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문화칼럼

남녀 평등이 헷갈리는 이유




1. 더치페이를 외치는 남자는 많으나 정작 실행하기는 어렵다. 또한 얻어먹기만 여자를 욕하는 여자 역시 많지만 정작 그렇게 말하는 본인도 남자에게 바랄 때가 있다. 위선적인가? 더치페이가 남녀 모두에게 떳떳하려면 남녀 모두가 경제 활동에 있어 동등할 때 뿐이다. 그러나 생산 전반을 남자가 담당하던 시절부터 지속된 의식이 하루 아침에 변할 리가 없다. 


2. 경제력은 권리 획득에 상당히 중요하다. 역사적으로 경제력이 향상한 계층의 주도 아래 권리의 재분재가 일어났다는 것을 감안하면, 여성의 사회 진출은 가부장제 청산과 여권 신장에 물질적 토대가 된다. 여성 사회적인 진출이 잦은 현대에 이르러 남녀평등 주장이 강하게 요구되고는 있으나, 여자가 사회적인 성공과 그 유지를 남자만큼 수월하기는 여전히 어렵고, 결국 '좋은 남자=경제력이 있는 남자'라는 전근대적 기준이 역시 유용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런 '혼테크'는 결국 여자를 남자의 소유로 속박한다는 전제를 갖고 있다. 


3. 남녀평등의 핵심 중 하나는 가부장제의 청산이다. 가부장제를 유지한 남녀평등의 개념을 우리는 상상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가부장제의 그늘을 벗어나기가 얼마나 힘든 줄 안다면 그렇게 쉽게 외치지 못한다. 남녀가 평등하다고 외치기는 쉽다. 그리고 마치 타자를 이해하는 관용적인 지식인인양 굴어도 당신이나 나나 시대의 인물인 이상, 세상 사람들에게 '찌질이'로 찍히기 싫으면 거부할 수 없는 가부장제의 찌꺼기가 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가부장제는 청산의 대상이기 앞서, 인정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기도 하다. 


4. 남녀평등이 남녀의 갈등으로 이어질 필요는 없다. 특정 아젠다에서 남녀 간의 대립은 남녀평등이 아니라 가부장제와 남녀평등의 혼재와 혼란에서 비롯된다. 남녀평등이라는 것이 남자에 못지 않게 여자가 스스로의 주인됨을 선언하는 것이라면, 여러 면에서 여자들은 남자 못지 않은 의무를 짊어져야 한다. 이것은 가부장제 하에서 얻었던 피지배자로서의 혜택을 포기하고 가장으로서 책임과 권리를 남자로부터 승계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지금의 남자들을 보면 알수 있듯이 '지배'하는 삶, 다시 말해 대한민국 가장의 삶은 보기보단 피곤하고 재미없으며, 부담스러운 일이다. (더욱이 요즘같이 먹고 살기 팍팍한 시대엔 더 그렇다.) 그래서인지 근래에서는 남자들 중에서 오히려 남녀평등을 외치는 비율이 많아지고 과거에 비해 어떤 여자들은 가부장제를 옹호하는 양상으로 후퇴한 듯 보인다. 


어떤 사람들은 이 사회가 아직 여성차별적이라는 이유로 이러한 가부장제 하에 피지배로서의 혜택을 받는 것이 정당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가부장제의 피지배자로서의 얻는 경제적 안온함은 여성이 겪는 차별에 대한 보상이 아니라 남자가 여자를 지배하는 구실이자 차별의 조건이다. 가부장제에서 비롯된 생각(남자가 경제활동을 일임해야 한다거나, 남자가 사회에 더 많은 책임을 져야 한다는 생각, 남녀가 함께 있을 때는 남자가 여자를 배려해야 한다는 생각)를 포기하지 않으면서 남녀 평등을 외치는 것은 이중적이다. 차라리 손녀에게 공공연히 남녀차별을 강요하셨던 우리네 할머니들은 비록 가부장제를 인정하고 스스로 피지배적 삶을 살았지만, 남녀의 사회적 위치에 대한 관점이 일관적이긴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