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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tional Doragraphycs/자전거

아이언 레이디 조연정


<출처: 더바이크 8월호, 사진: 이성규>



2013년 마스터즈 대회 여성부 포디엄은 한마디로 ‘아줌마’들이 꽉 잡고 있다. 이름만 들어도 알 법한 다른 라이더들은 말할 것도 없이, 각 투어에서 쟁쟁한 실력을 보여준 여성 라이더들이 전부 유부녀이라는 사실은 재미있다.


이러한 ‘유부녀 삼분지계’(혹은 사분지계)에서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선수가 조연정이다. 그녀는 팀윈스페이스의 터줏대감이자, 자전거 전문숍인 바이크짱 대표, 윈스페이스 프레임과 매트릭스 휠셋의 수입사 운영을 겸하고 있다. 8년 전에 처음 페달을 굴린 이후로 그녀는 특유의 승부근성으로 실력을 키웠다. 자전거숍의 부부 경영자 중 한 명으로서, 두 아이를 둔 어머니로서 자전거를 취미로 두기에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더군다나 심지어 국내에서 내로라하는 여성 라이더로 거듭나기까지는 어지간히 노력을 했으리라.


오히려 그녀는 자신을 이해해주는 가족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말한다. 남편은 그녀의 라이벌이, 때로는 코치가 되어주었다. 두 자녀는 엄마를 응원하는 팬이었다. 이러한 든든한 ‘빽’ 덕분에 그녀는 우직하게 자신이 하고픈 것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조연정 선수는 현재 실업팀 입단이라는 새로운 도전의 기로에 서있다. 아내로서, 엄마로서, 아마추어 선수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그녀는 늘 자신을 담금질한다. 말그대로 ‘철(鐵)의 여인’이다.



자전거를 시작한 계기는 무엇인가?


처음에는 재활을 목적으로 시작했다. 8년 전 축구를 하다가 부상을 당했다. 자전거 타기는 관절에 부담이 적어 부상의 재발을 염려할 필요가 없던 운동이다. 공교롭게 당시 남편의 건강 상태도 좋지 않았다. 병원에서 남편에게 적당한 운동과 휴식을 권고했다. 그렇게 함께 선택한 것이 자전거였다.



자전거 동호인에서 지금은 숍과 수입사의 오너이자 동호회를 운영하고 있다. 취미생활에서 직업으로 뛰어든 이유는 무엇인가?


남편이 원래 손재주가 있다. 자전거 숍을 운영하기 전에 한 일이 카오디오 설치 사업이었다. 워낙 번창해서 돈도 제법 모았지만 문제는 건강이었다. 본래 강건한 체질도 아닌데 끼니를 거르거나 잠을 못자고 출장 가는 일도 부지기수였다. 자전거에 취미를 붙이면서 남편은 독학으로 미캐닉을 공부했다. 주변 동호인들의 자전거를 봐주면서 기본기를 익히더니, 어느덧 사람들이 숍 하나를 내보라고 권유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카오디오 사업보다는 자전거숍 운영이 건강에는 좋겠지 하는 생각도 있었다. 그런데 막상 자전거 숍도 카오디오 사업만큼 바쁘더라.(웃음)



부부가 함께 운영을 하다보면 탈도 많고 말도 많을 것 같다.


같이 숍을 운영하고 있지만 나는 남편보다 바깥 생활이 더 많은 편이다. 아침 일찍부터 운동을 나간다. 그리고 오후에는 동호인들과 그룹 라이딩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보면 숍은 거의 남편에게 맡겨두기 일쑤다. 남편이 그것을 크게 나무라는 성격은 아니지만 가끔 지나칠 때 이야기하곤 한다. 그러다보면 사소한 언쟁을 벌이는 경우가 있다.



반면 좋은 점을 꼽자면?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는 점은 단점이기도 하지만 장점도 된다. 나와 남편은 다른 부부보다 이야기할 기회와 시간이 많다. 예전에 남편이 카오디오 사업을 할 때에는 같이 있어도 화젯거리가 많지 않았다. 내가 카오디오에 대한 지식이 아주 없었으니까. 지금은 동일한 관심사를 갖고 있으니 할 이야기가 많다. 자주 싸우지만 그만큼 사이도 좋다는 이야기다.



숍을 운영하다보면 한두 명은 소위 ‘진상’ 같은 사람들을 만날 텐데, 관련된 이야기가 있을까?



보다시피 우리 숍은 저가 라인을 들여놓지 않는다. 일반 생활용 자전거를 찾는 사람들보다는 주로 동호회에서 활동하는 회원들이 주요 고객이다. 그래서 얼토당토 않는 요구로 귀찮게 하는 손님은 그다지 없다. 다만 가끔 동호회의 신규 가입자 중 석연치 않은 사건을 벌여놓고 사라지는 사람들이 있다. 구체적으로 밝힐 수는 없지만 2년 전 즈음인가 한 회원을 무턱대로 받았다가 동호회가 분열된 적이 있었다. 그때 오해와 험담에 시달리면서 심리적 부담과 상처가 컸다. 한때는 숍 운영을 그만두고 수입사업에만 매진할까 생각본 적도 있었다.



그런데도 숍과 동호회를 계속 유지해나가는 이유는 무엇인가?


비 온 뒤 땅이 굳는다고. 그런 사건을 겪은 이후 멤버들과 신뢰적으로 더욱 가까워졌다. 그리고 나는 혼자 타는 것보다 함께 타는 것을 좋아한다. 하루에 3시간씩 여성회원들과 함께 자전거를 탄다. 거리는 80~100km 정도. 체력이 비교적 약한 입문자들도 내가 앞장서서 끌어주면 어느 정도 속도를 낼 수 있다. 근래에는 자전거에 입문한 여성회원들과 함께 달리는 것이 가장 즐겁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자전거에 대해 전혀 모르던 사람이 어느덧 대회에 참가해 순위권에 진입하는 것을 보면 뿌듯함을 느낀다.



숍 운영을 하면서 매일 3시간씩 시간을 낼 수 있나?


남편의 도움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아침에 일찍 운동을 나갔다가 오후에는 아이들 하교시간에 맞춰 일찍 귀가해야 한다. 그 사이 시간 동안 남편이 가게를 본다. 그게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다. 남편도 처음에는 자전거를 곧잘 탔고, 나보다 잘 탔다. 처음에는 남편이 코치님이자 최대 라이벌이었다. 훈련법이나 정비에 해박한 남편에게 혼나면서 자전거를 배웠다.(웃음) 남편은 이제 자전거를 자주 타지는 않는다. 숍 관리자로서 하는 일도 많고, 나뿐만 아니라 숍에 드나드는 동호인들의 서포팅을 맡고 있기 때문이다.



부모가 모두 자전거 마니아여서 아이들도 자연스레 자전거를 잘 탈 것 같다.


한때 큰 아이가 자전거를 탔다. 함께 대회에 나간 적도 있다. 그런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 자전거를 타는 것보다 또래 친구들과 함께 보내는 것을 좋아한다. 예전에는 하지 않았던 화장도 하고, 여성스러운 옷을 입고 외출하기도 한다.



사춘기인가?


그런 것 같다. 아직 어리다고 생각했는데, 평소에 부모 품을 벗어나려고 하지 않았던 아이여서 처음에는 당황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우리 아이는 오히려 다른 또래보다 느린 편이라고 하더라. 큰 딸이 고등학교 1학년 즈음에야 사춘기가 왔다. 그렇다고 싸우거나 삐딱하게 구는 것은 아니지만, 아이가 가정을 벗어나려 한다는 생각이 들자 걱정이 생겼다. 그래서 잠깐 자전거 타기를 그만두어야 겠다는 결심을 했다. 그러고 한 달 즈음 지났을까. 큰 아이가 와서는 자기 때문에 그러지 않아도 된다며 하고 싶은 운동을 계속하라고 말해줬다.



앞으로 자전거를 아이들에게 가르칠 마음은 없나?


한때 큰 아이가 제법 자전거를 잘 타서 욕심을 내기는 했다. 그런데 사춘기에 접어들자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결국 운동은 자기가 원해야 하는 것임을 깨달았다. 다행히 작은 아이는 자전거를 타고 싶어 한다. 국내 최고의 여자 산악자전거 선수가 되겠다고 한다. 불행하게도 지금은 키가 작아서 적합한 사이즈의 자전거가 없어서 입문도 하지 못했다.(웃음)



마스터즈 대회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가자. 남자와 여자 선수를 통합적으로 운영하는 마스터즈 대회에서 여성 선수 대부분은 컷오프를 당한다. 남자와 경쟁한다는 것에 불만은 없는가?


오히려 재미있다. 평소에 여자들끼리만 레이스를 했을 때는 느끼지 못한 것들을 몸소 체험하는 계기가 되었다. 출발과 동시에 라이더들 사이에 흐르는 긴장감도 사뭇 다르다. 많은 여자 라이더들이 컷오프를 당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혼성 경기는 여성 경기와는 다른 치열함이 있어서 좋다.



체격이 월등한 남성들 사이에서 여성들이 같이 사이클을 타기에는 위험하지 않을까?


출발하면서 그룹이 나뉘는 동안만 조심하면 그렇게 위험한 요소는 없다. 일단 그룹이 나누어지면 그 그룹 내에서는 안정적인 경기가 펼쳐지는 것이 대부분이다.



마스터즈 대회의 인천과 나주 투어에서 여성부 포디움을 점거했다. 비결이 있다면?


무엇보다도 배번이 빠를수록 유리하다는 것을 느꼈다. 예전에는 배번순위가 100번 바깥을 받았다. 그때는 포디움에 오르기가 어려웠다. 그런데 100번 안쪽으로 번호를 받으니까 쉽사리 선두그룹에 진입할 수 있었다. 어떤 선수는 친분이 있는 라이더의 보호 및 도움을 받아 좋은 성적을 기록하기도 한다는데, 개인적으로 그다지 내키는 방법은 아니다. 마스터즈 대회는 개인경기다. 내가 포디움에 올랐을 때 누구의 도움을 받아 올랐다는 소리를 듣고 싶지 않다. 차라리 누군가를 도와주면 모를까.



진솔하고 강인한 마음가짐이다. 아마추어 라이더로서 목표는?


단기 목표로는 올해 마스터즈 대회 여성부에서 우승을 하는 것. 그리고 최근에는 또 다른 목표가 생겼다. 실업팀 자전거 선수가 되는 것이다.



실업팀에 입단한다고?


나주 마스터즈 대회가 열리고 모 시청 자전거팀 관계자에게서 전화가 왔다. 실업팀 선수가 되어 출전해보자는 내용이었다. 처음에는 거절했다. 나이도 많고 사이클 경력이 얼마 되지 않아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뒤돌아 생각해보니 욕심이 생겼다. 곧 입단 시험을 볼 예정이다. 테스트로 남자 선수와 경쟁을 한다는 것이 부담스럽지만 어쨌든 한번 도전해볼만 한 가치는 있다. 운이 좋다면 아마추어 라이더 중 실업팀에 입단하는 최초의 ‘아줌마 라이더’가 되지 않을까?



이 기사는 <월간 더바이크> 8월호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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