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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10월 셋째 주 페북 드림 모음

1. 호루스벤누표 슬림필터와 어댑터링까지 장만했다. 이는 지난날 농사짓듯 블로그질로 해피머니를 긁어모은 여동생님의 은공이다. 정품을 써보질 않아 비교는 불가하나 역시 저가는 저가인 모양이다. 호루스벤누 어댑터의 만듦새는 그리 좋지 않다. 후드도 아구가 잘 안맞고. 무엇보다도 본체의 마그네슘 바디와 살짝 톤이 다르다. 이만하면 감지덕지긴 하지만. 


생각보다 x100s의 배터리 스태미너가 별로다. 한계체력은 삼백 장 남짓인데, 앉은 자리에서 오백 장을 넘게 찍어대던 니콘에 비하면 만들다 말은 수준이다. 배터리 용량 자체가 작은 탓도 있고 최신카메라라서 전자기능에 기대는 부분이 더 많은 탓일게다. 하기사 이건 말이 똑같은 디카지 예전 카메라가 일반 핸드폰이라면 이건 스마트폰이다. 조만간 추가 배터리를 구입하고 싶다. 그리고 외장형 플래쉬.. 이건 당분간 무리겠지?


첨언 하나. X100s의 오토화밸은 널뛰기가 장난 아니다. 빛에 따라 민감하게 반응하는 건지는 모르나, 같은 자리에서 같은 피사체를 찍어도 찍을 때마다 오토 화밸을 달리 책정한다. 이래서는 어두운 조명에서 파노라마를 찍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혁신적인 AF개선 어쩌구를 해도 여전히 어두운 곳에서는 맥을 못 맞춘다. 역시 외장형 플래쉬가 필요하다. 아, 고감도 노이즈 억제력과 디테일 표현은 굿. 어쩐지 여자들이 음식 찍을 때 사용하는 똑딱이 같은 색감은 저렴해 보이기는 하다. 그러나 어차피 대비가 강한 사진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2% 부족하면서도 딱히 사진에 손댈 것이 없다.





2. 부천역 근처 부천시장에는 프랑세즈 과자점이 있다. 겉으로 보면 상설시장 근처의 그렇고 그런 빵집처럼 보인다. 그런데 실제로 문을 열고 들어가면 마치 다른 차원에 있는 듯한 착각이 드는데, 고소한 빵냄새와 더불어 복고풍의 인테리어 특유의 세피아톤이 창 밖의 시장 풍경을 낭만적으로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바깥에서 안을 보는 것과 안에서 바깥을 보는 것이 이렇게 다르다니. 신기한 일이다. 


프랑세즈 과자점는 직접 빵을 만든다. 카운터 너머로 세 명의 제빵사가 부지런히 반죽을 하고 빵을 구우면 카운터에 있는 아가씨가 빵을 진열하거나 시간이 지난 빵을 잘게 잘라 시식용으로 만들어 해당 빵 근처에 놓는다. 그러면 손님으로 온 어린 남매가 브라우니 시식대에서 기웃거리다가 엄마에게 핀잔을 듣곤 한다. 


이 집을 찾는 손님들은 주로 여자들이다. 주로 한 끼를 떼울 요량으로 슬라이드를 썬 바케뜨나 마늘빵을 찾는 것 같다. 나는 시식용으로 나온 크림 치즈 베이글을 한 조각 먹었는데, 먹는 순간 지금까지 내가 먹었던 것이 실은 둥글고 질긴 빵이었을 뿐 실은 베이글이 아니었다는 의심이 들 정도였다. 빵은 다른 제과점보다 비싼 편이지만 일단 맛을 보면 납득이 간다.




3. 배고파서 혼자 스팸과 김치, 오뎅을 볶았다. 볶음김치는 뭐랑 먹어도 맛있고, 그냥 죄다 넣고 볶기만 하면 되는 거여서 그렇게 했다. 냉장고에 뭐 더 넣을 거 없을까 하는데, 2주 전에 작은 어머니께서 삶아주신 계란이 있었다. 더 이상 두면 버릴 거 같았다. 그리고 계란을 송송 썰어서 투척하는 동시에 나는 급후회했다. 냄새를 맡아보니 흰자는 괜찮은데 아무래도 노른자는 맛이 간 거 같다. 음식에서 하수구 냄새가 난다. 맛을 보면 뭐, 김치는 볶은 김치맛이 나고, 오뎅은 볶은 오뎅 맛이나고, 스팸은 볶은 스팸의 맛이 나는게 따로 놀아서 먹을만 한데. 냄새는 분명 어렸을 적 하수구 근처에서 놀다가 홀에서 올라오는 더운 김과 함께 맡던 그 냄새다. 아아. 부끄러워서 사진도 못 올리겠다.



4. 재미있는 것은 현금이라는 구체적 '물질'을 만드는 것에도 돈이 든다는 것이다. 돈을 만드는 데 돈이 들어간다는 자기소멸적 생산에서 우리가 아이러니함을 느끼는 까닭은 돈이 곧 구매력은 아니라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기 때문이다. 


10원이든 5만 원이든 그것은 그저 기계가 만든 물건이다. 엄밀히 말해 그것은 등가 가치는 그것을 제작하는 데 들인 비용(십 원짜리를 만드는데 드는 비용이 33원이라고 하던가) 이상이하도 아니다. 그러나 이것이 적법한 절차를 걸쳐 유통되는 순간, 사회적 합의로 인하여 페인팅된 숫자 그대로의 액면가를 갖는다. 다시 말해 제작비와 상관없이 천 원짜리 지폐는 천 원의 가치로, 만 원짜리 지폐는 만 원의 가치로 약속된다. 그렇게 지폐가 눈에 보이지 않는 구매력을 눈에 보이는 구매력으로 '물화'되는 순간, 우리의 구매력은 우리와 상관없이 한낱 지폐로서만 증명된다.


심지어 근래에는 전자화폐가 발행됨에 따라 '물질'로서의 현금은 가상세계에서만 존재하는 숫자로 대치된다. 이제 우리의 경제적 능력 혹은 구매력은 마치 컴퓨터 게임 속의 골드처럼 사이버 공간에서 표현된다. 물론 자본주의적인 상호교환이 성립되는 한, 전자화폐는 현실에서 우리의 실질적인 구매력을 보증해준다. 단, 자본주의가 한번에 폭삭 망하거나, 금융권에 핵폭탄이 떨어지거나, 미친 해커놈이 전세계의 네트워크를 박살내는 아포칼립스적 가정만 없다면 말이다.


5. 만약 우리 모두의 두뇌에 결코 숫자를 망각하지 않는 기능이 있다면 화폐 따위를 태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자본주의에서 모든 가치는 수치화되고, 우리는 단지 이 수치를 암기하고 필요할 때마다 암산하면 그만이다. "내가 너에게 이것을 해주면, 너는 나에게 이것을 해주고" 이런 식으로 말이다. 그러나 실제로 거래라는 것은 물질과 물질의 교환이기 때문에 우리는 '가치'에 대응하는 어떤 것이 필요했다. 


전통적으로 이것은 '금'이었다. 그러나 요즘은 전산망을 통해 결코 망각되지 않는, 모든 이가 객관적으로 공증할만한 수치를 구현할 수 있다. 이제 '화폐'는 단지 이런 수치가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것을 보증하는 수단으로 후퇴한다. 마치 과거 사람들이 화폐 1파운드가 금 1파운드의 가치와 동등하다고 믿었던 시기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