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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 밑 아리에티 리뷰 -돈과 시간의 남아도는 '잉여'들에게만 권하고픈 영화관에 들어가며 지브리 스튜디오의 작품 세계를 좋아하는-솔직해지자면, 지브리의 나머지 사람들을 볼 거 없어도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을 추종하는- 사람들은 이 "마루 밑 아리에티"를 꼭 영화관에서 보고 싶을 것이다. 더구나 지난 번 영화 "벼랑 위의 포뇨"를 미야자키 하야오가 100% 자신의 수작업으로 완성했다고 믿는 사람들은 더욱 그러할 것이데, 미야자키 하야오가 벼랑 위의 포뇨를 직접 그렸건 안 그렸건 간에 전작이 보여준 아날로그적 감성과 아름다운 영상미는 요즘의 3D 영화와는 사뭇 다른 매력이 있기 때문이다. 거기에 전작 벼랑 위의 포뇨는 동심을 잘 살리면서 전개가 우왁스럽거나 유치하지 않다는 점에서 어른도 충분히 즐길만한 작품이었다. 반면 '마루 밑 아리에티'는 반지하 원룸에 사는 경제 형편인데도.. 더보기
이용 당하는 자들을 위한 변명 믿음은 사실을 입증할 수 없거나 논리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명제를 근거로 구축된다. 믿음은 의지의 산물이지 주어진 사건, 사실에 대한 기술은 아니기 떄문이다. 1+1=2만큼의 필연성을 가진 사실은 어떠한 의지의 작용을 필요치 않아도 참이라고 말할 수 있다. 혹시 누군가가 1+1이 왜 2인가라는 물음을 던진다면, 그것은 우리가 '논리'라고 부르는 개념의 배후 전제들을 의심하는 것이지, 1+1이 2가 된다는 자명성에 대한 의심은 아니다. 어쨋거나 우리에게 논리적 사고력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 논리적 사고에서 해결할 수 있는 일에 대해서는 '믿는다'는 말은 큰 의미가 없다. 믿음은 흡사 필연성이 있다는 듯 이야기 하지만 그 필연성에 도달할 수 있는 논리가 부재하며, 경험을 증거로 내세우지만 개연성을 초월해 .. 더보기
독점의 시대-금융 자본 by 존 벨라미 포스터 (2/2) 심각한 금융 위기와 2차 경기 침체 우리는 먼저 Monthly Review에 미국의 경기를 침체시킬 잠재적 요인으로 폭증하는 부동산, 주택 버블을 언급했다. 이 기사는 Harry Magdoff와 Robert McChesney와 함께 2002년 11월에 쓴 것이었다. 그 글은 이전 봄 “무엇이 회복했는가?” 라고 제목이 붙은 기사에 이어지는 것으로, “주택 거품은 이것의 터지지 않는 한도 내에 빈약해질 대로 빈약해질 만큼 부풀어오를 것”을 논의했다. 그 문제는 점차 중대해졌기 때문에 나는 2006년 Monthly Review 5월호에서 “주택 부채의 거품”을 썼었다. 여기에서 나는 (노동자들에게 가장 큰 부담을 주는) 주택 융자대출로 감당할 수 없는 부채와, 경제 전반에 미칠 영향과 함께 그 거품이 터질 .. 더보기
독점의 시대-금융 자본, John Bellamy Foster 독점의 시대-금융 자본, John Bellamy Foster 2010년 2월 9일 Monthly Review 61호 편집자의 말 이 기사는 2009년 12월 베트남의 하노이에서 호치밀 대학의 정치 및 정치 행정과가 주관하는 회의 World Today라는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이론과 실행에 관한 워크샵에서 발표를 위해 쓰인 글이다. 3년 전인 2006년 12월, 나는 Monthly Review에 “독점 금융 자본”이라는 제목으로 기사를 썼었다. 그 때는 1966년도, 40년 전에 이미 발행된 폴 배런과 폴 스위지의 “Monopoly Capital”의 기념일이었다. 내가 쓴 “배런과 스위지가 출판한 책의 40주년 기념일에 제기한 중대한 질문.”은 다음과 같다. 자본주의가 변하고 있는가? 자본주의는 그들이 묘사한.. 더보기
위기와 희망 : 그들의 것과 우리의 것 (8부) By Noam Chomsky 위기와 희망 : 그들의 것과 우리의 것 (8부) By Noam Chomsky Boston Review 2009년 9월에서부터 10월까지 • • • 미국 생산력을 고의적으로 붕괴시키고 있다는 경고는 수십 년 동안 알려졌고 아마도 최근에 세무어 멜먼이 가장 눈에 띄게 주장해왔다.멜먼은 또한 이 붕괴의 과정을 전복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을 제시했다. 정경유착의 지도부는 여러 약속을 했지만 거기에는 노동자 세력과 시민 단체라는 “이해 당사자”의 측에서 받아들일 아무런 이유가 없다. 대중적인 지지를 받아 정경유착의 지도자들은 공장을 인수했고 스스로를 재구축하는 업무를 시행했다. 그것은 실로 급진적인 제안은 아니다. 기업에 대한 기준이 되는 문서인 ‘국제 기업의 신화’는 다음을 시사한다. “미국 기업주의 단기적인 이.. 더보기
위기와 희망 : 그들의 것과 우리의 것 (7부) By Noam Chomsky 위기와 희망 : 그들의 것과 우리의 것 (7부) By Noam Chomsky Boston Review • • • 다시 서구사회가 이러한 “위기”, 즉 금융의 위기를 어떻게 보는가로 돌아가보자. 짐작하건데 이 위기는 어떻게든 보완될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대부분 이 위기를 만든 기관들은 그대로 있는 형태일 것이다. 최근 재무부에서는 부실자산 구제(TARP)에 예산 재편성을 승인했고 이 TARP는 은행의 대출 한도를 축소했다. 그러나 아까 지적한 대로 재무부는 이 문제를 일으킨 소수의 장본인들에게 은행의 자금을 쏟아 붓는 것을 승인했다. 월 스트릿의 주도권은 New York Mellon(이하 NYM)의 두 은행의 수장에게 넘어갔다. 그들은 뉴욕 타임즈에서 다음과 같이 보고했다. “그들은 그들의 삶과 수입.. 더보기
내일을 향해 쏴라(Butch Cassidy and the Sundance Kid), 리처드 레스터 감독, 폴 뉴먼, 로버트 레드포드 서부 영화 좋아하세요? 굳이 서부 영화의 매니아는 아니더라도 리처드 레스터 감독의 "내일을 향해 쏴라"는 너무나 유명한 문구가 되었다. 반드시 이 영화를 보지 않는 사람이라도 '내일을 향해 쏴라'란 말을 한 번쯤 들어보았으니 말이다. 흡사 이것은 하드보일드의 거장 미키 스필레인의 "복수는 나의 것"이 매혹적인 타이틀로 여러 변주를 자아내고 있는 것과 비슷하다. 그리고 이 공로의 일부분은 번역가의 탁월한 솜씨 덕으로 돌려야 하겠지만, 역시 너무나 위대한 명작의 제목이기 때문에 많은 이들의 뇌리 속에 깊히 박혀 있다는 이유가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어쨋건, 이 영화를 본 사람이나 그렇지 않은 사람이나 이 영화의 영향을 얼마쯤 받고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 내일을 향해 그들이 쏜 것은 1969년에 개봉한 이 .. 더보기
빌 게이츠와 게이츠 재단의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 빌 게이츠가 소위 ‘창조적 자본주의’를 제시한 이래, 그를 부르는 수식어에 ‘자선왕’이라는 낱말이 합류했다. 창조적 자본주의의 요지는 이렇다. 2008년 1월 25일 [머니투데이]에 실린 그의 말을 빌리자면 “창의적 자본주의는 기업과 비정부조직이 함께 일하면서 전세계 불평등을 완화할 수 있는 시장 시스템”을 개발하는 일이다. 그는 신자유주의의 둥지인 미국에서 새로운 자본주의의 태동을 예고하고 또 스스로 실천에 옳겼다. “게이츠 재단”이 그것이다. 게이츠 재단은 현재 아프리카 기아에 맞서, ‘미국의 리더쉽’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는 모범적인 자선 조직으로 거듭나고 있다.이제 게이츠는 서구 문명권에서는 사업가로, 가난과 배고픔에 시달리는 아프리카 등의 제 3의 진영에서 자선가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대부.. 더보기
위기와 희망 : 그들의 것과 우리의 것 (6부) By Noam Chomsky 위기와 희망 : 그들의 것과 우리의 것 (6부) By Noam Chomsky Boston Review • • • 이러한 무서운 적에 대한 기만이 진실이었건 아니건, 반 세기 전에 미국이 그들의 손자들이 누리는 컴퓨터와 아이팟, 인터넷 등등을 가능케 했던 펜타곤의 프로그램에 투입된 그들의 세금을 감독할 수 있는 선택권이나 혹은 그 세금을 사회과학적으로 삶의 가치를 높이고 지속 가능한 발전에 쏟아 부을 권리 중에 선택을 할 수 있었다면 그들은 아마도 후자를 택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에게 선택권은 없었다. 그런 상태가 일반적이었다. 국내에서나 해외에서 문제의 주요 핵심에 있어 대외적 정책과 대중적 의견 사이에서는 심각한 차이가 있다. 그리고 적어도 내 판단에서는 대체적으로 대중의 선택이 좀더 옳았다. 시간이.. 더보기
위기와 희망 : 그들의 것과 우리의 것 (5부) 위기와 희망 : 그들의 것과 우리의 것 (5부) By Noam Chomsky Boston Review • • • 그러나 나토에 대한 변명은 최소한의 진실은 시사하고 있었다. 소비에트의 붕괴 이후, 그 변명은 허물어졌다. USSR의 말기에 고르바초프는 놀라운 양보를 만들어 냈다. 그는 통일 독일이 세계적 초권력 집단에 의해 발족된 위협적인 군사 동맹에 가입하도록 인정한 것이다. 20세기 독일은 단독으로도 두 번이나 러시아의 거의 초토화시켰지만 말이다. 그것에 대하여 최근에 밝혀진 보상이 있었다. 그것에 대한 원본 서류를 처음으로 심도 있게 연구한 마크 크라머는, 미국이 그들의 표리부동적인 행태에 대해 책임을 회피하려 한다는 것을 찾으려 했다. 이 사건이 예상 이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밝히면서 말이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