇 만명씩 기아로 사망하는 최빈국 중에 하나인데 말이다. 한편으로, 이런 반북 감정이 대중들의 뇌리에 반공 이데올로기가 얼마나 강하게 박혀 있는가를 반영하는 것 같아 씁쓸하기도 하다. 

 
 황지우 시인은 어느 시에서 "복수심에 찬 자들이 소설이나 쓴다" 라고 고백했다. 그 말은 옳다. 복수심에 찬 자들이 소설이나 쓴다. "복수"를 당할 자들이 그렇게 말한다. 이렇게 몇 십명의 목숨을 앗아가는 사건 너머로 이를 정치적인 장치로 이용해 먹으려는 자들이 있다. 그리고 그 장단에 놀아나지 않는 힘 없는 사람들이 혼란스러운 진실 속에서 소설이나 쓴다. 황 시인 말대로 이제 부르주아들은 만고에 떳떳하다. 북한이 했다는 명확한 증거가 없어도 몇 대형 언론사에서는 북한과 천안함을 동일 선상에 놓고 이야기를 꺼낸다. 메이저 신문 기자들의 걸출한 필력이면 세탁기에서 꺼낼 때마다 양말을 한 짝씩 분실하는 것도, 라면을 샀는데 그 안에 분말 스프가 안들어있는 것도 '이게 다 북한 때문이다'로 귀결이 가능할 것이다. 내가 볼때 천안함과 북한의 거리감은 이와 다르지 않다.
 
 사족을 붙이자면, 나는 천안함이 어떠한 방식으로 침몰되었던지, 그것을 굳이 알고 싶어하진 않는다. 그런데 국방부와 미군 사령부의 '기밀주의' 행태는 노골적으로 "우리는 지금 무언가 상당히 구립니다" 라고 말하고 있다. 또한 지난 번 각 당의 합의 하에 발족하기로 했던 '특위' 구성 때에도 한나라당이 고의적으로 늑장을 부리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대체 무엇을 왜 숨기는 지는 모르겠다. 어쨋거나 시민 단체나 대중의 힘을 얕잡아 보는 그들의 안하무인적인 태도가 점점 심해지진 않을 지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