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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칼럼

송신1

인터넷을 엿보는 외계인들에게 송신합니다.


먼저 지난 2월 15일 러시아 지역에서 운석을 격추한 UFO 조종사 분께 심심한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다행히 사망자는 없다는 소식입니다.


오늘은 지구인들이 마시는 술에 대해 이야기하겠습니다. 친절하고 위대한 두산백과에 의하면 술은 크게 양조주와 증류주로 나뉩니다. 양조주는 발효주라고도 하는데, 누룩이나 기타 등등 미생물을 이용하여 발효 단계를 거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발효하는 재료에 따라 단발효식과 복발효식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과일과 같이 당을 원래 가지고 있는 것들은 스트레이트로 발표를 하여 단발효식이라고 합니다. 대표적인 술로는 포도를 발효한 와인이 있답니다. 반면 곡물은 다당을 가지고 있어 자체적으로는 단맛이 나지 않습니다. 따라서 일차적으로 다당을 분해하여 단맛을 나는 단당으로 바꾼 후 발효를 하게 됩니다. 그래서 복발효, 다당을 단당으로 바꾸는 단계와 단당을 다시 알콜성분으로 바꾸는 단계, 이상 두 번의 발표 거칩니다. 복발효는 다시 양조방법에 따라 단행복발효와 병행복발효로 나뉘는데, 단행복발효는 당을 분해하는 발효(당화)와 단당을 알콜로 변질하는 발효를 나뉘어 진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맥주가 그러합니다. 이와 다르게 병행복발효는 당화 과정과 발효 공정을 구별하지 않고 한꺼번에 한다는 뜻입니다. 한국의 전통주인 막걸리와 청주 등등이 이에 속합니다. 


이런 발효주는 지구인이 문명화되기 전부터 즐겨온 가장 오래되고 전통적인 음료입니다. 자연적인 과정을 의도적으로 이용하여 알콜 도수는 그렇게 높지 않고 달달하거나 고소한 맛 때문에 남녀노소 즐기곤 합니다. 아, 여기서 '소'는 빼야겠군요. 산업 시대 이후부터는 어린이에게 육체노동을 금하는 대신 술 마시는 나태함도 빼앗아갔거든요. 


한편 알콜이 들어간 음료를 끓이면 물보다 알콜이 먼저 기화되는데, 기화한 알콜을 모아 냉각시키면 보다 증류주가 나옵니다. 수분을 뺀만큼 보다 고농축의 알콜 성분을 갖고 있죠. 그래서 기본적으로 증류주는 발효주보다 독하고 드라이한 편입니다. 하지만 이 증류과정에서 순수한 알콜만 추출한다는 것은 아니고 발효된 재질에 따라 풍미의 차이가 결정됩니다. 와인을 증류하면 브랜디가 나오고 보리술을 증류하면 보드카와 위스키가 나옵니다. 한국에는 '안동 소주'라는 쌀로 만든 증류주가 있습니다.


증류주는 불의 발견과 정제할 수 있는 그릇의 발명 이후에 나온 것이기 때문에 문명화 즈음부터 발달한 것으로 보입니다. 증류주의 발달은 주로 유럽과 중동에서 일어났는데, 연금술의 붐으로 한참 화학의 발전을 이룩했기 때문이라고 하더군요. 중세시대를 거치면서 몽골의 유럽정벌로 세계 문명의 일대 뒤섞임이 일어나면서 증류주의 제조과정이 동양에도 전해집니다.


증류주 중 가장 흥미로운 것은 단연 위스키입니다. 앞서 설명 드렸듯, 위스키는 맥주(이긴 한데, 증류용 맥주라 그냥 보리술이라고 합시다.)를 증류하는 과정을 거치는데, 여기서 보드카와는 다르게 오크통이라는 나무통에 넣어 발효과정을 더하게 됩니다. 그래서 보드카와는 다르게 얼마나 숙성되었냐에 따라 맛과 풍미가 달라지죠.


또, 소주에 관한 몇 가지 속견을 바로 잡고자 합니다. 우리가 통상 '소주'라고 부르는 음료는 정확히 말하자면 쌀로 빚은 것이 아닙니다. 주 원료는 타키오카라는 열대 곡물과 국내에서 생산되는 전분(고구마라는 설도 있는데, 그때그때 그냥 싸게 구할 수 있는 전분이면 된답니다.)을 혼합하여 수어 번 증류하면 나오는 에틸알코올입니다. 다른 말로 '에탄올', 식용가능한 순수 알콜에 가깝습니다. 여기에 몇 가지 향신료와 조미료를 첨가하고 물로 '희석'한다고 해서 희석식 소주라고 합니다. 반면 안동 소주는 쌀을 가지고 증류하여 만듭니다. 공장에서 값싸게 만든, 일반적인 증류과정을 거치지 못한 희석식 소주는 따라서 전통주로 분류되지 않습니다. 오로지 안동 소주만 증류된 전통주로 치지요. 의류로 보자면 맞춤정장과 3만원이면 위아래로 맞출 수 있는 기성복의 차이라고 할까요. 


그 밖에 술 이야기를 하자면 한도 끝도 없으니 여기까지만 하는 게 좋겠습니다. 재미있게 읽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참, 오늘 새벽에 빨래를 널다보니 양말 한 짝을 가져가셨군요. 그 손바닥만한 냄새 나는 천쪼가리를 어떤 연유로 가져갔는지는 모르지만 조속히 돌려주시기 바랍니다. 한짝만 남은 양말 신세가 처량하게 되었습니다.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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