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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

Capitalism: A love story by 마이클 무어

자본주의를 향한 이유 있는 야유를 들어볼까?




 마이클 무어를 다윗에 비유하긴 어렵지만, 여태껏 그가 영화를 제작하면서 제법 영리한 방식으로 미국과 싸워왔다는 점은 인정해줄만 하다. 전작 식코(sicko)에서도 그러하듯 이번에도 그는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 어떻게 상식으로 둔갑하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이번 주제는 마이클 무어의 총론과도 같은 것이다. 바로 자본주의 그 자체에 관한 이야기인데, 부수적인 주제로 크게 모기지서브프라임, 신용파산스왑, 생산 기반 약화로 인한 노동자 세력의 감소 및 빈민화 등을 다루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들은 현재 미국을 말하는 문제들, 그 자체다. 

 그리고 그 문제들은 확실히 미국을 흔들고 있다. 영화 초반부터 집문을 부수고 들어가는 공무원들을 볼 수 있다. 그들은 주택을 압수하려는 사람들이다. 자본주의적인 상식에서 보자면 그것은 '합법적'이란 이유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그에 대한 모든 이견과 비난은 비상식적이고 자유와 준법의 정신에 위배하는 것이다. 주택을 담보로 대출했을 경우, 대출금을 갚지 못하면 주택을 가져간다는 명쾌한 논리가 바로 그것이다. 설령 그것이 인간의 생존에 필요한 의식주를 빼앗는다고 해도 말이다. 자본주의가 주는 첫 번째 교훈은 국가가 보장하는 것은 법률 그 자체이지, 시민의 기본권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또 하나의 고민거리를 만난다. 그렇다면 법률은 무엇인가? 법이라는 것이 지켜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법이 과연 누구의 편인가는 사람마다 의견이 다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믿고 있기는 법이 만민을 위해 존재하며 만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고 알고 있다. 그러나 그러나 만민에게 적용되는 법률의 개정은 편파적인 인간적인 이해관계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법의 손길은 모든 이들에게 미치지만 법의 생산에 관여하는 자는 소수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기업들은 이러한 점을 정확히 알고 있다. 따라서 그들의 재력은 입법자들과 행정권을 쥔 자들을 상대로 로비를 벌이는 필수적인 수단이다. 아주 간단한 방법인데, 예산 분배에 관여할 수 있는 정치인들에게 얼마의 사적 자금을 투입하고, 그들로 하여금 자신들에게 공적 자금을 편성하게 하는 것이다. 그 돈의 출생과 목적이 사적이든 공적이든, 혹은 검거나 희건간에 돈은 단지 돈일 뿐이다. 자본주의에서 돈은 곧 모든 가치를 대변한다. 이렇게 그들은 최소한의 투자로 그의 수백 배에 달하는 이윤을 낸다. 

 자본이 공공성을 가져야할 민주주의를 침식하고 있다는 것은 이미 공공연한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공공연한 사실을 비밀인 것처럼 유지하는 비결은 무엇일가? 영화 속에서 한 성직자를 이렇게 말한다. 그것은 대중 선동 때문이라고, 그것을 우리는 '프로파간다'라고 부른다. 자본주의가 옳고 그것은 민주주의와 동의어라는 구호는 이미 우리에게도 친숙하다. 자본주의적 프로파간다에 거의 내성이 없는 한국의 기성 세대에게 '반공'과 '자본주의'는 국가가 존립해야 하는 이유다.  

 영화는 점차 자본주의의 부조리 속으로 파고든다. 그것은 단지 한 사람의 불평이 아니라 분명한 현상과 그에 대한 역사적 자료에 근거한다. 인터뷰는 자본주의가 어떻게 사람들을 피폐하게 만드는 지 고발하는 생생한 증거다. 인터뷰의 대상은 집을 빼앗긴 사람을 포함해, 성직자, 일자리를 잃은 전직 증권가, 심지어 정치인들도 포함한다. 지적, 경제적, 사회적 지위 수준도 다른 그들은 하나 같이 지금 미국이 잘못되어가고 있다고 말한다. 마이클 무어는 말한다. '대체 이런 문제들은 왜 생기는 겁니까?' 그러면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자본주의는 뿌리부터) 잘못되었기 때문이죠'

 마이클 무어 감독 특유의 영상 기법은 흥미롭다. 기존 골격은 역시 다큐멘터리답게 인터뷰나 자료 화면에 의존하여 나레이터가 진행을 하는 방식이다. 여기에 돌발적인 영상을 사이사이에 삽입한다. 또한 거친 입자의 돌발 영상들은 마이클 무어가 자본주의에 대해 어떠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지 알려주는 직접적인 단서가 된다. 이러한 뉴스나 광고의 풍자, 성경의 패러디는 자칫 무거워질 수 있는 전개에 '엣지'를 준다. 한편으로 이러한 기법은 줄거리를 산만하게 할 요인도 있으나 마이클 무어 특유의 연출는 언제나 핵심을 겨냥하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문제의 심각성을 증폭시킨다.

 누구에게나 자본주의에 대한 지지 혹은 반대를 할 수 있는 자유는 있다. 그러나 만약 자본주의의 지지자들이 자본주의를 옹호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 체제에 대한 건강한 시각을 견지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냉정한 반성과 분석이 필요한데 마이클 무어의 영화는 체제의 반대자들이 무엇을 바라보고는 것인지 알 수 있는 거울이 된다. 그러한 의미에서 이 영화는 흥미롭다. 또한 자본주의에 반감을 가진 이들에게는 참으로 통쾌한 영화가 아닐 수 없다. 그들이 말하는 미국의 문제는 곧 자본주의의 문제다. 그리고 미국의 전철을 그대로 딛는 한국의 경우 결코 남의 나라의 문제가 아니다. 그리고 우리는 자본주의의 부조리를 직시함으로서 진실로 우리가 가야할 길을 모색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