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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tional Doragraphycs/이슈번역

독점의 시대-금융 자본, John Bellamy Foster

독점의 시대-금융 자본

John Bellamy Foster

 

2010 2 9 Monthly Review 61

 

편집자의 말

이 기사는 2009 12월 베트남의 하노이에서 호치밀 대학의 정치 및 정치 행정과가 주관하는 회의 World Today라는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이론과 실행에 관한 워크샵에서 발표를 위해 쓰인 글이다.

 



3년 전인 2006 12나는 Monthly Review에 독점 금융 자본이라는 제목으로 기사를 썼었다그 때는 1966년도, 40년 전에 이미 발행된 폴 배런과 폴 스위지의 “Monopoly Capital”의 기념일이었다내가 쓴 배런과 스위지가 출판한 책의 40주년 기념일에 제기한 중대한 질문.”은 다음과 같다.

 

자본주의가 변하고 있는가자본주의는 그들이 묘사한 것처럼 여전히 독점 자본 안에서 혹은 심지어 독점의 시대를 넘어 발전하고 있는가물론 이 질문에 쉽게 대답하기는 어렵다역사적으로 중요한 발전 사례가 모두 그렇듯이이러한 회상에서 가장 명백한 것은 변화의 모순적인 특성들이며이것은 1960년 중반 이후로 생겨났다한편으로 이 시스템이 그것을 움직이는 힘즉 자본의 축적 과정을 살펴보면서 더욱 진보할 수 있는 방법이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은 확실하다. “Monopoly Capital”에서 언급한 침체의 막다른 골목은 악화되고 있다.그리고 이 근본적인 병폐는 확산되고 심화되고 있는 반면, 새롭게 썩어가는 증상이 생겨났다또 한편으로자본주의 시스템은 스스로 증식하는 새로운 방법을 찾아냈으며 역설적이게도 자본은 이러한 침체의 막다른 골목에서 오히려 번창하였다. 이는 금융의 폭발적인 성장을 통해서다나는 이러한 자본주의의 혼잡적인 형태를 임시적으로나마 독점 금융 자본주의라고 명명한다.

 

이 논문은 이러한 자본주의의 형태로 발전된 경제라고 특징 지을 수 있는 금융화된 자본주의와 침체된 성장(혹은 불황)의 이중적 현실에 관한 논쟁을 이어갔다나는 두 가지 가능성을 역설하며 결론지었다하나는(1) “전세계적인 부채의 붕괴와 부채의 위축의 형태에서 오는 주요한 금융적경제적 위기이다그리고 (2) 독점 금융 자본의 공생적인 침체-금융의 연장이다실상지난 2년 동안 우리가 경험했던 것은 이 둘이다. 1930년도 이후 가장 최악 금융 경제 위기 후에 이 시스템은 침체에 대항하는 일반적 수단으로 금융 자본주의로 돌아감으로써 스스로를 정당화하려고 애썼다이렇게 오늘날 우리가 새로운 자본주의 형태 속에 산다는 것은 더더욱 명백하다이런 흐름 속에서 나는 이 논쟁의 논지를 마치 Baran과 Sweezy, 특히 Harry Magdoff가 이룩해 놓은 것으로부터 진화된 것으로서 약술할 것을 시도할 것이다그리고 어떻게 이것이 오늘날 우리의 경제적 사회적 난관과 관련이 있는지도 말이다.

 

독점 단계

“Monopoly Capital “에서 배런과 스위지는 선진 자본주의를 묘사했다거대하고 독점적인-혹은 소수독점의- 기업들의 맑스의 자본론에서 묘사된 생산의 집적과 집중의 산물에 의해 지배되는 경제사회 질서의 예로 미국을 들었다이 시스템의 중심적인 특징은 잉여(가치)가 증가하는 경향이었다이 현상은 완숙기에 접어든 독점적 산업더불어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생산량이라는 조건 속에서 순수한 가격 경쟁을 효과적으로 차단함으로써 가능했다이러한 조건 하에서는 주요 경제적 규제는 더 이상 잉여의 발생이 아니었고 오히려 그것의 흡수유효수효의 만성적인 결핍이었다.

 

  자본지출에 대한 대부분의 분석에서잉여는 두 가지 방법으로 흡수될 수 있다하나는 자본가의 소비이고 두 번째는 투자이다자본가의 소비는 자본의 내부적 동력에 반하여 작용한다. (이 자본의 내부적 동력을 표현하자면 축적하라축적하라자본이야 말로 모세요선지자다!”), 반면 기업들은 새로운 투자의 예상 이윤이 약하면 대개 순수 투자를 억제한다이러한 기대는 산업에서 가용 한도의 현존 수치에 의하여 영향을 받는다일을 하지 않는 공장 부지와 설비는 기업이 한도를 늘리는 투자를 막는다게다가 잉여 증식 경향은 일반적으로 생산성에 비해 실질 임금이 낮게 상승한다는 것을 의미했기 때문에-노동자들은 더욱 착취당했기 때문에-임금에 기반을 둔 소비는 사회의 생산 한도와 연결되어 만성적으로 약해져 과잉 능력의 증가와 순수 투자의 위축을 초래했다따라서 독점 자본 시대에서 장기 성장은 지지부진하며광범위한그리고 심지어 점점 더 넓어지는 저고용의 격차로 특징지을 수 있다달리 말하자면 경제는 잠재적 성장률의 결핍에 깊이 빠졌으며 이는 노동자와 자본제의 낮은 사용에 인한 것이다따라서 배런과 스위지가 언급했던 독점 자본주의의 일반적 상태라는 것은 침체였거나 느린 성장의 근본적 경향이었다.

 

이러한 점에서 경제 침체는 기술 침체나 소비제의 침체와 혼동되어서는 안 된다실상일반적으로 자본주의를 특징짓는 -독점 자본주의를 포함하여서- 생산 기술의 지속적인 발달은 그것의 과잉 축적된 경향을 강화시키면서 이 시스템의 생산 잠재성만을 증가시킨다이 시스템은 증기 기관철도자동차산업 같은 규모의 획기적인 혁신의 출현을 통해 그들이 처했던 상황인 경제적 침체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전반적인 경제지질학적인 효과 측면에서 새로운 투자에 대한 다양한 요구를 창출하였으며 이것은 현존하는 소득의 압박과 별개의 것이었다그러나 배런과 스위지가 언급했던 획기적인 혁신의 조짐은 아직 보이지 않았다.

 

독점 자본이 새로운 소비재의 산더미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극도로 획기적임을 증명한 것은 사실이었다그러나 결과적으로 많은 경우에 진정한 욕구를 만족시키는 결과가 아니라 인위적인 욕구의 조작이었다그러나 이런 자본주의의 유명한 창조적 파괴와 낭비의 확산에도 불구하고 이 체제는 만성적인 시장의 포화를 극복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Monopoly Capital” 2차 대전 직후경제적으로 황금기” 시대에서 시작되었다이 황금시대는 침체에서 멀리 떨어진 듯이 보이던 시대였다주요한 경제학자들이 -말기에서는 그렇지 않았지만- 경기 순환의 종말을 주장하던 때였다그러나 Baran Sweezy가 주장하였듯이 1960년대 중반 자본주의 체제의 번영은 통상적인 경제 과정 바깥에 있던 많은 특수한 요인 덕분이었다이것들은 침체에 대항하는 요소들로 작용했다이러한 요인들 중 몇 개는 일시적이었고 다른 것들은 약간 지속적이었다약간 지속적인 요인들 중에 몇몇은 대량 판매 노력을 시사했고이것은 생산 과정 자체에 깊은 영향을 주었으며 이와 함께 FIRE(금융보험부동산)의 성장에도 관여하였다군국주의자들과 제국주의자들은 냉전 형세와 한국과 베트남 전쟁 속에서 사용하지 않는 생산력을 흡수하여서 독점 자본가의 경제활동을 또한 부추겼다대조적으로 그들은 미국의 GDP의 한 부분으로 민간 정부의 지출이 이미 1930년대 말기에 한도 초과에 도달하였다고 주장한다따라서 그들은 그것을 촉진하는 역할을 제한하였다. -실재로 이것은 현재에도 사실로 남아 민간 정부의 소비와 투자는 GDP의 비율로 지난 40년 동안1930년대 말기처럼 거의 같은 수준을 유지한다- 전반적으로 이런 분석들은 반작용하는 다양한 요인들이 결국에는 경기가 다시 침체될 것을 막기에는 역부족인 체제임을 지적했다.

 

경기 침체와 금융의 급증

 

1970년대 중반 초기부터 자본주의는 심각한 위기에 처했다그러나 그것은 단순한 경기침체가 아니라 출현한 것은 스태그플레이션이었다. -지지부진한 경제에 동반한 인플레이션- 그에 대한 지배적인 해석은 이 실질적인 주범은 인플레이션이고 따라서 중심 전략이 통화주의나공급자 중시의 경제신 자유주의 같은 다양한 규정 하에 경제적인 구조조정의 하나가 되었다는 것이다하이예크의 시대는 케인즈의 시대를 대체했다. 1970년도 후반 제삼세계에 부채 위기를 초래한 연방 준비 이사회의 의장인 폴 볼커의 이자율 쇼크[각주:1]는 이런 억압하는 모든 변화 중에 하나였다군비 확장의 새로운 경향과 제국주의적 간섭주의는 노동자 계급의 수입을 삭감하려는 노력과 연계되어 가난한 자들에게서 부와 수입을 부차들에게 재분배하였다국제적으로 이러한 변화는 제3 세계의 부채를 그 지렛대 삼아서 세계적인 구조조정의 형태를 가져왔고 이는 신 자유주의적 세계화의 시대를 촉발했다.

 

Sweezy와 Magdoff(이들은 1969의 Monthly Review에 선임 공편자로 합류했다)는 그 시대 전체를 걸쳐 스테그플레이션이 독점 자본주의 경제의 근본적인 경향이며 생산성의 약화나 실물 경제의 약화가 금융의 거대한 증가에 의하여 가려졌다고 주장했다. 1970년부터 1980년까지 그들은 번영의 종말(1977)”, “스테그플레이션과 금융의 급증(1987)”과 그 밖의 다른 연구들을 출판했는데이는 구조적 약화의 징후를 점차 많이 보여주는 생산기반의 위에 선 자본주의 경제의 금융 상부구조의 지속적인 팽창을 중점적으로 다룬다. “스테그플레이션에 대항하는 힘들 사이에서”, 그들은 최근의 연구에서 이를 이야기했다. “경제적 분석에 의해 성장률보다 더 중요하지만 덜 이해된 것은 없다1960년대부터 시작하여 1970년대까지 기반이 되는 실물” 경제의 유달리 지지부진한 팽창 속도 속에 있었던 심각한 경기 침체 이후, 점차 국가 부채 구조(국가기업개인의)가 급격하게 가속도를 얻고 있다.” 이러한 결과는 유래 없이 거대하고 허약한 금융 상부구조의 출현이었고 이 상부구조는 경제 전체를 점차 위협하는 부담과 압력을 받았다. 

 

Magdoff Sweezy로부터 밝혀진 신용대출시스템의 투기적인 성장 경향은 겨우 성공적인 몇십 년 동안만 가속화되었다미국 경제 내에서 전체 개인 부채는 1970 GDP 110%에서 207 293%로 상승했다. -공공에 의하여 쓰사용된 국가 부채를 포함한 전체 빚은 1970년대에 GDP 150%에서 2007년에는 346%로 올랐다.- 재발하는 신용 붕괴 속에서 재정적 불안은 점차 명백했다부채의 성장은 Monthly Review에서 주장하듯이마약 중독과 같았다이는 대상의 생태학적 조건이 천천히 약화되면 동일한 자극적인 효과를 내기 위하여 더 많은 마약이 필요하단 의미에서이다. 1970년에는 새롭게 생기는 부채에 비하여 미국의 GDP의 성장은 대략 새롭게 생기는 부채 1달러 당 60[각주:2]센트였다. 2000년대 초반에는 새롭게 생기는 부채 1달러당 약 20센트까지 하락했었다.

 

지난 40년 동안 (1970부터 2010년까지미국의 경제는 그리고 전체적으로 세계의 경제는 아시아의 일부분 국가의 급격한 성장에도 불구하고다년간에 걸친 하락을 겪고 있다미국 경제의 성장률은 -인플레이션을 감안하더라도십 년마다 점차 자멸하고 있다이 성장률은1960년대에 비해 1970년이 더 낮고 또 이러한 1980년보다 더 낮고, 90년대는 70년대보다 낮다그리고 2000년부터 2009년까지는 1980년과90년대보다 낮다외국 자본의 투자는 1965~6년까지 GDP 4.8%에서 2005~6년에는 2.6%로 하락했다비농업부문의 노동자들의 실제시간당 수입은 1972년에 최상한가에 도달하였고 2006년에는 1967년대 수준으로 떨어졌다. GDP의 배율상으로 수입과 급여가 1970년에서 53%에서 2006년에는 46%로 하락했다이러한 동일한 일반적인 스테그플레이션의 경향은 유럽과 일본에도 역시 영향을 끼쳤다.

 

금융화

 

1980년대 후반과 (1987년대에 주식시장의 붕괴 이후) 1990년대 후반에 계속해서, Sweezy는 스태그내이션 동전의 다른 측면인 선진 독점 자본주의가 가진 다소 영속적 경향으로 보이는 금융화 개념과 싸웠다. 1997년에 그는 이렇게 썼다. “1974년부터 1975년까지의 불황의 시기에서 시작된 자본주의의 최근 역사에 매우 중요한 세 가지 바탕이 되는 경향이 있다그것은 첫째로 전반적으로 성장률이 서서히 하락하고 있다는 것둘째로 독점적인 다국적 기업(혹은 복합 기업)의 세계적인 확산그리고 세 번째는 자본 축적 과정에서의 금융화라고 불리는 것이다.” -그가 말한 네 번째 경향은 세계화인데이는 길어지고 더 복잡하고 다양한 현상이라는 것이다이는 제국주의의 성장을 반영하고 자본주의적인 세계경제의 초기로 돌아가는 것이다.-

 

금융화는 자본주의 경제의 중심축이 생산에서 금융으로 넘어가는 변화로 규정할 수 있다금융 위기와 불안정성은, Sweezy가 주장한 바대로 언제나 경기 사이클의 정점에서 나타나는 요소였었다그러나 이것이 장기적인 추세로 금융화가 확장되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설명했는가과거 역사적 경험을 역행하여빠른 성장률이 아니라 느린 성장률에 의존하는 경기 투기가 가능했는가이것은 명백하였는데 기업들과 부유한 투자자들이 처분할 수 있는 잉여를 가지고 있었고 그들은 그것을 다양한 자산으로 투기하는데 쏟아 부음으로써 사라지는 투자 기회에 맞서 그들의 화폐 자본을 보존하거나 증식시키려 하였다투자기관이 외부의 불투명한 금융 수단즉 모든 종류의 미래채권옵션파생 상품들의 무한해 보이는 공급을 제공할 수 있었는지는 불투명하다그러나 신용 붕괴에 의하여 방해받을 지라도, 이 전체 게임이 지속될 수 있게 하는 최후의 채권자로 중앙 은행들의 간섭을 둠으로써 몇 십 년간의 카지노 경제[각주:3]의 지속은 오직 자본주의 경제의 질적 변화에 지나지 않음을 반영한다.

 

Sweezy 25년 동안 “Monopoly Capital”를 회고하며 이 문제를 제시했다. “맑스적 경제와 주류 경제 양측에 세워진 전통에서 우리는 자본의 축적을 본질적으로 현존하는 자본재의 비축에 부가하는 문제로 대해왔다그러나 사실 이는 과정의 한 측면일 뿐이다자본의 축적은 또한 금융적 자산의 축적에 더해지는 문제이다이 양측면은 물론 상호 밀접한 관계를 맺는다그러나 이런 상호 밀접성의 본성은 최소한으로 말하기에도 문제가 많다여전히 이런 상호밀접성의 다양한 측면은 점차 확실해졌다.

 


• 금융화는 FIRE(금융보험부동산부문에 만들어진 일자리를 통하여 그리고 증가된 자산 매매가를 새로운 요구로 바꾸어내는 모든 부의 효과를 통해 침체된 경제를 부양하는데 도왔을 것이다

• 금융화는 생산에 있어서 스태그내이션의 근본적인 문제를 바꿀 수 없었다그리고 같은 방법으로 오히려 그것을 가중시켰다.

 

• 실물 경제와 관련된 금융의 성장은 또한 터질 위험을 갖고 있는 금융 위기의 출현을 의미했다.

 

• 독점 자본주의 경제는 금융 위기 상황에서 유동성과 현금을 제공받기 위하여 주로 최후의 대출자로 중앙 은행에 점차 의존하고 있었다.

 

• 중앙 은행들이 금융 시스템이 붕괴하는 것을 막는 것에 더욱 효과를 발휘할수록점차 그들은 그 문제들을 이면에서 더 큰 문제로 만든다.

 

• 만약 재정적 거품이 거대해진다면그 거품은 중앙 은행이나 국가의 재정부의 재량을 압도할 수도 있고이러한 상황에서 심각한 부채 위축은 예상할 수 있었다

• 경제적인 힘은 기업의 이사회에서 금융 기관과 시장으로 넘어가고 있었으며금융의 세계화 과정을 통해 이것은 복잡한 방식으로 전세계 자본주의 경제에 영향을 끼쳤다.

 

• 금융의 비중이 커진다는 것은 금융 회사들의 확장뿐만 아니라 금융 보조회사의 증가와 비금융 회사들의 활동의 성장에서 명백했다.

 

• 1980년대와 90년대의 금융화는 아주 장기적인 세계화의 진행으로 보았을 때 새로운 세력이었고 또한 신 자유주의 경제정책의 전체 시대를 비추어 보더라도 결정적인 요소였다.


• 
금융화는 적자의 역할로 바뀐 국가 부채와 다양한 방법으로 점차 상호교류를 했었고 특히 이것은 세계 금융화의 중심지인 미국에서 그러했다.

 



깊게 침체된 스태그내이션의 경향을 볼 때금융화가 지속되는 것 외에 자본주의 경제에 대안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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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에서 계속 됩니다. 원본은 직접 몬슬리 리뷰(monthly review)에서 찾으시거나 인터넷에서 원문 검색을 해보시길^^ 

  1. 1979년 볼커의 '전환' 그가 연방준비이사회의 의장이 되고나서 미국의 실질 이자율을 대폭 상승시켜, 미국 내 인플레이션을 잠재웠다. 그 후 그는 '인플레이션 킬러' 라는 별명을 얻었다고도 한다.. [본문으로]
  2. 역주 : 즉 부채가 1달러 늘어날 때에 국민들의 평균적인 소득은 60센트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는 빚이 소득보다 크다는 말이다. [본문으로]
  3. 금융자본주의가 아무것도 생산하지 않고 오로지 자본을 투입하기만 하여 다른 투자자의 화폐를 가로챈다는 의미에서 "카지노", 즉 도박과도 같은 현상을 가리키는 조롱적 표현이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