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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tional Doragraphycs/시사

웃지 않는 고3을 위한 기말고사



어제 다음 1면을 장식한 것은 웃음을 자아내는 고3 기말고사 문제였다. 선생님이 아예 웃기려고 만들었는지 객관식에는 말도 안되는 보기들이 나와있었다. 정답과 어감이 유사한 오답들로 언어유희를 부리는가 하면 박예쁜부터 지게 로봇, 원기옥과 같은 오답들은 선생님이 얼마나 다방면에 배경지식을 갖고 있는지 감탄이 나오기도 한다. 사람들은 대개 이 시험 문제를 보고 재미있다, 시험 스트레스가 날아간다와 같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는하면 전형적인 내신 퍼부기라고 비난하는 사람도 많았다. 또는 시험이 이렇게 장난스럽게 출제해도 되는가를 문제삼는 사람도 있었다.

필자가 볼 때 이 시험의 문제는 그런게 아니다. 시험 난이도를 낮추어 내신을 유리하게 처리하는 것은 어제 오늘 문제가 아니었다. 학생들의 성적 분포도가 정상분포를 그리지 않는 시험은 이미 시험으로서 분별력을 잃은 것이지만 그게 꼭 위의 시험지만 그런가?

문제를 푸는 사람에게는 정답을 빼놓고 나머지 오답 네 개는 똑같은 위상으로 보일지 모르나 문제를 출제하는 사람에게는 그렇지 않다. 교육학을 배우다보면 오답을 내는 방법을 배우게 된다. 오답들은 각자 다른 위계를 갖고 있다. 먼저 아예 정답과는 다른, 딱 봐도 정답이 아닌 거 같은 오답이 하나, 정답과는 상관 없는 개념의 오답이 한 두개, 그리고 매우 정답처럼 보이지만 정답이 아닌 오답이 한 개 정도 포진되어야 잘 만든 오답이다. 정답을 아닌 것을 찍으면 무엇을 찍으나 똑같은 감점이지만 어떤 오답을 찍었느냐는 피시험자의 수준에 따라 다르다.

위의 시험에서 가장 먼저 지적해야 할것은 시험의 난이도가 아니다. 시험의 난이도는 절대적인 기준을 가지고 쉽고 어려움을 말하기는 좀 곤란하다. 왜냐하면 내용 자체의 난해함이나 시험 범위, 학생들의 수준 등 다양한 변수가 있고 결과적으로 시험의 난이도는 시험의 결과를 알아야 판단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시험은 학생들의 수준을 평가하기 위한 수단이며 그 평가는 잘하는 학생과 못하는 학생을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을 변별력이라고 한다. 변별력이 좋은 시험은 만점부터 빵점까지 가운데가 볼록한 정상 분포 곡선을 그린다. 변별력은 있지만 난이도가 쉽다면 전체적으로 고득점에 가까운 정상분포를 그린다. 반대로 어렵다면 낮은 점수대에서 정상분포를 그려야 맞다. 예나 지금이나 수능시험을 보면 불수능이나 물수능이다 이런 말을 하는데, 문제가 쉽건 어렵건 그건 변별력과는 크게 상관 있는 게 아니다. 매일 만점을 맞거나 매일 찍는거 이상의 점수가 안나오는 극단적인 피시험자의 경우 시험이 쉽고 어려움에 따라 변동이 있을지는 모르지만 정상분포를 보인다면 중간에 밀집한 인원들은 그게 그거라는 거다. 나에게 어려운 시험이면 남에게도 어렵다는 진리를 받아들이자.

이게 정상분포 곡선이다. 시험을 보면 일반적으로 학생의 성적 분포도가 이런 식으로 나와야 변별력이 있는 시험이라 할 수 있다.



문제는 바로 변별력이다. 변별력이 없는 시험은 정상분포곡선을 그리지 않는다. 즉, 변별력이 없는 시험은 잘하는 학생과 못하는 학생을 구분하는 힘을 잃는다. 그렇기 때문에 최상위와 최하위가 적고 중간이 많은 정상분포가 아닌, 최상위가 중간보다 많거나 최하위가 많거나 하는 비정상 분포를 그린다. 특히 객관식에서 변별력이 없는 시험을 낸다는 것은 피시험자가 학습한 정도의 차이와 상관없이 오답이 전부 매력적이거나 전부 매력적이지 않아서 누구나 그 문제를 맞추거나 맞출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삼권분립의 원칙에 오답이 다 이렇다 기업 노인정 롯데월드 주식회사..모든 오답들이 자신이 오답이라고 주장한다.지나가는 꼬마들도 대충 찍으라면 정답을 찍겠다.



물론 지나치게 난이도가 낮거나 높으면 변별력이 없는 시험이 되기도 한다. 위에서 보이는 문제 자체의 난이도가 낮다기 보다는 오답이 스스로 자신이 오답이라고 말하고 있다는게 문제다. 정말 보기 중 정답 외에는 정말 찍을게 없다. 전혀 아닌 오답 중 한 개 정도가 웃기던 말던 그건 큰 상관이 없지만 정답을 제외한 다른 오답 전부가 매력적이지 않을 경우, 공부를 했던 안했건 누구나 오답을 피해갈 여지가 농후하다. 이처럼 잘하는 학생과 못하는 학생을 구분할 변별력이 없는 시험은 평가를 할 수 없다. 평가를 할 수 없는 시험이라면 교육학적으로 평가할 가치가 없는 시험이다.

문제가 지나치게 가볍다거나 쉽다는게 문제가 아니다. 모든 오답이 스스로 매력적으로 보이길 포기한 게 문제다. 내신 올려주려고 이렇게 쉽게 낸 것이 아니냐는 말을 하는데, 일부분 그런 부분도 있겠지만 이 선생님이 매사에 이런식으로 문제를 출제하지는 않을 것이다. 어디까지나 고3이고 이제 수능 스트레스를 앞둔 학생들에게 시험에 대한 부담을 덜어주고 한번 웃어보자는 의도로 만들 었을 것이다. 여기서 '어디까지나 이것은 시험이고 이렇게 가볍게 볼일이 아니다'라고 코미디에 다큐로 대응하는 분들에게는 너무 엄숙하게 볼 것만은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다. 공교육 12년 동안 그네들은 각종 평가에 시달려왔다. 선생님으로서, 출제자로서 한번 웃으면서 쉽게 넘어가자도 이런식으로 출제하는 거 웃으면서 넘어갈 수 있는 일이다. 다만 필자는 재미있고 쉬운 시험도 좋지만 평가인 이상 시험은 변별력을 잃지 않아야한다고 생각한다. 오답 한 두개만 매력적으로 바꾸어도 충분히 변별력을 높일 수 있다. 

얼레...근데 사진 정보를 보니 이거 기말고사 아니다. 4월이면 중간 고사 시즌인가? 이거 대체 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