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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글을 쓸 각오는 되었나




<사랑을 쓸 때는 연필로 쓰세요>라는 가요가 있다. 왜? "쓰다가 틀리면 지우개로 깨끗히 지워야 하니까" 단, 연필로 써도 괜찮은 것은 연애편지로 한정된다. 그 밖에 모든 글은, 비록 망작이나 습작일지라도 지워지지 않는 필기구로 써야 한다.


글을 쓰는 사람이 가장 하지 말아야 할 짓 중 하나가 발표한 글을 지우는 것이다. '처음부터 수틀리면 물리고 말지'라는 마음가짐으로 글을 써서도 안 되지만, 일단 글을 지우고 나면 고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고쳐지지 않은 글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영원한 오류로 남는다.


그깟 글 좀 틀려서 뭐가 어떻겠냐고? 글은 생각의 구현이라는 점을 우리는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글의 오류는 생각의 오류를 의미한다. 물론 우리 모두에게는 틀릴 가능성이 있으므로, 틀리는 것 자체가 그렇게 나쁜 것만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 다음이다. 잘못된 생각은 사람들의 관심과 우려 속에서 드러난다. 틀린 부분을 지적받는다는 건 유쾌한 사건은 아니나, 이 과정을 겪어야만 우리는 먼훗날에 웃을 수 있다. 그때는 그랬다고.


그래서 틀린 글은 지우는 것이 아니라 고치는 것이다. 우리는 실수를 통해 무언가를 배워나간다. 부끄러워해야 할 것은 실수 자체가 아니라 오류의 역사를 외면하는 태도다. 이것은 본인에게도 불행이지만 그를 사랑하는 주변 사람들에게도 민폐가 된다. 누가보다라도 틀렸는데, 정작 본인은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그 사람을 용서하고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을까.


하물며 일반인이 아닌, 글로 먹고 사는 사람들에게 글은 온 몸으로 짊어져야 할 무언가이다. 그 펜이 길고 날카로울수록 그렇다. 글을 써서 얻은 명성이 자기의 것이듯, 글로 인하여 지운 오명도 오롯이 글쓴이에게 돌아간다. 그렇기 때문에 프로 작가들은 글을 내놓기 전에 수회에 걸쳐 지루한 퇴고의 과정을 밟는다. 아무쪼록 책임져야 할 것에 대한 예의를 다하고 싶어서 일 것이다. 반대로 쉽게 지워지는 글, 글쓴이가 감당할 의사도 없이 쓴 글은 내용의 훌륭함을 판단하기 전에 이미 일독의 가치가 없다. 그 글에서 비롯된 오류는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 이것은 부도가 난 회사에서 발행한 수표와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