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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칼럼

논쟁이란

 오늘 어떤 페친님과의 대화를 하다가 문득 토론에 대해 이야기할 거리가 생각나 글을 남긴다. 나란 놈이 말을 주고 받는 대화보다 혼자 떠들어대는 글에 더 익숙한 까닭에 글로 남기는 편이 상대가 더 잘 이해할 것이라 믿는다.



1. 논쟁의 성립 조건


 토론, 좁게 말하자면 논쟁이라는 것은 발화하는 언어를 도구로 사용하지만 주제에 대해 중지를 모으거나 의견을 교환하는 토의와 담론과는 그 성격이 다르다. 논쟁이 일어나는 조건은 주어진 사안에 대해 서로 다른 가치관을 지닌 의견이 양립되어질 수 없을 때 발생한다. 만약 저 주장이 나의 주장의 타당함과 아무런 상관없이 세워질 수 있을 때 논쟁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또는, 가치관이 다를지라도 단지 취향의 문제에 지나지 않는 사안일 때는 논쟁할 필요는 없다. 수능의 존폐를 두고 논쟁을 벌일 수는 있지만 수능 과목 중 수학이 좋은가 국어가 좋은가를 두고 논쟁을 벌일 수는 없다는 말이다.


 이처럼 하나의 현실적 사안을 두고 양립할 수 없는 다수의 주장이 맞설 때 논쟁은 시작한다. 논쟁은 기본적으로 말을 싸움이지만 엄밀하게 말하자면 논리의 싸움이다. 왜냐하면 논리는 연역에서 출발하므로 객관성을 담지하고 있고,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는 두 사람이 상대를 논박하거나 수용하기 위해서는 객관성의 틀 안에서만 이루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예컨데 거짓말로 상대방을 속인다거나, 폭언이나 조롱으로 상대의 주장을 무마시키려고 한다면 논쟁이라고 부를 수 없다.



2. 유익한 논쟁과 타당한 논증


 논리에는 건전한(sound) 논증이 있는데, 이는 전제가 모두 현실에서 출발해서 옳은 것이어야 하고, 이러한 전제로부터 출발한 결론까지가 모두 연역적으로 옳기 때문에 참이 될 때를 이야기한다. 따라서 건전한 논증은 전제들이 모두 참이고 이를 통해 타당한(valid)한 결론을 도출해내 청중들을 설득한다. 


 따라서 논쟁에 참여한 패널에게는 두 가지 임무가 주어진다. 하나는 자신의 주장이 사실에 입각하여 올바른 연역적 추리를 통해 세워진 주장임을 증명해야 함이고, 다른 하나는 자신의 주장과 양립 불가능한 상대의 주장에서 헛점일 찾아내는 것이다. 이 헛점이란 전제가 거짓이거나, 전제가 참일지라도 그것과 결론이 타당하지 않음을 말한다. 논쟁의 주제가 객관적으로 진위를 판별할 수 있고, 양립된 주장이 첨예하게 대립한다면 이러한 공방은 더욱 선명해질 수 밖에 없다. (그런 면에서 좋은 논쟁이란 각 주장의 타당성만큼이나 논쟁의 주제가 적절할 때 발생한다)



3. 논쟁의 진정한 승패


 복잡한 것은 여기서부터다. 논리의 세계는 참/거짓의 이차원적이지만 현실의 세계는 그렇지 않다. 모순된 진실들과 서로 가치관이 뒤엉켜 있으며 하나의 사건에도 다양한 욕망들이 개입한다. 하나의 사안을 가지고 논쟁을 펼치더라도 패널의 가치관과 시각에 따라 상이한 쟁점을 설정할 수 있다. 따라서 패널들은 사안에 대한 풍부한 배경지식은 물론, 상대방의 주장 배후에 깔린 전제들과 가치관을 이해하고 그것의 한계 또한 짚어낼 수 있어야 한다. 그럼에도 상대가 참인 전제로 제대로 된 주장을 펼치는가라는 맹점을 파악하는 일은 중요한데, 전제와 결론이 타당하지 않음을 밝혀내면 상대방이 제시한 전제가 현실에 대응한 것일지라도 논증의 객관성이 크게 훼손되기 때문이다. 즉, 논쟁이란 1)전제가 현실에 대응하는가, 2)전제로 타당한 결론에 도달하였는가로 결정난다. 1)에서는 풍부한 자료를 제시하거나 상대의 자료가 신빙성이 없음을 입증해야 하고 2)에서는 제시된 자료에서 필연성을 도출하거나 상대의 추론에서 헛점을 밝혀내야 한다.


 그러나 한편으로 논쟁은 객관성으로만 승패를 판별할 수 없는 부분이 많다. 논쟁은 상이한 주장을 가진 상대를 설득함을 목표로 하지만 거의 대부분의 경우 논쟁의 효과는 논쟁을 듣는 청자들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는 데에 있다. 그러기 위해서 상대의 주장이 틀렸음을 보여주기(공격)과 자신의 주장이 틀리지 않았음(방어)를 동시에 보여주어야 한다. 그런데 여기서 유의해야 할 점은 논쟁은 다른 여타의 스포츠처럼 공정하게 진행을 돕는 심판이 없다는 것이다. 만약 상대가 비논리적인 궤변을 열거하면서 토론을 그릇된 방향으로 이끈다고 해서 제제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때문에 이러한 궤변에 대해서 상대패널은 스스로 자신의 주장을 보호하고 그것이 오류임을 청중에게 설득해야 한다. 즉, 상대가 논쟁의 주제와 상관없는 주장을 한다거나, 상대 패널과 청중을 현속시킬 목적으로 다양한 오류논증을 펼친다면 상대 패널, 아니면 청중 스스로가 주장이 타당하지 못함을 간파해야 한다. 그러나 아쉽게도 모든 청중들이 논리적인 사고력을 함양한 것도 아니며 사안에 대해 정확한 정보를 갖고 있지 않다.


 한편 이것은 추론들이 기록된 책이 아니라 말의 싸움이라는 점에서 논리보다는 패널들의 수사적 능력이 청중 설득에 더 큰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이점을 이용하여 패널들은 공공연히 화려한 수사를 동원하여 자신의 권위를 세우거나, 감정에 호소한다거나 상대의 주장을 비상식적인 것으로 호도하여 깍아내리는 오류들을 범하기도 한다.



4. 맺음


 정리를 하자면 논쟁에서 중요한 것은 의견의 교환이 아니라 나의 주장을 관철시키는 것이다. 상대의 주장과 나의 주장은 첨예하게 마주할 수록 논쟁은 선명한데, 이 둘의 논박은 모두가 수긍할 수 있는 객관성 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또한  논쟁은 대화의 싸움이기도 하다. 이것은 글자가 아니라 발화되는 소리로 싸우는 것이기 때문에 나의 주장을 그럴듯하게 보이고 상대의 주장을 약하게 보이게 만드는 수사적 기교와 임기응변도 역시 영향을 미친다. 많은 논쟁의 경우 두 가지 주장이 끝내 결론을 내리지 못하는데, 현실적인 사안이 복잡다단해서 하나의 주장을 철저히 무너뜨리기는 어렵기도 하거니와 논쟁에는 승패를 가려줄만한 권위를 가진 심판이 없기 때문이다. 오직 청중들이 두 개의 주장 중 어느 것이 더욱 설득력 있는지를 판단해야 하는데, 배경지식의 부족, 논리적 판단능력의 부족으로 패널의 오류를 짚어내는 것에 어려움이 있다. 바로 이러한 난점을 이용하여 나쁜 논쟁들은 빈약한 논증을 자극적인 레토릭으로 대체하기도 한다. 달리말해, 주장의 타당성을 증명하기보다는 지저분한 인신공격이나 허수아비 논증, 기만적인 수사로만 가득 채운 사기극으로 논쟁 자체를 더럽힌다. 


***2013년 4월 7일에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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