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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tional Doragraphycs/시사

미궁 속에 갖힌 산업 예비군의 정치의식

 지금 대한민국의 대학생들은 두번 속는다. 한번은 이념이라는 허울에 속는다. 이념이라는 것은 흡사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계의 거시적 모습, 즉 정치를 흡사 형이상학적 개념으로 승화시킨다. 좌파니 우파가 마치 선과 악의 싸움인 것처럼 연출하고 북한의 공산주의와과 남한의 민주주의의 대립으로 왜곡하거나 혹은 소수의 사람들이 거대한 악에 저항하여 정의를 수호해가는, 드라마틱한 영상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요소들은 개인주의와 다소 유물론적인 세계관에 입각한 대학생들에게는 별로 입맛 당기는 것들이 아니다. 그들은 젊은 혈기로 세상을 뒤집어 보겠다는 바보들이 아니다. 원칙과 현실이 어느 정도 불합리하다는 것도 알고 있다. 따라서 그들은 정치적 이념이나 신념에 대하여 염증을 느낀다. 그들은 정치가 어떻고 민주주의가 어떻고 하는 소리를 흡사 사이비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하는 망상 정도로 생각한다. 정말 필요한 것은 현실적인 시각과 대응이라고 생각한다. 기브 앤 테이크의 원칙을 지켜서 내가 무언가 세상에게 바라는 것이 있는 만큼, 세상이 나에게 필요로하는 것을 준비해야 한다는 얘기다. 그들의 논리는 단순하고, 또 단순한 만큼 근거가 있다.
 
 따라서 대학생들은 급격하게, 정치에 대한 비판정신을 잃어간다. 정치에 대한 비판은 곧 이념의 추종이고 이념의 추종이란 제 앞가림도 못하는 헛소리라고 생각한다. 맞는 얘기다. 만약 현실을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한 채, 어느 이론, 어느 사상이 정의로운 것이라고 아우성치는 것은 바보들이나 하는 짓이다. 현실이야 어떻든 내가 진리라고 외치는 것은 사이비 종교에서나 가능한 이야기이다. 우리가 현실 속에 살기 때문이다. 이에 세상의 목소리들, 각종 미디어들이 혼란을 가중시킨다. 국가적 위기 때마다 정부는 민족주의나 애국심을 고취시키면서 나라가 부강해져야 한다는, 그러기 위해선 국민들이 허리띠를 졸라매고 기업을 살려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정치는 이념의 전쟁터가 아니다. 정치는 각계 각층의 이해관계와 배분을 조정하기 위한 조율 기구이다. 어떤 정책은 기업에게 유리하고 어떤 정책은 임금 노동자에게 유리하다. 어떤 정책은 부자에게 좋고 어떤 정책은 가난한 사람에게 좋다. 정치는 이런 것들을 다룬다. 이념이나 이런 것이 껴들 새가 없이, 지극히 현실적인 이익의 싸움이다. 흡사 초등학교 때 배식으로 나오는 빵과 우유와 마찬가지이다. 정해진 인원 수보다 조금 더 많이 배식량이 왔을 때 그 남겨진 빵과 우유를 누가 먹느냐는 문제이다. 다른 것이 있다면 초등학교 학급은 인원 수가 적기 때문에 서로의 충분한 대화와 양보를 통해 문제를 적절히 해결할 수 있지만 그 스케일이 국가 규모로 커지면 때로 대화와 협의가 아니라 말싸움과 육탄 공세까지도 동원된다. 그렇게 해서라도 빵과 우유를 먹을 수 있다면 말이다.
 
 이렇게 정치란 놈의 속성을 파악해도 우리는 다시, 정부와 기업들의 전략에 속는다. 이른바 성장 논리인데, 이것은 분명 거짓은 아니다. 정부의 경제적인 개입이 많을 수록 분명 기업이나 개인의 경제 활동은 침해를 받는다. 기업이나 개인의 경제 활동이 침해를 받으면 자본이 원활하게 돌아가지 않으므로, 화폐 재생산의 속도과 규모가 축소된다. 사업가의 이익 부진은 그에게 경제적으로 예속된 노동자의 수입이 줄어든다는 것을 의미한다. 소비가 촉진 되지 않으므로 소비를 원동력으로 돌아가는 자본주의가 쇠퇴하게 된다. 어느 정도는 일리가 있는 소리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난 IMF 때 실직하고 '쫄딱 망한' 국민들의 주머니에서 꺼낸 금으로 대기업들이 말아먹은 빚을 갚았다. 우리는 자국의 기업이 도산하는 것을 강박적으로 두려워 하기 때문이다. 나는 IMF 때 나라를 위해 기부한 국민들을 찬사한다. 그러나 그렇게 성장한 기업들이 지금은 IMF 이전보다 더욱 거대한 기업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회 하층의 생활고는 여전하다. 그런데도 여전히 국가와 기업은 경제가 어려우니 계속 기업이 성장, 성장 해야한다고 말한다. 세계적인 경제가 어려워졌고, 또 미국의 대기업들도 쓰러져나가는 판에 이런 위기의식도 일부분 맞는 얘기지만, 어쨋거나 그들은 기업과 나라에게 돌아오는 피해를 고스란히 국민에게 전가하는 꼼수를 쓰고 있다. 현명한 사업가는 자기 돈으로 사업을 하지 않는 법이다.
 
 대학생들은 이념적인 문제를 기피한다. 그리고 현실적인 사안을 중시한다. 이것은 반만 맞고 반은 틀리다. 이념적인 것에 휘둘리지 않으려 하지만 그들은 결국 이념에 제대로 속아넘어가고 있는 것이다. 정치는 이념이 아니다. 정치를 이념적인 싸움이라고 생각하는 자체가 이미 속은 것이다. 정치판에는 빨갱이도 없고 애국자도 없다. 비정규직이 정규직으로 전환되는가 마는가, 최소임금을 올릴 것이냐 내릴 것이냐, 세금을 적게 거둘거냐 많이 거둘거야, 이런 문제다. 기업과 부자들은 수만가지의 논리로 자기 밥그릇이 더 커야한다고 주장한다. 그에 비하여 대부분 예비 임금 노동자가 될 운명인 대학생들은 무엇을 주장하고 있는가? 더 열심히 취직 준비를 하는 것도 분명 답이지만, 왜 취직 시장의 근본적인 문제를 유리하게 이끌어야 한다는 생각은 못하는가? 이런 문제를 생각해볼 때,그들은 눈에 보이는 사안을 중시하면서 거시적인 국면을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기업 성장이 중심이 되야 경제가 활성화된다는 논리도 항상 참인 것은 아니다. 현재 성장과 분배가 정당하지 못하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 되었다. 노동 시장의 유연화와 국제화, 항상 기업의 편을 들어줄 수 밖에 없는 힘 없는 국가 권력은 우리의 유일한 상품인 노동력을 헐값에 팔 수 밖에 없게 만들었다. 또한 친기업 정책이 반드시 경제 안정에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다. 지금의 미국의 예가 그렇다. 미국은 지나치게 자본 시장을 유연화한 탓에, 금융의 규제를 사실 상 포기해 버렸고 따라서 메인 스트릿의 경제 주도권은 월 스트릿에 넘어가 버렸다.[각주:1] 금융의 투기 현상은 경제에 거품을 만들고 거품은 필연적으로 터지기 마련이며 신용 붕괴로 인한 거대한 경제 혼란을 일으킨다. 이것이 정부를 믿고 까불어 대던 기업들이 경제를 '말아 먹는 방법'이다. 그리고 그 결과 정부의 세금은 기업들이 벌려논 빚더미를 청산해주는 데 쓰이고 있다.
 
 대기업의 성장이 반드시 많은 분배를 약속하지는 않는 문제도 있다. 국제적인 기업의 성장이 자국 내 상품 제조와 유통에 연결되어 있지 않다면, 즉 외국의 값싼 노동력을 이용한 생산 방식을 채용하거나 금융에 투자를 집중하여 그 차익을 얻는 방식으로 성장한다면 중산층의 발전은 기대할 수 없다. 유신 정권 체제부터 노동자들을 강력하게 억압했던 풍조마저도 이에 일조한다. MB는 기업의 성장이 곧 채용의 증가라는, 지극히 단순한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으나 위와 같은 이유로 국민 총 생산량의 증가와 기업 성장이 분배와 직결되지 않는다. 기업은 기업 나름대로 국제적인 독점 게임에 사활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에 절대 자신이 손해보면서까지 분배를 해줄 리가 없다. 어쨋건 그들은 영리 목적의 조직이 아닌가? 결국 우리의 몫은 우리가 챙기지 않으면 아무도 챙겨주지 않는다는 얘기다.

 
 이런 것들을 생각해볼 때 결코, 정치는 우리와 멀지 않다. 시위와 운동이라는 극단적인 상황이 아니더라도 정치적 감각이 살아 있어야한다. 국민들의 정치 의식은 선거뿐만 아니라 시민 단체의 위력으로도 드러난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중요한 것은 '위임'이 아니라 '참여'이기 때문이다. 선거가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일종의 세레머니로 그치는 까닭은 국민들의 지속적인 참여와 압력이 없었거나 혹은 미약했기 때문이다. 또한 다원적인 국민의 목소리는 소수 이익 집단의 독주를 저지하는 가장 유효한 수단이기도 하다. 그리고 어려워진 경제와 점점 악화되는 취업난과 같은, 사회의 가시적인 악조건을 극복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지만 그러한 해프닝의 배후에는 어떠한 경제적, 정치적 움직임이 있는지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부단한 지적 노력과 관심이 필요하다. 우리를 둘러싼 자본주의의 매커니즘을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어야만 부패한 일부 국가 권력과 재벌들의 재력, 매스 미디어의 '합작'으로부터 자유로운 시각을 견지할 수 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정치는 정신적 유희물도 아니고 선악의 대결도 아니고 정의 구현도 목적이 아니다. 사람은 빵만으로 살 수 없다는 말은 적어도 정치판에서는 제외된다. 빵을 먹어야지만 사람은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것이다. 이익에 대하여 재빠르게 움직이는 상류층들에 비해, 오히려 못먹고 못사는 사람들이 천하태평이다. 취업이 안되고 봉급도 적어서 힘들다고 노래를 부르는 대학생들이 당신들을 둘러싼 경제와 정치에 대해서는 정말 하나도 아는 게 없다. 그게 내가 목격한 오늘날 대한민국 청년들의 정치의식 수준이다. 당신의 무지와 무관심이 당신을 비정규직으로 내몰고, 박봉에 시달리게 하고, 구조조정을 걱정하게 만들고, 젊은 날의 대부분을 취직을 하기 위해 낭비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제는 정말 똑똑하게 굴어야 할 필요가 있다. 똑똑한 척 말고.
  1. http://generis.co.kr/script/powerEditor/pages/%EB%89%B4%EC%9A%95%EC%9D%98%20%EB%A9%94%EC%9D%B8%20%EC%8A%A4%ED%8A%B8%EB%A6%BF%EC%9D%80%20%EC%A3%BC%EB%A1%9C%20%EC%A0%9C%EC%A1%B0%EC%97%85%EC%97%90%20%EA%B4%80%EB%A0%A8%EB%90%9C%20%EB%B9%84%EC%A7%80%EB%8B%88%EC%8A%A4%EB%A5%BC%20%EC%9C%84%EC%A3%BC%EB%A1%9C%20%ED%95%98%EB%8A%94%20%EA%B1%B0%EB%A6%AC%EC%9D%B4%EB%8B%A4.%20%EC%9E%84%EA%B8%88%20%EB%85%B8%EB%8F%99%EC%9E%90%EC%9D%98%20%EC%88%98%EC%9E%85%EC%9D%80%20%EC%9B%90%EB%A3%8C%EC%9D%98%20%EA%B0%80%EA%B3%B5,%20%EC%83%81%ED%92%88%EC%9D%98%20%EC%A0%9C%EC%A1%B0,%20%EC%83%81%ED%92%88%EC%9D%98%20%EC%9C%A0%ED%86%B5%EA%B3%BC%20%ED%8C%90%EB%A7%A4%EC%97%90%EC%84%9C%20%EB%B9%84%EB%A1%AF%EB%90%98%EB%8A%94%20%EA%B2%83%EC%9D%B4%EA%B8%B0%20%EB%95%8C%EB%AC%B8%EC%97%90,%20%EB%A9%94%EC%9D%B8%20%EC%8A%A4%ED%8A%B8%EB%A6%BF%EC%9D%98%20%ED%98%B8%ED%99%A9%EC%9D%80%20%EA%B3%A7%20%EC%A4%91%EC%82%B0%EC%B8%B5%EC%9D%98%20%EC%88%98%EC%9E%85%EC%9D%B4%20%EC%A6%9D%EA%B0%80%ED%95%A8%EC%9D%84%20%EC%9D%98%EB%AF%B8%ED%95%98%EA%B8%B0%EB%8F%84%20%ED%95%9C%EB%8B%A4.%20 주지하다시피, 월 스트릿은 금융 과 관련된 비지니스를 위한 거리이다. 금융 시장은 금융과 관련된 소수의 비지니스맨을 제외하고는 아무런 노동 상품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상품의 생산과 유통이 없기 때문에 금융의 성장은 중산층의 몰락과 깊은 연관이 있다. 정리하자면, 제품을 직접 생산하고 유통하는 상품 자본주의가 더 이상 성장할 수 없어서 침체를 맞으면 기업들은 이익을 창출하기 위해 자본력을 금융에 집중한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