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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

내일을 향해 쏴라(Butch Cassidy and the Sundance Kid), 리처드 레스터 감독, 폴 뉴먼, 로버트 레드포드

 서부 영화 좋아하세요?


 굳이 서부 영화의 매니아는 아니더라도 리처드 레스터 감독의 "내일을 향해 쏴라"는 너무나 유명한 문구가 되었다. 반드시 이 영화를 보지 않는 사람이라도 '내일을 향해 쏴라'란 말을 한 번쯤 들어보았으니 말이다. 흡사 이것은 하드보일드의 거장 미키 스필레인의 "복수는 나의 것"이 매혹적인 타이틀로 여러 변주를 자아내고 있는 것과 비슷하다. 그리고 이 공로의 일부분은 번역가의 탁월한 솜씨 덕으로 돌려야 하겠지만, 역시 너무나 위대한 명작의 제목이기 때문에 많은 이들의 뇌리 속에 깊히 박혀 있다는 이유가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어쨋건, 이 영화를 본 사람이나 그렇지 않은 사람이나 이 영화의 영향을 얼마쯤 받고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 

내일을 향해 그들이 쏜 것은

 1969년에 개봉한 이 영화의 원래 제목은 "부치 캐시디와 선댄스 키드"이다. 영화 초반에도 미리 밝혀두지만 부치 캐시디와 선댄스 키드는 실존했던 인물이며 역시 영화의 줄거리도 그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제작된 것이다. 그런데 왜 한국에서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제목으로 바뀌었는지 알 수는 없다. 추측하건대, 영화의 마지막 부분, 절망적인 상황에서 특유의 낙천성을 잃지 않은 부치가 부상 당한 선댄스에게 이제는 호주에 가서 한탕 치자고 설득하는 장면에서 추출한 것이 아닐까 한다. 

 그러나 제목과는 다르게, 과연 그들이 내일을 향해 가고 있었는지, 그렇지 않은지는 영화를 보며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역사적으로 영화의 배경이 되는 시대는 서부의 '골드 러시'가 끝나고 개척 시대가 막을 내린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 즈음, 동, 서부를 잇는 철도가 등장하면서 본격적으로 동부의 자본이 서부에 유입되는 시기이다. 부치가 이끄는 '산골짜기 갱단'은 낭만적인 무법의 시대를 지나 변두리 은행을 터는 강도단이었다. 영화가 시작하기 전 흑백의 무성 영화의 한 컷으로 표현한 '산골짜기 갱단'은 무대를 잃어버린 무법자의 위상 그대로를 표현한다. 무성의 흑백 필름의 효과는 서부 무법자들이 이제 과거의 기억이 되었음을 감독의 감상에서 관객의 시선으로 전이해 준다. 또한 영화 곳곳에서도 이제 막을 내리는 서부 시대를 보여주고 있다. 보안관도 무섭지 않았던 그들에게도 두려운 것이 있었으니, 바로 유니온 퍼시픽사에서 고용한 '용병'이었다. 이 '용병'들은 영화 초반부터 중반까지 산골짜기 갱단을 와해시키고 선부치와 선댄스를 집요하게 뒤쫓는다. 목표는 선댄스와 부치의 목숨. 그런데 그 용병들의 정체가 흥미롭다. 추척자들에게 쫓기면서 선댄스와 부치는 말한다. "존 러포어스? 그는 와이오밍을 안 벗어나." 그리고 그 외의 장면에서 유추해보건데, 그들을 쫓는 추적자들은 서부 시대에 이미 '한가닥'하는 인물들인 것이다. 추적자 몇 명을 고용하는 돈이 열차를 두어 번 강도질한 것보다 많다고 얘기하는 대화에서도 그들이 굉장한 거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들, 영광의 시대를 지난 추적자들은 이제 자본의 편에서 부치와 선 댄스를 쫓는다. 왕년 스타의 퇴장과 변절, 그리고 시대는 잔존 세력인 산골짜기 갱단도 거부한 것이다. 다음 범행 장소로 볼리비아를 선택한 그들은 진취적으로 미래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실상 쫓겨난 것임에 다름 없었다. 서부에는 더 이상 무법자들이 설 자리가 없었다.

 문명과 자본, 공권력이 미약했던 개척 시대를 벗어난 무법자들은 더 이상 '터프 가이'가 아니었다. 볼리비아로 건너간 그들은 은행 강도질을 하기 위해선 먼저 스패니쉬를 배워야 하는 '현실적인 문제'에 부닥쳐야 했다. 강도질용 기초 회화를 공부하는 무법자의 모습은 '가오 상하는' 일이지만, 어쩌겠는가? 먹고 살기 위해 뭐라도 해야 하고, 그들이 배운 건 빼앗고 훔치는 일이 전부였다. 그래도 그런데로 그들이 서부의 삶을 아직 만끽할 수는 있었다. 아직 공권력과 자본의 힘이 강하지 않은 볼리비아에서 그들는 영광을 되찾은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본의 힘은 그들을 조금씩 쫓아오고 있었다. 애초에 그들을 쫓아낸 존 러포어스의 추적자들에 대한 공포는 부치에게 되살아났고 그들은 -어쩌면 난생 처음- 직업을 갖자는 결심을 하게 된다. 이제 무법자들은 자신이 턴 은행에서 출금하고, 남의 돈을 지키기 위해 총을 꺼내야 하는 신세가 되고만 것이다.

현실과 그들의 연결고리, 에타



 그렇게 우리의 친구 부치와 선댄스가 그렇게 성공적으로 직장 생활에 적응하였더라면, 아무도 죽지는 않았을 테지만 그렇다면 그에 대한 애수는 없었을 것이다. 도적들을 쫓다가 월급쟁이로 살다보니 무법자 시절에도 하지 않은 살인을 하게 된 부치에게 선댄스는 "우리는 이제 새사람이 된거야."라고 말한다. '새사람'이 된다는 것이 강도들을 쏘아죽이는 일이라는 아이러니 속에서 결국 그들은 올바르게, 즉 합법적으로 사는 것을 포기한다. 이제 그들이 '이쪽'이 아니라 '저쪽'에 남겠다고 결정한 순간, 현실과 낭만 사이, 그들과 세상 사이에 서 있던 에타는 먼저 '돌아가겠다'고 선언한다.

 너무나 그녀를 사랑했던 부치와 선댄스였으나, 아무도 그녀를 붙잡지 않는다. "네가 원하는 대로 해." 왜 그녀를 붙잡지 않을까? 내 생각에, 부치와 선댄스는 그녀를 걱정해서 돌려보낸 것은 아닌 것 같다. 
 
 잠깐 에타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자면, 그녀의 존재감은 영화 중반까지 나타나지 않으나 후반에서 에타는 부치 일행과 현실을 묶어 주는 상징적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외형적으로 그녀가 부치 일행을 쫓아다니며 일탈을 행한 것으로 보이지만, 실은 그녀는 부치 일행에게 현실에 살고 있음을 보증하는 유일한 보증 수표였다. 그녀가 떠난 후 부치와 선댄스는 현실에서 완벽하게 유리되었다. 마찬가지로 그녀 역시 환상을 떠나 일상으로 돌아간 것이다. 이제 살아가는 세계를 달리한 그녀에게 그들이 해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또한 그녀가 점차 저물어가는 자신들의 세계에 계속 머무를 수는 없다는 것을 그들도 짐작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마치 죽은 동료를 보내는 것처럼, 부치와 선댄스는 그녀를 떠나보냈다. 그리고 그녀의 빈자리에 대해 어떠한 어떤 감정도 보여주지 않는다. 갈림길에서 그녀와 부치 일행은 서로 다른 길을 택했고 그 길 사이에는 결코 좁혀지지 않은 틈이 있었기 때문이다.


 냉혹한 '이곳'의 세계는 무법자를 더 이상 용납하지 않았다.

 에타라는 세상과의 고리가 끊어진 선댄스와 부치는 세상 속의 '무법자'가 아니라 그저 세상 밖의 '이방인'에 불과했다. 흡사 바이러스를 몰아내려는 백혈구처럼, 엄습해오는 현실에서 끊임없이 도망치던 부치와 선댄스가 막다른 골목에 당도할 것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결국 이 세상에 무법인 장소는 없었으며 제도권을 거부한 이들에게는 무서운 보복만이 기다리고 있다는 냉혹한 사실이 마지막에 기다리고 있었던 것. 우습게도 총알을 맞은 상황에서도 선댄스에게 다음에는 호주로 가서 한탕하자는 부치의 꼬드김은 희망찬 어조가 아니었다. 그들이 가진 것이라고는 한 자루의 총과 길들여지지 않는 정신밖에 없었기 때문에, 그래서 도망치는 것만이 그들의 전부 였기 때문이다. 밖에서 수많은 총부리가 자신을 겨누고 있는 지도 모르는채, 이제 호주로 가자는 어처구니 없는 계획을 세우는 그들의 결말은 분명 자조 어린 베드 엔딩이었다. 그러나 부치와 선댄스의 죽지 않은 정신이 수 십개의 총알이 그들의 몸을 관통한 후에도 말을 몰고 기어코 호주로 가겠다는 듯, 레스터 감독은 마지막 그들의 최후를 영상으로 남겨두지 않았다. 물론 실제의 사건을 바탕으로 하는만큼, 실존 인물인 부치와 선댄스는 서부 시대의 퇴막과 함께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졌지만 영화 속 부치와 선댄스는 빗발치는 포화 속을 달려나가면서 멈춰 있었다.
 
 필자의 견해를 말하자면, 제목과는 달리 그들의 총구는 내일을 향해 있던 것이 아니라 그들의 숨통을 조여오는 현실을 겨누고 있었다. 또한 그들이 달려나간 곳은 미래가 아니라 기차와 악당과 보안관, 금광이 있던 낭만의 세계였다. 즉, 그들은 리얼리티가 아니라 판타지의 거주민이었다. 이렇게 숨을 쉬는 육신 안이 아니라 삽화와 이야기 속에 살고자 할 때 그것은 일종의 불멸성을 획득한 것이 아닐까? 그러므로, 그들은 죽지 않았다는 확신이 든다. 그리고 지금까지 별 소식이 들리지 않는 것으로 보아, 호주에서는 재미가 시원치 않나 보다.




영화 속 놓칠 수 없는 재미들

"내일을 향해 쏴라"에서 놓칠 수 없는 또 다른 재미는 OST를 감상하는 재미이다. 영화만큼이나 유명해진 Rain drops Keep Falling on my head이 흘러나오고 부치가 에타를 자전거에 태우고 목장길을 달리는 장면은 마치 꿈꾸는 듯이 로맨틱하다. 그리고 중후반부에서 볼리비아에서 벌어진 경찰과의 추격전에서 흘러나온 음악을 듣고 있으면 말을 타고 그들과 함께 달리는 듯한 유쾌한 기분을 자아낸다. 드문드문 터지는 부치와 선댄스의 꽁트 같은 대화 역시 영화를 즐겁게 하는 포인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