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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칼럼

보그병신체는 진짜 병신 같을까?


 




 최근 들어 보그병신체를 진짜 병신취급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보그병신체는 사실 한 명의 허세로 우연하게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이는 신데렐라 컴플렉스를 가진 미혼의 여성 구독자들과 신데렐라는 아니지만 쁘디 부르쥬아로서 자기표현욕구가 강한 구독자의 욕망과 상상을 대변하는 수사다.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사실은 보그식 허세와 허위 의식을 공유하는 구독자가 적어도 십수만 명에 육박한다는 것과 이들은 각종 화장품/문화/패션 등 소비 시장에서 수십억 원을 움직이는 돈줄이라는 것이다. 보그는 독자와 자신의 광고주에게 소비유행의 선두에 선 잡지임을 과시하기 위해 허영과 허세, 물신주의적인 정체성을 공공연히 드러낸다. 외래어가 이국적인 취향과 고급한 소비생활, 문화/지적 상류사회를 투영하는 아이콘이라면, 이런 외래어를 집대성한 보그병신체는 소비를 통해 손쉬운 신분상승을 꿈꾸는 모든 여성을 대변하는 언어인 것이다.


 한편으로 비록 종합지에 적이 없어서 장담을 못하겠다만, 나는 보그병신체가 정보의 빈약함을 극복하고자 하는 에디터의 매너리즘이라고 생각한다. 종합잡지라는 것의 주요한 관심사는 패션과 유행, 연예인 가쉽 등등에 머물러 있다. 여성 일반에게 공약된 관심사를 잡지에 싣기 때문이다. 이론적인 것보다는 감각적인 제재로 쓴 글이 많다. 이런 기사의 특징은 핵심이 결코 복잡하지 않으며 표현하고자 하는 심상이 몇 가지 형용사로 한정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잡지 한 면에는 생각보다 텍스트가 많이 들어간다. 깨알 같이 글씨만 채운다면 잡지 1장당 A4가 2장은 써야 족하다. 어떻게 하겠는가? 할 말은 적은데 채워야 할 공백은 많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별거 아닌 이야기를 최대한 꾸며 말하거나, 혹은 엇비슷한 형용사를 나열하는 수밖에 없다.


 분석기사나 제품 리뷰도 마찬가지다. 모든 에디터가 모든 분야의 전문가는 아니며, 마찬가지로 종합지의 기대독자도 모든 제품에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잇거나 관심을 두지 않는다. 한마디로 제품을 대하는 에디터와 독자 모두 비전문적이란 말이다. 따라서 기사는 모든 독자의 지적 수준과 관심을 최대한 포괄할 수 있는 수준에서 쓰이는데, 정보의 빈약함을 가리기 위해서 수식어구를 최대한 동원하는 전략을 쓴다. 결국 종합지의 승부처는 내용이 아닌 형용사의 세계가 될 수 밖에 없다. 제한된 재료를 가지고 맛있는 김치찌개를 끓여야 한다면 결론은 MSG를 왕창 쓰는 수밖에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보그병신체는 바로 이러한 딜레마의 돌파구로서 고안되었다. 결과적으로 한국어의 테두리까지 돌파해버렸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