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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칼럼

키치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인물들


강아지, 제프쿤스, 2008, 베르사이유에서 전시 :: 베르사이유 능멸갑 제프쿤스의 위트



한 달 전부터 나를 괴롭히고 나로 하여금 현대 예술로 관심을 돌리게 해주었던 것중 하나는 쿤데라의 존재론적 키치였다. 


18세기부터 19세기 산업화에 이어 중산층이 새로운 문화 소비계층으로 부상하고, 그들은 소비로써 자신들의 정체성을 표현할 것을 포기한 채 다시 귀족적인 미적 취향을 물려받았다. 키치는 이 시기에 생겨난다. 중산층들이 자신이 빌어먹던 시절에 향유하던 싸구려 예술과 오브제를 키치로 남겨놓았다.


그러나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은 부루쥬아들의 취향이 어린 고전적 예술을 키치화하고 실험적인 형식을 시도하였다.(물론 아방가르드의 형성에 대해서는 이보다 복잡한 논의가 오가야 하겠지만, 이는 생략하도록 하고) 초반에는 예술계에서 파면되었으나 곧 개선문을 점령한 아방가르드는 '아방가르드 vs 키치'라는 대립적 구도를 형성하게 된다. 더 정확히 말해서는 이 구도는 새로움과 근본적 리얼리티를 추구하는 예술과 친숙함과 정서적 판타지를 추구하는 키치의 추격전으로 정리할 수 있겠다. 


이러한 구도도 20세기 중반 팝아트가 노골적으로 키치적 형식을 취함으로써 변화한다. 늘 포착할 수 없었던 것을 포착하려던 아방가르드의 예리한 창 끝이 키치의 흉부를 관통한 것이다. 키치 속으로 침투한 예술은 스스로 키치적인 힘과 형식을 빌렸다. 한편 키치에 대한 아방가르드의 정면 돌파는 아방가르드의 형태적 변화뿐만 아니라 키치예술에게도 질적 변화를 가져오는 계기가 되었다. 아방가르드의 확장은 곧 키치의 확장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제 키치는 예술에 대한 모방에서 벗어나 삶을 바라보는 하나의 태도로 변화하였다.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언급되는 키치는 '싸구려 감상으로 공감대를 강요하는 비이성적 집단심리'이며, '지극히 사소하기만한 인생을, 아울려 인류가 가진 무미건조 리얼리티를 위선적 미적 가치로 치장하려는 시도'이다. 그의 키치는 예술작품이 아닌 인간과 삶에 대한 인간의 태도에서 비롯된다. 그는 작품을 통해 네 가지 유형을 언급한다. 


사만다: 예술가적 감수성으로 가장 키치에 대항하려하는 인물. 그러나 그녀는 극단적으로 키치를 거부하는 한편으로 키치가 주는 무거움을 동경하는 이율배반을 갖고 있다.


테레사: 애인 토마스를 사랑한 나머지 인생에 대한 독점권을 주장는 인물로 상류층인 토마스와 사회적, 신분적 취향을 공유하기 위해 스스로를 키치화한다. 그러나 빈민계층을 대변하는 그녀에게 있어 토마스의 난잡한 여성관계와 같은 자유로운 가치관을 따르는 것 자체가 키치였다.


토마스: 명망 받는 의사로 사회적으로도 성공한 인생이지만 성관계에 있어 자유분방한 인물. 개인주의적 가치관과 정직한 자기애를 가진 인물로 가정의 안락함이나 '그래야만 한다'로 귀결하는 키치적인 의무감을 거부한다. 그러나 테레사를 만나면서 그녀에게 동정심과 사랑을 느끼고 점차 키치적인 무거움 속에 빠져든다.



프란츠: 사만다의 애인으로 유망한 대학교수이자 귀족적 취향의 소유자. 그는 미국의 천박한 문화를 경멸하고 전장에서 평화시위를 벌이는 진보적 지식인이다. 그러나 누구보다도 그는 타인의 시선, 특히 사랑하는 여자 사만다의 인정을 받으려고 애쓰는 부분에서 더할나위 없이 키치적 인물.


당신은 어떤 인물에 가까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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