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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tional Doragraphycs/자전거

도시를 달리는 다운힐러, 안승범



단언컨대, 계단은 가장 재미있는 코스입니다.


닉 네임 ‘볼보승범’, 안승범 씨에게는 취미가 많다. 10년도 넘게 산악자전거를 타고, 이것을 가지고 UCC를 만든다. 대학시절부터 밴드생활을 했던 탓에 드럼 연주도 수준급이다. 근래에는 컴포지트 보우를 장만해서 활쏘기에 취미를 붙였다고 한다. 다른 사람은 하나도 갖기가 어려운 취미를 세 가지나 하고 있는 것이다. 밥벌이로는 귀금속을 세공하고 있다고 한다. 그것도 대학을 졸업하고 짬짬이 배운 기술이라고 하니, ‘열 재주 가진 사람이 배곯다’는 말이 황망하다.


그를 만나 산악자전거와 최근 제작한 어반 라이딩 영상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자전거에 관한한 그는 누구 못지않은 열혈 마니아였다. 그는 도시 곳곳의 산동네와 좁고 위험한 계단 사이를 자전거를 타고 누볐으며, ‘라이딩을 즐기자’라는 주제로 로드 라이더들과 함께 라이딩 영상을 만들었다. 그런가하면 국내 자전거 문화와 인프라에 대한 날선 비판도 서슴지 않았다.



<볼보승범의 시티 다운힐 영상>

naksan park downhill (볼보승범 2탄) from Jee Choul Kim on Vimeo.


자전거거와 악기연주, 양궁 등 취미가 다양하다. 많은 취미를 섭렵하게 된 경위가 있나?


자전거가 시작이었다. 한 가지 취미를 오래 하다 보니 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들과 사귀게 된다. 여기 있는 사람들은 나와 십 년 정도 자전거를 탄 사람들이고, 이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다른 취미에 자연스럽게 관심이 갔다. 이 공간은 일종의 취미공동체를 위한 회합실이다. 여기서 어떤 사람들은 취미를 함께 즐긴다. 또는 다른 사람들과 새로운 취미를 공유하기도 한다.


이곳을 드나드는 사람들은 몇 명이나 되나?


많게는 열다섯 명 정도가 같이 활동한다. 같은 공간을 쓰고 있지만 취미 커뮤니티는 각기 운영된다. 예를 들어 나처럼 밴드를 하면서 익스트림 스포츠를 즐기는 사람들도 있고, 자전거만 타기 위해 오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가하면 음악 연주만 하러 오는 사람도 있다. 그렇다고 취미그룹이 완전히 분리되어 있는 것은 아니고, 이 안에 있는 사람들은 취미를 넘나들며 서로 만난다.


우리나라에서 다운힐은 다분히 마이너한 취미다. 왜 다운힐인가?


산에서 자전거를 타기 시작한 것이 12년 전부터다. 처음에는 하드테일을 탔다. 언젠가 무릎을 다쳤는데, 이후로 페달링을 장시간 할 수가 없었다. 산이 좋아서 자전거를 포기할 수는 없고. 그러다가 우연히 다운힐 자전거를 탔다. 안장이 낮은 다운힐 라이딩 포지션에서는 통증이 오지 않았다. 그것이 다운힐로 입문하게 된 계기였다.


닉네임이 ‘볼보승범’이다. 자동차 브랜드 ‘볼보’와 관련이 있는가?


이 ‘볼보’에는 내 개인적인 추억이 담겨져 있다. 이십대 때 처음 크로스컨트리 대회에 참가했다. 당시 장비도 체력도 제대로 갖추지 못했던 나는 첫 바퀴에서 보기 좋게 컷오프 당했다. 땀과 먼지로 범벅이 되었고 다운힐 도중 신발이 벗겨져 발등에서 피가 흘렀다. 서글픔을 참으면서 화장실에서 몸을 씻고 있었다. 그때 어느 중년의 남자가 나를 보더니 대회 때 인상 깊게 보았다며, 같이 밥을 먹자고 했다. 그리고 내 자전거를 자신의 차에 싣더니 집까지 데려다 주었다. 그는 볼보자동차 회사에 근무한다고 했다. 헤어지면서 그는 “다음 대회 때 보자.”라고 말했다. 그런데 그 이후로 어떤 대회에서도 그를 찾을 수 없었다.


볼보라는 닉네임을 달고 다니면 한번 만날 법도 한데


인연이 없는 것인지 그 후로는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심지어 볼보 한국지사에도 찾아가서 사정을 해가며 사내 방송까지 해봤지만 헛수고였다. 볼보승범이라는 닉네임은 이름도 모르는 그 사람에게 고마움을 표현하기 위해서이기도 하고, 다시 만날 희망을 표현한 것이기도 하다.


어반 다운힐 영상을 직접 제작하고 있다. 언제부터 어반 다운힐에 관심을 갖게 되었나?


어반 다운힐 영상을 처음 본 것이 6년 전이었다. 해외에서는 이미 어반 다운힐이 정기적으로 열리고 있다. 어반 다운힐은 그 짜릿함도 즐겁지만 무엇보다도 스포츠 엔터테인먼트로도 손색이 없다. 국내 산악자전거시합은 오로지 그들만의 리그다. 그렇기 때문에 산악자전거 코스 개발이나 인프라 구현에 발 벗고 나서는 기업들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 어반 다운힐은 관람객들이 충분히 찾아올 정도로 가깝고, 흥미진진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어반 다운힐 개최를 추진했다고 하던데


어반 다운힐 개최를 정말 하고 싶었다. 산악 자전거를 타는 선수들에게나 익스트림 스포츠를 즐기는 모든 사람들에게 필요한 이벤트가 아닐까. 그래서 딴에 여기저기 알아보고 다녔다. 남산을 배경으로 하면 좋을 것 같아 서울시청 관계자와 만나보고, 스포츠를 후원하는 기업의 프로모터와도 만났다. 그러나 아직까지 이렇다 할 성과가 없어 상심이 컸다.


어반 다운힐과 같은 익스트림 스포츠가 국내에 열리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인프라를 구축할 스폰서가 없다. 그들은 흥행이 보장되면서 리스크관리가 적은 스포츠에만 관심이 있다. 예컨대, 그들은 스포츠 관련 이벤트를 할 때 샤라포바와 같은 유명 외국 선수를 초청하는 것이라면 모를까, 비인기 종목에서 활동하는 무명의 선수들이 설 수 있는 스테이지를 마련해주지 않는다. 그들은 엄청난 비용을 들여 서울 한복판에서 자전거 퍼레이드를 기획하면서, 장애인 휠체어 대회 같은 종목에는 의례적인 지원에 그치고 있다. 국내 익스트림 스포츠 문화의 비전과 장래성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 그들은 그것에 투자해서 당장 얻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이냐고 반문한다.


국내 MTB인프라가 부족하다는 것에는 동의한다. 


이런 문제도 있다. 세계 최고의 서스펜션이 있지만, 그 성능을 즐길만한 코스가 없다. 이것은 불편한 진실이다. 그런데도 가게주인은 구매자에게 수백만 원짜리 자전거를 권한다. 구매자는 고성능의 산악자전거를 샀지만 탈 곳도, 타는 방법도 배우지 못해 한강 자전거도로를 탄다. 그러다가 산악자전거의 진정한 재미를 느낄 새도 없이 다른 자전거 혹은 다른 소유물로 갈아치우는 패턴이 반복된다. 아직도 우리의 수준은 한강을 돌고 있는 것이다.


아직도 산악자전거가 한강을 돌고 있다는 말이 인상적이다. 자전거라는 취미가 ‘자전거를 멋지게 타기’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멋진 자전거를 소유’하는 것에 초점을 맞춰져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인프라의 부족, 동호인 수준의 저열함은 자전거라는 취미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인식도 나쁘게 한다. 경춘선을 타면 자전거 열차

칸 한 구석에서는 이미 술판으로 난장이 된다. 자전거 열차칸도 엄연한 공공장소다. 좋은 장비와 좋은 자전거를 갖추고서 누가 보더라도 ‘자전거 동호인’으로 보이는 몇 사람들이 인식을 망친다.


산악자전거에 대한 관심이 각별한 듯하다.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대만이나 일본에 비하여 우리나라가 가장 밀리는 분야가 X-Game이다. 스노우보드나 스키쪽은 어느 정도 후원을 받고 있고, 대중성을 얻고 있지만 다른 분야는 거의 미개척 상태이다. 나는 모든 부분의 익스트림 스포츠가 보다 대중적인 인기를 얻었으면 좋겠다. 올해 다운힐 자전거를 타면서 두 편의 영상을 제작했다. 내년에는 픽시 라이더들이나 BMX를 다루는 친구들과 함께 영상을 제작할 예정이다. 인라인 라이더가 남산을 활강하고 점프를 하는 대회도 기획하고 싶다. 나 혼자서는 이런 것들을 이룰 수가 없다. 익스트림 스포츠 관련 회사와 후원기관가 이런 종목에 관심을 가져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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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월간 더바이크 9월호(2013)에 게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