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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tional Doragraphycs/시사

민주주의의 얼굴마담- 선거

민주주의의 얼굴마담- 선거

 시장은 언제나 시끄럽다. 각종 상품들이 즐비하고 진열대마다 매직으로 황급히 써 갈긴 가격표들이 행인들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 ‘찌라시’들이 구정물 투성이인 좁은 길바닥에 벽지처럼 붙어있고 상인들은 저마다 달콤한 말들로 두툼한 지갑들을 열게 하기 바쁘다. 시장이 열리는 날은 매미들이 우는 한 여름과 같다. 시끌벅적한 소음들과 상인들의 투박한 어투가 구매자를 부르고 구매자들 역시 그들에게서 무언가를 얻어내기 위해 시장으로 나온다.

 나는 선거철이 될 때마다 도시 전체가 하나의 시장판이라는 생각을 한다. 아침에 집을 나설 때마다 ‘뽕짝’ 개사에 율동까지 준비한 사람들이 사거리마다 포진해 있다. 그것도 부족하다 싶었는지 동네를 돌아다니며 확성기와 대형 스피커로 선거 운동을 펼친다. 횡당보도에는 정장 차림에 점잖아 보이는 아저씨들이 명함을 나눠 주고 있다.

 선거 전략에 반드시 ‘품위’가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선거전의 활기참과 화려함, 떠들썩함이란 자본주의 논리가 민주제에 얼마나 침투하였는가를 보여준다. 주어진 선거기간 내에 보다 많은 표를 얻는 것이 선거 운동의 목표이다. 자본주의적 표현을 쓰자면 투표자는 일종의 소비자이다. 소비자는 소비의 권리를 가지고 있고, 공급자는 상품을 판매하기 위하여 가능한 일을 모두 해야만 한다. 즉 보다 많은 '고객'을 유치하기 위해 그들은 광고든, 정책 개발이든 모든 카드를 사용하려 할 것이다. 

 투표를 소비에 비유할 때, 선거라는 것이 갖는 효과와 한계를 여실히 드러난다. 상품을 살 때, 그것의 영양 구성과 생산국가에 대한 정보를 확인하듯, 우리는 각 후보자라는 상품을 소비할 시 어떠한 것을 누릴 수 있는가를 공약을 통해 알 수 있다. 선거관리위원회에서 그토록 줄기차게 주장하는 “건강한 선거 문화”란 바로 이것이다. 우리가 상품을 올바로 소비하기 위해 제품 표기에 대하여 꼼꼼히 읽어볼 필요가 있는 것처럼 어떠한 정치가를 당선시킬 때에는 반드시 사전에 그 정치가가 내놓은 공약을 확인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주목해야할 것은 소비를 끝낸 소비자는 더 이상 소비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투표라는 소화 활동을 마친 유권자는 더 이상 유권자가 아니다. 마치 판매자와 구매자의 관계처럼, 구매를 마친 이후에 이들 사이의 끈끈해 보이는 관계도 멀어지기 마련이다. 선거가 끝난 후, 이제 당선자들에게 공약이란 사실상 지켜야 하는 ‘도의적’ 책임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 선거의 문제다.

 정치에도 '소비자보호협회'라는 것이 있어서 부당하게 샀다거나 표기된 정보와 실제 상품은 다르다고 호소할 수 있다는 좋겠지만, 국민의 손에 의하여 뽑힌 자들의 권력과 파워는 '제품에 대한 A/S'를 단호히 거부한다. 결국 국민들은 ‘다음의 선거까지 인내’해야 하는 “유상수리”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물론 앞서 당선자들이 공약을 지킬 의무는 없다고 이야기했지만, 잠재적인 투표권을 가진 유권자들을 노골적으로 등쳐먹을 수는 없는 얘기다. 공약은 그러므로 이중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하나는 자신의 오래된 지지자들을 설득하기 위한 공약, 다른 하나는 라이벌 후보자보다 파격적이고 매력적인 제안을 함으로써 뿔난 유권자를 달래기 위한 공약이다. 그러나 이 공약의 이중적 역할을 모두 완수하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다.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정치 갈등 속에서 한쪽의 손을 들어준다는 것은 다른 한쪽 손을 놓는다는 의미기 때문에, 이들은 공약의 내용을 왜곡하여 이행하거나 적어도 그것을 실행하려고 노력했다는 것이라도 보여야 한다. 즉, 칭얼대는 아이를 달래기 위한 약속은 사실 그 상황을 모면한다면 굳이 지키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각주:1]

 공약이 정치가들 자신이 갖는 성향이나 명백한 이해관계를 드러내지고 않고 그것을 은폐하는 역할을 수행한다는 것은 오래된 사실이다. 정책 선거의 결말은 언제나 불만족스럽다. 유권자들이 후보자들을 정밀하게 분석하기에 주어진 정보가 부족하다는 점도 그 이유 중 하나이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선거의 속성이 변질된 것이다. 오히려 그것은 정책의 대결이 아니라 천문학적 액수의 ‘머니 게임’이며 수많은 인력을 동원한 광고 게임이다. 그들은 광야에서 가난한 띠를 두르고 정의를 설파하는 무리가 아니라, 양복을 입고 명함을 뿌리며 ‘아줌마 부대’를 동원하여 ‘뽕짝 선전가요’를 유포하는 자들이다.[각주:2]

 힘 있는 기업들이 영세한 소비자들의 권리 주장에 대하여 ‘모르쇠’로 대응하는 것은 이제 놀라운 사건도 아니다. 우리는 유전무죄, 약육강식의 사회에 대한 만성적인 불만을 이제 '선천적'인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 그러나 공약이 반드시 그 정치가의 실질적 정책과는 명백히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우리는 우리의 요구를 들어줄 후보자를 “당선”시키는 것 말고 그 후보자로 하여금 실질적으로 그 정책을 할 수 밖에 없게끔 하는 힘이 필요하다.

 선거는 민주주의 꽃이지만, 간접 민주제의 전부는 아니다. 시민들의 정치 활동이란 선거철마다 잠깐 투표에 참여하는 것에 그치면 안 된다. 소비자 권리와 운동에 관심이 없는 소비자가 제대로 된 소비를 하기란 쉽지 않은 것처럼, 유권자는 스스로의 정치적 권리는 비선거철에도 충분히 누려야 한다. 시민 단체나 각종 정치적 단체는 시민들의 직접적 참여를 환영한다. 이러한 요구와 압력이 정치에 대한 ‘소비자권리협회’를 조성할 것은 자명한 일이며 이는 정치가 양성적인 발전을 할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 되어야지, 민주 국가라는 간판을 위한 ‘얼굴 마담’으로 전락해서는 안된다.

  1. http://generis.co.kr/script/powerEditor/pages/%ED%95%9C%EB%82%98%EB%9D%BC%EB%8B%B9%EC%9D%98%20%EC%98%A4%EC%84%B8%ED%9B%88%20%EC%8B%9C%EC%9E%A5%EC%9D%B4%2006%EB%85%84%EB%8F%84%20%EC%84%9C%EC%9A%B8%EC%8B%9C%EC%9E%A5%EC%9C%BC%EB%A1%9C%20%EB%8B%B9%EC%84%A0%EB%90%98%EC%97%88%EC%9D%84%20%EB%95%8C%EB%8A%94%20%EC%9E%90%EB%A6%BD%ED%98%95%20%EC%82%AC%EB%A6%BD%EA%B3%A0%EB%A5%BC%20%ED%99%95%EB%8C%80%ED%95%98%EA%B3%A0%20%EC%98%81%EC%96%B4%EB%A7%88%EC%9D%84%EC%9D%84%20%EC%B0%AC%EC%84%B1%ED%96%88%EC%97%88%EB%8B%A4.%20%EA%B7%B8%EB%9F%AC%EB%82%98%20%EC%9D%B4%EB%9F%AC%ED%95%9C%20%EC%A0%95%EC%B1%85%EC%9D%80%20%EA%B3%B5%EA%B5%90%EC%9C%A1%20%EA%B0%95%ED%99%94%EC%99%80%20%EC%82%AC%EA%B5%90%EC%9C%A1%EB%B9%84%20%EC%A0%88%EA%B0%90%EC%9D%B4%EB%9D%BC%EB%8A%94%20%EC%B7%A8%EC%A7%80%EC%99%80%EB%8A%94%20%EC%A0%95%EB%B0%98%EB%8C%80%EC%9D%98%20%EA%B2%83%EC%9D%B4%EC%97%88%EB%8B%A4.%20%EC%9D%B4%EB%B2%88%20%EC%84%A0%EA%B1%B0%20%EA%B3%B5%EC%95%BD%EC%9C%BC%EB%A1%9C%20%EA%B7%B8%EB%8A%94%20%EA%B2%BD%EC%A0%9C%20%ED%95%98%EC%9C%84%20%EA%B3%84%EC%B8%B5%2030%%EC%97%90%EA%B2%8C%20%EB%AC%B4%EC%83%81%20%EA%B8%89%EC%8B%9D%EA%B3%BC%20%EA%B3%B5%EA%B5%90%EC%9C%A1%20%EA%B0%95%ED%99%94,%20%EA%B5%90%EC%9C%A1%EC%9D%98%20%EC%A7%88%EC%9D%84%20%EB%86%92%EC%9D%B4%EB%8A%94%20%EC%84%9C%EB%B9%84%EC%8A%A4%EB%A5%BC%20%EB%82%B4%EC%84%B8%EC%9B%A0%EB%8B%A4.%20%EA%B7%B8%EB%9F%AC%EB%82%98%20%EC%98%A4%EC%84%B8%ED%9B%88%20%EC%8B%9C%EC%9E%A5%EC%9D%98%20%22%EA%B5%90%EC%9C%A1%EC%A0%81%20%EA%B4%80%EC%8B%AC%22%EC%9D%B4%20%EA%B3%B5%EA%B5%90%EC%9C%A1%20%EC%98%88%EC%82%B0%EC%9D%98%20%ED%99%95%EC%B6%A9%EA%B3%BC%20%EC%82%AC%EA%B5%90%EC%9C%A1%EB%B9%84%EC%9D%98%20%EC%8B%A4%EC%A7%88%EC%A0%81%20%EC%A0%88%EA%B0%90%EC%9C%BC%EB%A1%9C%20%EC%9D%B4%EC%96%B4%EC%A7%88%20%EA%B2%83%EC%9D%B8%EC%A7%80%EB%8A%94%20%ED%95%84%EC%9E%90%EB%A1%9C%EC%84%9C%EB%8A%94%20%EC%8B%AC%ED%9E%88%20%EC%9D%98%EC%8B%AC%EC%9D%B4%20%EA%B0%80%EB%8A%94%20%EB%B0%94%EC%9D%B4%EB%8B%A4. [본문으로]
  2. http://generis.co.kr/script/powerEditor/pages/%EC%A7%80%EB%82%9C%20%EB%B2%88%20%EC%98%A4%EC%84%B8%ED%9B%88%20%EC%8B%9C%EC%9E%A5%EC%9D%B4%20%EC%B2%AD%EA%B3%84%EC%B2%9C%EC%97%90%20%EB%AC%BC%EA%B3%A0%EA%B8%B0%EB%A5%BC%20%EB%B0%A9%EB%A5%98%ED%95%98%EA%B3%A0,%20%EC%9D%B4%EB%A5%BC%20%EB%B3%B5%EA%B5%AC%EB%90%9C%20%EC%B2%AD%EA%B3%84%EC%B2%9C%EC%97%90%20%EC%83%88%EB%A1%9C%EC%9A%B4%20%EC%96%B4%EB%A5%98%EA%B0%80%20%EC%82%B4%EA%B8%B0%20%EC%8B%9C%EC%9E%91%ED%96%88%EB%8B%A4%EB%8A%94%20%EB%89%98%EC%95%99%EC%8A%A4%EC%9D%98%20%EB%B3%B4%EB%8F%84%EA%B0%80%20%EB%82%98%EA%B0%84%20%EA%B2%83%EC%9D%B4%20%EC%84%A0%EA%B1%B0%EC%99%80%20%EB%AC%B4%EA%B4%80%ED%95%98%EC%A7%80%20%EC%95%8A%EB%8B%A4%EA%B3%A0%20%EC%83%9D%EA%B0%81%ED%95%9C%EB%8B%A4.%20%EA%B3%BC%EB%8C%80%20%ED%98%B9%EC%9D%80%20%EA%B1%B0%EC%A7%93%20%EA%B4%91%EA%B3%A0%EB%8A%94%20%EC%84%A0%EA%B1%B0%EC%9D%98%20%ED%95%B5%EC%8B%AC%20%EC%A0%84%EB%9E%B5%20%EC%A4%91%20%ED%95%98%EB%82%98%EC%9D%B4%EB%8B%A4.%20(%EC%9E%90%EC%84%B8%ED%95%9C%20%EB%82%B4%EC%9A%A9%EC%9D%80%20NEWSIS%205%EC%9B%94%2023%EC%9D%BC%EC%9E%90%20%EA%B8%B0%EC%82%AC%EB%A5%BC%20%EC%B0%B8%EC%A1%B0%ED%95%98%EA%B8%B8%20%EB%B0%94%EB%9E%80%EB%8B%A4.)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