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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위악에 대하여 2




원시주의의 모순은 문명화된 세태의 반대급부로서 원시의 순수성을 해결책으로 삼았다는 것에 있다. 이미 '문명 세계'에 속하는 화가들에게 원시란 환상 속의 낙원에 불과했다. 그들은 원시의 순수성을 포착한 것이 아니라, 원시에 대한 동경을 그린 것에 불과했다.


세계의 위선에 대한 그들의 문제제기는 일리가 있었다. 문제는 해법에 있다. 그들은 문명의 개념적 반대인 원시에 답을 찾았고, 피상적인 이해에 기인한 것이다. 만약 그들이 비판하려던 핵심이 문명에 오염되어 병들어가는 정신에 있다는 것을 정확하게 인지했다면 그 문명의 중심에서 병든 정신 그 자체를 드러냈어야 옳다. 


마찬가지로 위선은 개념적 대립인 위악으로서 치료되는 것이 아니라, 위선적 상황을 그대로 인정하는 것, 즉 어떠한 저항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위선에 젖어있음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부터 시작한다. 디스토피아는 또 하나의 유토피아이며, 달콤한 거짓과 마찬가지로 현실에 동떨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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