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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10월 첫째 주 페북 드립 모음

1. 고전 SF 걸작인 은하영웅전설의 체제구도는 부패한 민주주의제 vs 신군부 세력이 장악한 군주제의 싸움이었다. 저자가 단지 극우였는지, 아니면 민주주의의 몰락을 진심으로 걱정하는 사람이었는지 알 수 없다. 다만 이 우주전쟁의 결말은, 모든 자원을 불란하게 움직일 수 있던 독재자가 무력한 의회를 백업으로 두고 싸웠던 천재 지략가를 무찌르는 것으로 끝이 난다. 작품 초반에 흐르던 얀 웬리와 라인하르트의 라이벌 구조는 후반부에 이르러 시스템의 대결로 넘어가면서 군국주의의 손을 들어주게 되는 것이다. 


소설을 통해 작가가 독자에게 진정 보여주려는 바를 지금 단언기에는 그 안에 있던 많은 이야기들이 망각 속으로 지워졌다. 어찌되었건 하나 생각나는 건, 멍청한 놈을 우두머리로 뽑으면 민주주의는 그야말로 망트리를 타는 거고, 애석하게도 공멸을 맞기 전까지도 유권자들은 자신이 선택한 것이 멸망의 특급열차인지도 인지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러니 민주주의가 다른 체제보다도 단연코 위대하고 말할 수 있을지, 한 번쯤 생각해 볼 일이다. 물론 스스로 비판하고 자정작용을 일으킬 수 있는 여지는 비교적 권력이 분산된 체제가 더 수월하기는 하다.






2. 내 친구이자 골수우익인 이정배는 내가 새누리당을 까면 왜 민주당을 까지 않느냐고, 나 역시 진영논리에 빠져있다고 말한다. 말이 바른 말이지 요새 민주당은 깔 게 없다. 거의 투명인간에 가깝기 때문이다. 뭐 한 게 있어야 까지. 솔직히 15년이 지난 지금에도 우익분자들이 지난 10년 동안 좌파정권만 가지고 비토하는 이유 중 하나는 지난 오 년 동안 민주당이 딱히 한 일이 없어서 아니겠는가. 


아, 최근에 광주의 딸 드립은 멋진 자살골이었다.



3. 추석이 지나니까 갑자기 2년 전 생각이 난다. 



"제주도에서 여중학교 계약 교사로 있었을 때, 추석에 집 갈 차비가 없어 필자는 단칸방에서 긴긴 휴일을 보내기 위해 와우 계정을 일주일 끊었습니다. 만렙을 찍겠다고 맥주 PT병 두어 병을 박살내며 밤새 게임을 하다가 파란 새벽녘 아래서 담배 한 대를 피며 다시는 이렇게 살지 말아야겠다고 결심을 했습니다. 그때 우리집 창문에 대롱대롱 매달린 거미가 날 조용히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카메라를 코 끝에 들이대도 움직이지도 않고 마음 좋게 모델을 해준 녀석이었습니다."[사진보기]



4. 어제 온종일 스트레스에 시달리다가 할 포스터 저 <실재의 귀환>을 잃어버렸다. 까페 어딘가에 놓고 온 것 같은데, 오늘 전화해보니 그런 책 본 적 없단다. 무려 400p에 달하는, 재미대가리는 한 개도 없고 비싸기만 한 그 책을 누가, 무슨 이유로 훔쳐간지는 모르겠다. 차라리 철학이나 미학을 공부하는 사람인데, 책 귀한 줄 알고 가져갔다면 차라리 다행일텐데, 가산동에 그런 놈 따위 서식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 네놈이 과연 그 책을 냄비 받침으로 쓸지, 아니면 책꽂이 한 구석에 장식용으로 비치해둘지는 모르겠지만. 돌려줘 개객기야. 아직 한 페이지도 안봤단 말이다. 교양서적도 아닌데 왜 가져가는 거니. 대체 왜.


4-1. 할 포스터의 실재의 귀환을 도로 찾았다. 까페주인장이 분실물 여부만 확인하고 자기 까페 책장에 꽂힌 책은 확인하지 않은 것이다. 어제 서론만 읽었는데 30페이지를 읽다가 삼십 분간 졸다 깨어났다. 수면마법이 걸려있는 책인가보다. 저주 풀어주실 분 구합니다.





4-2. 어떤 사건은 오로지 그 사건을 다시 약호화하는 다른 사건을 통해서만 등재되며, 또한 우리는 오로지 지연된 작용 속에서만(사후성Nachtraglichkeit) 우리 자신이 된다는 것이다. 내가 20세기말이라는 시점에서 모더니즘 연구와 목록들 소게 집어넣고자 하는 것이 바로 이 유추다. 즉, 주체성의 경우와 유사하게, 역사적 아방가르드와 네오-아방가르드도 미리-당김protentoin과 다시-당김retension의 지속적인 과정, 예상된 미래들과 재구성된 과거들 간의 복잡한 이어달리기로서 구성된다는 것- 간단히 말해, 역사적 아방가르드와 네오-아방가르드는 지연된 작용 속에서 구성되며, 이 지연된 작용은 이전과 이후, 원인과 결과, 기원과 반복이라는 단순한 도식을 모조리 뒤엎어버린다는 것이다.


할 포스터 - 실재의 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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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도 간단하지 않아....


덕분에 데리다의 차연 개념이 뭔지 알게 되었다.



5. 작금의 사태 중 가장 이해하기 싫은 것은 대한민국에 주사파가 있다는 사실과 노무현의 죽음을 시해로 가정하고 마치 그가 구국의 군주인양 포장해서 시체팔이라는 일베적 마인드에 명분을 실어두는 무리가 있다는 것이다. 허공에 삿대질을 하면 그곳에 까마귀가 있다. 언제까지 우리는 사이비 진보와 한솥밥을 먹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