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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tional Doragraphycs/시사

조국은 월드컵을 위해 당신을 부르지 않았다.

조국은 월드컵을 위해 당신을 부르지 않았다.
 

 

 며칠 전 월드컵 조별리그에서 한국과 아르헨티나가 맞붙었을 때 나는 어느 호프집에 있었다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당시 경기가 후반전을 시작하고 있을 즈음이었고 술집 안에는 온통 붉은 색과 월드컵 응원 구호만이 있었다모든 대화는 대한민국에서 시작해서 대한민국으로 끝났고 곳곳마


다 붉은 악마의 정예 요원을 배치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만큼 선동구호가 터져 나왔다.

 

 월드컵은 전세계적 축제이지만 전국민적 축제는 아니다말하자면 그렇다그러나 모든 언론에서 특히 SBS월드컵 응원에 전국민 동원령을 내렸고이제 태극기와 월드컵은 불가분의 것이 되었다그곳에는 오직 하나의 목소리만 존재했다그 시간만큼은 태극기는 월드컵 대표팀을 의미했다월드컵 대표팀을 응원한다는 것은 하나의 애국적인 행위로 간주되는 순간나는 대한민국에 애국자가 이리도 많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월드컵을 즐긴다는 것은 하나의 유희에 지나지 않는다비록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이에 지대한 관심을 보인다고 해도 말이다그러나 기껏 개인 차원에서 머물러야 할 것이혹은 확대해 봐야 특정 단체의 소비 수준에서 머물러야 할 놀이가 국가적인 차원으로 확대되는 순간 이것은 어떤 종교적 의미를 갖는다이른바 애국코드가 월드컵과 절묘한 화음을 이루고 온 동네가 떠나갈 듯이 대한민국이 울려 퍼질 때,그것은 단순히 개인의 취향이 아니다.

 

 그러므로한국에서 애국자가 되기란 어렵지 않다혹은 의도치 않게 거리응원을 즐기기 위해 나온 사람들도 언론은 거리낌없이 애국자로 매도한다거리 응원을 진행하는 사회자는 대한민국의 숨은 애국심에 감탄을 한다. “손발이 오그라든다는 표현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월드컵을 하나의 축제로 여긴다면여기에는 아무런 논쟁의 여지도 없다월드컵을 보며 자국의 팀을 응원하고 관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충분히 그렇게 즐길 수 있는 일이다그러나 어떤 이들이 이러한 열기를 한국인의 긍지로 바꾸어 부를 때월드컵은 한국 VS 세계라는 하나의 대리 전쟁과 같다. “Fighting Korea”라든지 태극전사라는 차마 입 밖으로 나오지 못할 유치한 문구들이 넘쳐나는데도 그게 전혀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는 것이다.

 

 월드컵의 커다란 취지 중 하나는 세계의 화합이다외교적으로 한국과 긴장 관계에 있는 북한도간혹 마찰을 일으키는 일본도 스포츠 안에서 하나로 어우러진다전세계적 축제는 국지적인 이해관계나 갈등 상황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그러나 우리가 월드컵을 대하는 방식은 오로지 승리이며 그 성취 방식은 오로지 경쟁으로 귀결된다경쟁이란 게임을 재미있게 하는 요소이지만 그것이 월드컵의 근본 정신은 아니다우리는 축구라는 스포츠를 통해 전세계인과 호흡하고 있는가?

 

  물론 나는 2002년 월드컵에서 터키와 한국의 4강전을 기억하고 있다. 우리는 '형제의 국가' 터키와 한국의 시합을 아름답게 끝냈으며, 비록 한국이 패배했지만 터키에게 뜨거운 박수를 쳐주었다. 이처럼 위와 같은 우려에도 불구하고 아직 한국의 많은 젊은이들과 대중들은 월드컵을 화합의 장으로 지켜나가고 있지만그러나 획일주의국가주의에 대한 우려는 여전히 유효하다열광은 절제를 내포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전세계적 유희와 그것을 즐기는 사람들에게 찬물을 끼얹고 싶지는 않지만월드컵과 그를 보도하는 언론이 국민들에게 애국주의를 부추길 때국민들은 타국에 대한 일종의 배타성을 가질 수밖에 없다하나의 것에 대한 절대적 다수의 지지와 호응은 그것 자체만으로도 두려운 것이다다수가 모일수록 그 안에서 이성적도덕적 반성이 올바르게 작동할 수 없기 때문에다수의 의견은 그것 자체가 이미 폭력적이며 배타적일 수가 있다. 2차 대전이 일어나기 전전국민의 무한한 열광과 충성심 속에 나치즘이 온 독일을 뒤엎었듯이월드컵을 즐기는 순수한 열정들이 자칫 애국주의와 전체주의로 오염되지는 않을까 하는 나쁜 상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또한 이 거대한 흐름을 그릇된 욕망에 이용하려는 자들이 전혀 없으리라는 기대 또한 지나치게 순진한 생각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