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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11월 상반기 페이스북 드립 모음

1.

말하다가 가장 막막한 상대는 모든 판단이 좋아 아님 싫어, 옳아 아님 나빠, 이거 아님 저거? 로 몰아붙이는 환원주의자들이 아닐까. 문제는 맥락에 따라 다르고 모순이 없는 선에서는 동시에 부정할 수도 긍정할 수도 있으며, 부분긍정할 수있다. 심지어 언어에는 심리적 기울기를 나타내는 다양한 어휘들이 존재하건만, 그러니까 1 아니면 0? 이라고 묻는 컴퓨터 언어로 왜 나와 대화하려고 하는 거시냐. 이런 환원주의자들이 꼭 엄마가 좋냐 아빠가 좋냐 물어본다. 


그래도 이건 귀여운 편이다. 진짜 무서운 환원주의자들은 자신의 똑똑함을 뽐내기 위해 남들을 깔아뭉개는 치들이다. 이들은 남들을 바보로 만들기 위해 기꺼이 스스로 멍청해진다.


2.

여의도 자전거도로를 보면 답이 안나온다. 거기다가 포장마차며, 정차한 택시, 주차하고 공원 놀러간 사람들의 인식도 문제지만 자전거 도로를 얼마나 안이하게 생각하고 진행한건지 모르겠다. 더군다나 대한민국 입법기관 바로 앞에서 버젓이 저질러지는 불법주정차는 자전거도로에 대한 전반적인 인식이 이 정도구나 하는 마음이 든다.


3.

눈 내리는 계절을 앞두고 있다. 작년 즈음 류근 시인님은 페북에 눈내리는 날 우산을 쓰는 것이 세기말적 현상이라고 적은 바 있다. 물론 눈 오는 날 우산을 쓰는 것이 그렇게 말세는 아닐 것이다. 실질적으로 눈 오는 날 옥탑에 사는 어떤 남녀는 내려가는 길이 두려울 것이고 청소부에게도 눈은 종처럼 성가신 일이 아닐 것이다. 비 오는 날을 좋아하는 파전집 주인의 자연에 대한 속된 감상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 비록 그럴지라도 눈 오는 날 우산을 쓰는 것이 세기말적 경향이라고 낭만적으로 읊조릴 수 있는 까닭은 한 사람 속에는 대상에 대한 다른 차원의 태도가 병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눈은 세속적으로 미끄럽고 위험하고 추운, 길가를 흙탕물 만드는 물질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눈 오는 아침 창가로 소복히 덮힌 지붕들을 볼 때, 또는 밤새 쌓인 눈길로 외따랗게 찍힌 발작국을 보며 가슴 뭉클해지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자보다 얼마나 풍요로운가. 더욱이 이처럼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하루를 아름답게 가꿀 수 있는데도, 눈 오는 날 미끄러운 길바닥 걱정'만' 한다는 것은 확실히 세상이 끝나는 징조에 버금갈 정도로 안타깝긴 한 것이다.


결론: 폭설을 대비해 고어텍스 트레킹화를 사야겠음.


4.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말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람들이 많다. 수사학적인 오해 때문이다. 논리적으로 보자면 아픔과 청춘은 동치가 아니라 아프다라는 조건에 청춘이다라는 결과가 귀속되는 진술이다. 조금 명료하게 기술하자면,


만약 당신이 아프다면, 당신은 청춘이다.


이 명제의 진위를 떠나서 위의 진술에서 아픔은 청춘의 필요충분조건이 아니다. 다만 아프다면 청춘일 것이라는 뜻일 뿐이다. 여기서 반대의 가정인 아프지않다면, 당신이 청춘인지 아닌지 파가름할 단서는 없다. 또한 청춘이 아니라면 아픈지 안아픈지 여부도 적용대상이 되지 않다. 다른 말로 하자면 아픔은 충분조건이고 청춘은 필요조건이다. 그러므로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말에 예민해지지 말 것. 아프지 않다고 청춘이 아니란 말은 아니니까


그런데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책의 제목은 논리학 따위를 고려햇니 지은 걸까? 책 안봐서 모르겠다.


5.

취미에는 논의의 여지가 없다라는 말이 있다. 즉 자기가 좋아하는 것은 순전히 주관적인 영역이어서 합리적인 담론의 틀을 마련할 수 없다는 것이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예쁘다, 아름답다는 단어를 확정적으로 사용하면서 그것이 왜 그러한지는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 취미는 합리적 서술의 대상이 아니라는 태도는 타인과의 미학적인 논의도 피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본인이 그것을 왜 아름답다고 여기는지에 대한 대답도 회피한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은 영원한 미지인가? 이성적 판단이 될 수 없는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많은 사람들의 심상이나 아름다움의 규준은 대체적으로 경향성을 띄고 있다는 것이고, 이것은 미에 대한 각자의 기준도 일종의 보편성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취향이므로 존중하기 이전에, 그것은 과연 합의점이 없는지부터 재고해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