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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tional Doragraphycs/시사

자유라는 오래된 거짓말


 뉴스나 신문을 보면 간혹 '신자유주의'라는 말이 나온다. 자유주의라는 게 무얼까? 아마도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자유를 우선적으로 여기는 사상이나 실천을 말하는 것. 그러면 신자유주의라는 것은 신(neo), 즉 새롭게 탄생한 자유주의란 뜻일까? 그렇다면 old 자유주의도 있겠군. 그렇다. 신자유주의는 예전 자유주의로 향하는 회귀적 움직임이다.

  왜? 그러면 우리 시대는 언젠가 자유를 우선으로 하지 않았던 적이 있었던 것일까? 아마도 이러한 혼란은 자유주의라는 용어에서 비롯된 것 같다. 자유라고 번역하는 liberalty는 '어떤 것에서부터의 해방'을 의미한다. 여기서 말하는 자유란 어떠한 억압이 있었고 그 억압을 해체하는 것을 말한다. 언뜻 들어서는  자유를 그렇게 해석해도 무방할 거 같기는 하다.

  그런데 우리가 보통 말하는 자유는 이런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을 말하지 않는다. 일상적으로 자유는 우리가 스스로 생각한 것을 할 수 있는 상태를 말한다.  이는 스스로 생각한 것을 이루고자 하는 욕구를 동반한다. 즉, 내가 자유롭게 직업을 선택할 수 있으려면 먼저 내가 스스로 원하는 직업을 얻어 일하고 싶은 욕구가 먼저 있어야 한다. 내가 굳이 일을 하고 싶지 않다면 자유롭게 직업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런 면에서 자유란 욕구의 실천이다.

  그게 위의 자유와 무엇이 다르냐고? 많은 경우에 다르지 않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어떠한 상황에서는 '해방'과 '욕구의 가능'은 다른 이야기가 된다.

 

다음의 예를 들어보자.

 

"통신수단과 통화가 통제될 뿐만 아니라 산업입지까지도 계획될 때, 계획된 세계에서 어떻게 여행과 이주의 자유가 보장될 수 있는가? 혹은 종이의 공급과 모든 배포채널이 계획당국에 의해 통제되고 있을 때, 어떻게 언론의 자유가 보호될 수 있는가?"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려는 노력은 언제나 다른 사람의 자유를 제한하기 마련입니다….(중략)…거대한 독재 집단인 민간 기업에 인간과 동등한 권리, 아니 그 이상의 권리가 보장된다면 자유는 한낱 우스개 소리에 불과합니다"

 

 첫 번째 인용은 하이예크의 "노예의 길"에서 발췌한 것이다. 하이예크는 대표적인 신자유주의자로 개인의 세세한 사항까지 국가가 통제하는 국가(아마도 소련을 겨냥하는 것이다.)는 자유를 보장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필자는 과연 신자유주의가 언론의 자유를 정확하게 보호하고 있는가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지만 그 얘기는 다음에 하기로 하고, 먼저 그의 주장부터 들어보자. 그의 말은 이렇다. 모든 것을 국가가 통제하는 시스템에서 어떻게 자유가 있을 것인가? 모든 의사는 통제당할 것이다. 이렇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 인용은 노암 촘스키의 인터뷰, "촘스키, 권력을 말하다."에서 인용한 것이다.  그의 주장은 이렇다. 실제적인 힘의 우열에 대한 제재없이 자유는 없다. 누군가가 자유를 누리려면 스스로 자신의 자유를 제한해야 한다.

 

이 둘은 서로 상반된 입장을 갖고 있다. 그러나 둘 다 자유에 대해 말하고 있다.

  만약 이 둘 다 자유를 그렇게 소중하게 여긴다면 왜 그들은 대립된 주장을 하게 되는 것일까? 대답은 간단하다. 그들이 말하는 자유는 처음부터 다르게 설정된 개념이기 때문이다. 하이예크는 모든 통제의 해방을 이야기한다. 만약 통제가 있다면 그 통제가 억압하는 무엇은 자유롭지 못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촘스키는 다르게 말한다. 촘스키의 자유는 인간으로서 욕구하고 실천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만약 어떤 사람이 인간으로서 누려야할 자유를 얻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다른 누군가는 그 사람의 자유를 위해 어느 정도의 권리를 양보해야 한다는 말이다. 누구의 자유가 옳은 걸까?

  누구나 자유를 말하지만 그 자유가 무엇을 칭하는 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신자유주의란 말은 이런 모호한 상황에서 태어난 말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신자유주의는 경제 용어로써 시장의 개방을 이야기한다. 시장의 개방이 무엇이냐고? 무역 규제의 철폐, 보편 복지 축소, 세금 완화 등등의 정책을 의미한다. 국가가 통제하는 시장은 언제나 부작용을 낳는다는 신념에서 출발한 논리이다. 아하, 그럼 우리는 한 가지는 간파할 수 있다. 그들이 말하는 신자유주의란 인간의 자유권이라기 보다는 주로 시장 규제의 해방을 말하는 거군. 이런면에서 자유주의자들의 자유는 좀 기계적인 면이 있다. 그들은 실제로 그 자유가 어떤 사태를 말하는가를 말하기에 앞서 '자유의 형식'를 강조한다. 우리는 언젠가 이것을 배웠다. 소극적, 형식적 자유라고 부르는 것을 말이다. 반면 누군가는 자유로운 상태를 강조한다. 나는 공부를 하고 싶은데 경제 형편이 안되서 할 수 없다면 이것을 자유롭지 못한 상태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그들은 국가가 국민들에게 자유로운 상태를 보장해야 한다고 말한다.

  여러분이 어느 자유가 더 옳다고 여기든, 결코 당신이 선택한 자유가 진정한 자유라고 말하거나 보다 정의롭다는 판단은 보류해두길 바란다. 그 말은 "나는 이병헌보다 배용준이 더 멋있는 거 같아."라고 말하는 수준을 벗어나지 못할 테니까. 여러분은 이미 어떤 것을 취하고 버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왜냐면 이것은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이 처한 현실에 대한 문제다. 자유에 대한 논쟁은 아주 오래된 거짓말이다. 왜냐면 자유는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이념이나 신념이 아니기 떄문이다. 사상가와 정치인들만큼이나 다양한 자유에 대한 견해는 여러분의 삶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다. 부동산이 급등하거나 세금이 줄어들거나, 무상 교육, 관세 철폐 등으로 말이다. 여러분은 단지 어느 자유를 지지하느냐에 따라서 여러분이 잃게 될 것과 얻게 될 것을 고민해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