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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tional Doragraphycs/시사

곽교육감을 변호하는 논리에 대한 뒷북


곽 교육감을 두고 사퇴여부를 논쟁하는 것은 이미 뒷북이 되었다. 하지만 실제로 그가 유죄인지 무죄인지는 '댓가성'을 입증하는 것과는 별개로 그가 왜 사퇴여부를 두고 논쟁하는지에 대해서는 약간의 정리가 필요하다. 덧붙이자면 진보적 정치인사들의 비리 의혹에 관련하여 필자와 같은 영세 여론이 어떻게 봐야하는지 숙고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무죄 추정 원칙의 효과

나꼼수에서 곽 교육감 이야기를 두고 먼저 무죄를 주장한 첫 번째 이유는 '무죄 추정의 원칙'이다. 대법원 판결에서 죄가 있음이 확인되지 않았으면 피의자의 죄가 드러날 때까지만 조건부 무죄로 추정한다는 원칙인데, 이는 피의자의 인권과 명예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순수한 논리만으로 곽 교육감을 변호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먼저, 무죄 추정의 원칙만으로 곽 교육감을 쉴드치려면 피의 사실이 법원에서 확증되지 않은 많은 비리 정치인들 역시 '무죄'로 봐야하는 시각을 강요한다는 것이다. 누군가 비아냥거리듯 진보여론은 보수층 정치인들의 비리 의혹에는 마치 확정된 것처럼 들고 일어나면서 자기 식구에게는 무죄 추정의 원칙을 들이민다고 말할 수도 있다. 무죄 추정의 원칙은 죄가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피의자를 죄인 취급하는 것을 방지하려는 '인권' 차원의 문제이지, 실제로 법정 공방을 둔 사람이 죄가 없다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나꼼수에서는 이러한 논리 구조에 대해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지만 무죄 추정은 검찰의 피의 사실 공표 불가와 마찬가지로 피의자에 대하여 법정의 중립을 지키기 위한 도구이다.

일각에서는 무죄 추정의 원칙과 검찰의 피의 사실 공표와는 무관하게 곽 교육감은 무죄다라고 선언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 무죄 추정 원칙과 피의 사실 공표 불가는 곽 교육감의 무죄 입증에는 아무련 관련이 없다. 다만 피의자가 공정한 재판을 받게 하는 데에만 효과가 있을 뿐이다. 더군다나 이번 케이스에서 무죄 추정의 원칙과 피의 사실 공표죄를 지적한 것은 곽 교육감의 무죄 입증보다는 보수, 진보를 망라한 여론들이 곽 교육감이 재판도 받기 전에 '사퇴를 압박'하는 사태를 저지하기 위함이다. 그렇다면 무죄 추정의 원칙이 옳고 검찰이 피의사실 공표죄를 저질렀다는 것을 인정할 지라도 곽 교육감이 유죄일 수도 있다.


조국, 진중권, 고재열? 진보 내부의 적이라고?

김어준 총수가 나꼼수 라디오에서 진보진영은 도덕적 강박증에 시달리고 있다고 말했다. 어떤 칼럼에서는 진보가 도덕성을 무기로 삼는 것은 고루한 무기라는 취지의 글을 쓰기도 했다. 이게 더하니 '진보는 왜 자기 편을 공격하는가' 하는 문제로 번지고, 진보계의 비리를 진보진영이 앞장서서 공격하는 것이 현실감각 없고 독고다이식 존재 확립이라는 시각이 나온다. 조국 교수는 '책임질 일을 했으면 책임져야 한다'라고 발언해서 변절자가 되었고, 고재열 기자는 '무죄추정의 원칙을 달아 유죄를 무죄로 뭉개는 일은 비상식적'이라는 취지의 글을 트윗에 남겨 수 많은 사람들을 적으로 돌렸다. 진중권 평론가는 '곽 교육감이 무죄라고 주장하는 것은 신앙'이라고 말해서 '그놈은 원래 괴변 또라이'라는 타이틀을 유지했다.

그러나 곽 교육감이 재판을 받기도 전에 그가 무죄라고 주장하는 것은 재판 이전에 그가 유죄라고 주장하는 것만큼이나 비합리적이다. 또한 과거 운동권 출신들이 보수층 정치인이 되는 것처럼 곽 교육감의 과거 행적을 가지고 현재 그의 죄를 추론하는 것도 만족스러운 답이 되지는 못한다. 아쉽게도 곽 교육감의 결백은 법정에서 시비를 가릴 것이고 그 추이를 우리는 관심을 갖고 지켜보는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곽 교육감의 비리 공방과 서울 시장 선거를 각각 별개로 놓고 바라보는 합리적 시각을 유지하는 게 최선이라고 본다.


좃선일보와 검찰의 일방적인 프레임을 따라가지 않는 것이 곽 교육감과의 결백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나꼼수에 '평소에는 조선일보와 검찰이 편파적인 행위를 하고 있다는 것을 욕하면서 이러한 사건에서는 그들의 주장을 믿는 진보 언론의 행태'라는 취지의 말을 썼다. 그렇다. 검찰과 조선일보는 노골적으로 정권의 편을 들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실제로 그렇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그럴지라도 그것이 곽 교육감의 결백과 무슨 상관이 있는가? 어떤 사람들은 검찰의 부패를 지적하면서 이러한 정치적 수사에 피해를 입은 곽 교육감은 결백하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들의 삼단 논법을 보면 이렇다.

검찰은 편파적인 수사를 한다. (그리고 편파적인 수사는 부당하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곽 노현 교육감은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있다.
곽 교육감은 (부당한) 편파적인 수사를 받고 있으므로 무죄다.(혹은 무죄일 확률이 높다)

만약 위의 전제가 참일지라도 그것이 결론에 가서는 엄청난 비약이 일어난다. 검찰의 편파적 수사가 곽 교육감을 지목했다는 사실이 그가 무죄임을 입증할 필연성을 수반하지 않는다. 단지 검찰이 벌이는 곽 교육감의 수사가 편파적이라는 사실만 알 수 있을 뿐이다. 다만 개연적으로 우리가 평소 검찰의 행태를 보아하니 이번에도 정치적 쇼라는 것을 추측할 뿐이고, 이런 개연성은 예외의 경우가 존재하기 마련이다. 평소에 우리가 곽 교육감이 무죄일 것이라고 기대하거나 추측하는 것은 가능한 일이겠으나 그가 '확실히 무죄'일 거라고 주장하는 것은 진중권 평론가의 말대로 '초논리'적인 비약에 가깝다.


우리가 가카에게 본받을 게 '우리가 남이가 정신인가?'

진보 진영이 진보적 인사의 비리를 앞성서서 공격하는 것을 두고 '제 살 깍아 먹는다'는 식의 표현을 하기도 한다. 철저하게 힘의 입장에서 보자면 진보 진영이 진보적 인사를 공격하는 것은 덤벼드는 포식자에게 꼬리를 내어주고 도망치는 도마뱀의 전술일 수도 있고, 선비 정신을 드높이기 위해 같은 편도 까는 진보 늙은이들의 꼬장일 수도 있다. 위기일 수록 서로 뭉쳐야지 버리고 도망가면 되겠냐란 말도 들린다. 하는 짓은 드러워도 어려울 때면 대동단결하는 한나라당을 본받아야 한다는 소리도 있다.

나는 이 부분에 절대 동의할 수 없다. 진보적인 아젠다가 위협받고 있을 것과 진보적 인사가 부정부패와 결부되어 진보진영이 겪은 도덕성의 위기를 동일한 것으로 보아야 하나? 측근들이 비리를 저질렀을 때 눈물을 머금고 측근들을 하옥하는 옛 이야기들은 현실에서는 일어나선 안되는 '책 속의 교훈'으로 생각해야 하는가? 아우가 잘못하면 형님이 카바쳐주는 깍두기식 의리, 서로 잘못한 거는 묻어주고 잘 살자는 '우리가 남이가' 정신이 현실적인 대답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진보든 보수든 모두에게 독과 같은 생각이다. 정권 탈환을 위해 다소 부조리도 안고 가야한다는 마키아벨리적인 사상도 반대한다. 바늘 가는 데 실 가는 격이라고 돈과 권력이 오가는 정치판에 부정부패가 전혀 없다고 하면 그것은 너무 이상적인 답변이지만, 그런 어두운 그림자가 불가항력적으로 있음을 아는 것과 부정부패가 정치의 한 부분이라고 적극적으로 인정하는 것은 다르다. 후자의 입장대로라면 성 접대도 수사의 일부며 오심도 축구의 일부다.

청렴결백은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정치인의 미덕이자 자질 중 하나이다. 완벽무결할 순 없지만 그렇게 노력하는 인간적인 자세를 정치인에게 바라는 게 진보의 '고루한 무기'가 될 수는 없다. 다만 몇 보수층 정치인사가 막장 태크를 타는 탓에 도덕성이 진보의 전매특허인양 변했지만, 실상 부정부패는 모든 정치인에게는 독약과도 같다. 또한 필자는 진보적 정치인이 정치적 진정성, 진보의 가치를 실현하는 추동력이 정치적 도덕성에서 있다고 생각한다. 로비, 부정선거, 뇌물 수수에 연루한 정치인이 성장보다는 분배를 논하고, 인권을 보장하며, 더 좋은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진정성이 있을까?


곽 교육감이 무죄냐 유죄냐는 별개의 문제다. 다만 곽 교육감의 변호하는 논리 중에서는 필자가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더 나쁜 것은 그런 논리 중에서는 저쪽편의 부정적 정치행태를 용납하는 듯한 형태도 있다는 것이다. 진보적 인사에게 정치적으로 흠이 없길 바라는 경도된 시선도 문제지만(솔직히 정동영 의원이 요즘에 열심히 현장 다녀도 까이는 것도 이것 때문 아닌가?), 정치적 결백성을 가볍게 보는 시선도 바람직하지는 않다. 즉, 부정부패에 자유롭다는 것(최소한 자유롭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진보적 가치관을 가진 정치인의 진정성을 담보하는 한 정치적 도덕성은 중요하다. 대한민국 1%만을 위한 정치집단을 권좌에서 끌어내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끌어내린 자리에 결국 누구를 앉힐 것인가를 생각해보면 더욱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