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목록

언제부터 논리가 만능열쇠였다고 별 것 아닌 진실을 털어놓자면 일상 생활에서 우리는 사실 그렇게 논리적이지 않다는 거다. 텍스트를 기반한 온라인 생활에서는 문장이 갖는 논리적인 힘이나 수미일관한 구조가 나름 중요하다. 그러나 시간을 타고 언어가 흐르는 구술 상황에서는 다르다. 어렸을 적 웅변 대회에 나가서 두 손을 치켜 들고 '힘차게/힘차게/외칩니다아아아!'라는 제스처가 필요했던 까닭도 같다. 구술 언어에서 논리적인 비판은 그렇게 호소력을 갖지 않기 때문이다. 일상 생활에서 우리는 논리적으로 사고하지 않고, 그렇게 사고하려고 연습하지도 않는다. 그러니 자칭 논리왕들이 말도 안 되는 뻘글을 쓰더라도 측은한 마음으로 웃어주자. 그래도 쟤는 노력이라도 하잖아. 논리적인 사고는 오히려 비효율적이다. '백조는 모두 희다'라는 명제는 검은 백조로.. 더보기
글을 쓸 각오는 되었나 라는 가요가 있다. 왜? "쓰다가 틀리면 지우개로 깨끗히 지워야 하니까" 단, 연필로 써도 괜찮은 것은 연애편지로 한정된다. 그 밖에 모든 글은, 비록 망작이나 습작일지라도 지워지지 않는 필기구로 써야 한다. 글을 쓰는 사람이 가장 하지 말아야 할 짓 중 하나가 발표한 글을 지우는 것이다. '처음부터 수틀리면 물리고 말지'라는 마음가짐으로 글을 써서도 안 되지만, 일단 글을 지우고 나면 고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고쳐지지 않은 글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영원한 오류로 남는다. 그깟 글 좀 틀려서 뭐가 어떻겠냐고? 글은 생각의 구현이라는 점을 우리는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글의 오류는 생각의 오류를 의미한다. 물론 우리 모두에게는 틀릴 가능성이 있으므로, 틀리는 것 자체가 그렇게 나쁜 것만은 아니다. 중요.. 더보기
아동기의 신화는 해체되어야 하는가? 모님과 이야기하다가 아동기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서 몇 가지 글을 찾아보았다. 확실히 아동을 어른과 다른 특별한 존재로 보기 시작한 것은 근대 이후의 일이고, 아동을 보호의 대상으로 본다는 것은 오롯한 인간으로서 사회활동과 권리를 일시작으로 박탈하거나 제한한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아동의 탄생은 아이를 보호할 명분이 되기도 하였지만 아이의 인권을 제한하기도 하는 이중적이면서도 불완전한 상태로 남겨두었다는 것이다. 이 글을 전부 읽으면 좋겠지만 우리의 시간은 소중하니까, 아이의 인권을 신장하자는 측의 주장(http://jbreview.jinbo.net/maynews/readview.php?table=organ&item=&no=392)을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1. 아동은 아동의 결정권을 거머쥔.. 더보기
모에화, 욕망의 재구성 모에화, 욕망의 재구성 함문수 검찰총장 모에 지난 3월 크림 공화국이 우크라이나에서 독립을 선언한 직후, 인터넷에 가장 화재가 되었던 것은 우습게도 크림 공화국의 신임검찰총장의 미모였다. “김태희가 밭을 매고 있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로 이 지역에 자자한 평균 미모의 우월성(?)은 주요 공직자에게도 여지없이 적용이 되나보다. 덕분에 크림 공화국의 나탈리아 포클론스카야 검찰총장의 유투브 영상은 다른 의미에서 엄청난 조회수를 기록했다. 덩달아 재미있는 현상은 일본과 한국 등지에서 그녀의 미모를 찬양하는 캐리커처가 엄청나게 유행했다는 점이다. 이것이 얼마나 국제적으로 화제였는지, 크림 공화국의 현지 언론사는 나탈리아 검찰총장과 인터뷰에서 이를 언급할 정도였다. 미소녀 숭배와 모에 현상 한 대상을 귀엽고 .. 더보기
저널리즘의 죽음-완, 우리가 해야할 일 그러므로 오늘날 저널리즘은 그것이 실천해야할 보도의 권리에서 진짜 문제를 갖고 있다. 이는 미국의 외교문제와 군국주의에 대한 보도를 할 때 가장 심각하게 나타난다. 공화당이나 민주당의 지도부는 하나 같이 미국이 007이라도 되는 양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미국은 당국이 이스라엘처럼 안보의 권리를 양도한 나라를 제외하고, 국제안보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은 어떤 나라도 이러한 권리를 행사하지 못하게 막고 있다. 그러나 이것에 관한 보도는 결코 뉴스 미디어에서 다루어지지 않고 있다. 따라서 미국은 다른 나라를 침공할 수 있는 권리를 갖고 있다는 생각이 성립된다. 때로는 사건이 일어난 다음에, 때로는 사건의 이전부터 미국의 수뇌부는 자신의 침공을 정당화하는 어떤 변명거리를 만들어낸다. 그러나 언론에서 이러한 정.. 더보기
저널리즘의 죽음-6부 전문 저널리즘의 몰락 우리가 가진 언론 시스템이 남루하고 썩어가고 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심지어 여러 측면에서 노암 촘스키가 권력에 아첨하는 무리 중에 한 사람이라고 기술했던 월터 리프만마저도 이 시대의 언론에 대해 비평을 가했다. 그만큼 이 시대의 언론은 위태로웠다. 1920년대 초기부터 1940년대까지 논의된 바에 따르면 언론의 위기를 해결하는 방법은 소위 “전문적인 저널리즘”을 설립한 독점 미디어 사주가 만든 자기규제였다. 이것은 자못 혁명적인 아이디어였는데, 그 방법이란 사주와 편집국 사이에 만리장성을 쌓아 서로 분리시키는 것이었다. 한쪽에서는 언론사 사주와 광고주, 사업적 파트너가 뭉쳐서 영리사업을 취하고, 이 장벽 너머에는 에디터와 리포터를 위치시키는 것이다. 에디터와 저널리스트는 교육기관에서 전문적.. 더보기
저널리즘의 죽음-5부 저널리즘 이전의 저널리즘 지난해 아마존은 CIA와 60억 달러의 계약을 했다. 얼마나 멋진 일인가. 다시 말하지만 나는 그가 악인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그를 옹호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구조적으로 이것은 납득할만한 것이었다. 우리는 이런 종류의 관계가 가능한 시스템 속에서 살고 있다. 우리가 사망판정을 내린 이런 “전문적인 저널리즘”의 모델은 이전의 언론 행태의 위기에서 비롯된 결과이다. 이전 시대의 언론들은 소위 “벼락출세한 저널리즘”이라고 부를만했다. 이제 그 벼락출세 언론들이 어떤 위기를 발생시켰는지 이야기해보자.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이 이야기는 19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미국 내에는 세계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인쇄 미디어들이 있었다. 말하자면 거대한 제도 폐지론자의 미디어나, 노예해방신문, 노동신문 .. 더보기
저널리즘의 죽음-4부 아마존이 위키리크스를 죽이는 방법 이제 위키리크스가 폭로를 밝히고 어센지가 망명 신청을 해야 했던 과거로 돌아가보자. 아마존은 사람들의 전자 정보가 축적된 거대한 클라우드를 갖고 있었으며, 많은 회사는 이 클라우드를 활용했다. 위키리크스 역시 다른 회사들이 했던 것처럼 아마존 클라우드를 이용했으며, 사용료를 지불하였다. 그러나 아마존은 어떤 사전 알림도 없이 위키리크스가 클라우드를 사용하는 것을 차단함으로써, 위키리크스가 기금을 마련하거나 활동을 하는데 방해를 했다. 심지어 위키리크스는 어떤 법적인 이슈에도 연루되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몇 정치가들은 위키리크스에 대해 불평을 터트리긴 했다. 예를 들면 조 리버맨 상원의원(역주-리버맨 상원의원은 독립당원으로서, FTA와 이라크 전쟁을 지지하며, 내부로는 게이의 인권이나 낙태, 레즈비안의 육.. 더보기
저널리즘의 죽음-3부 온라인 시장의 독점 나의 책 디지털 디스커넥트에서 밝힌 바 있지만 사건의 전모는 국가정보기관과 인터넷을 주무르는 독점적 디지털 콘텐츠 회사가 상호보완적인 관계에 놓여 있다는 것에 있다. 20년 전 터넷이 우리에게 주었던 장밋빛 공약은 인터넷이 거대기업의 독과점을 깨고 콘텐츠의 소비자나 중소회사 혹은 개인에게 다양한 방법으로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리라는 것이었다. 그 날이 오면 거대 기업은 높은 가격과 열악한 상품으로 약자를 등칠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만약 지금까지도 이런 레토릭을 구사하는 자들이 있다면 그들은 미국의 공룡기업과 독점의 축출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자들이다. 경쟁관계가 시작되고 시장의 황금기를 거쳐 시장의 반대자들의 시대가 올 것이라는 이 수사는 인터넷의 위대한 민주주의적 영향력 아래 대중들이 무엇을 하든.. 더보기
저널리즘의 죽음-2부 저널리즘의 몰락과 시민 기자의 출현 저널리즘은 늘 후퇴했다. 이것은 저널리즘을 유지하는 자원의 후퇴이자 저널리즘을 추구하는 조직의 후퇴이기도 하다. 인터넷 시대에 들어서자 무보수 저널리스트를 완곡하게 부르는 소위 “시민 기자”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기본적으로 자원봉사로서 저널리즘에 몸담고 있으며 여가 시간을 이용해 그들이 다루고 싶은 주제에 대해서만 블로깅을 하는 사람들이다. 사실 그들에 대해서는 누구도 어떤 기준을 제시할 수 없는데 그들은 순전히 자신의 쉬는 시간에만 활동하기 때문이다. 이들이 쓰는 글은 원치 않으면 읽을 필요조차 없는 글에 가깝다. 바로 이런 현상이 딜레마를 만든다. 저널리스트에 대한 종래의 기준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모든 사람이 저널리스트가 될 수 있을까? 이것을 가지고 왈가왈부하기는..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