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상다반사

이제 그만 애국합시다.

 





언제인지 모르겠다. 한국 vs 아르헨티나 월드컵 예선전을 할 때였는데, 나는 아르헨티나 저지르를 입고 거리에 나간 적이 있었다. 딱히 내가 아르헨티나 축구팀의 팬이라서는 아니다. 그렇다고 한국팀-정확히 하자. 한국이 아니라 한국 국가대표 축구팀이다-이 바라는 매국노도 아니거니와, 더 솔직해지자면 사실 남들 공차고 노는 것에 하등 관심을 못 느끼는 사람이다. 다만 나는 아르헨티나의 푸른색이 마음에 들어서 운동할 때마다 입고 다녔고, 당시에도 편하게 입고 나갔던 것 같다. 물론 아르헨티나전을 할 당시에 일부러 그 옷을 꺼내 입은 이유 중에는 내심 삐딱이 근성이 전혀 없었다고는 말 못하겠다. 어쨋든 내가 발가벗고 다닌 것도 아닌데 무슨 옷을 입건 내 마음 아닌가. 그래서 어찌되었냐면, 술집에 들어가자마자 나는 적대적인 눈빛과 위협에 시달려야 했다. 길을 걷는데, 뒤에서 웬 어린 놈들이 "아르헨티나 저지 입었네. 가서 때릴까?" 이런 소리도 들어야 했다. 


그게 애국일까. 내 생각에 그게 애국은 아닌 것 같다. 한국팀이 잘하는 것과 나라가 잘 되는 것이 무슨 상관이라고. 내가 경험한 것은 그저 집단주의적인 배타성이었다. 


요즘 국기 게양과 애국이 핫한 키워드다. 어제는 시청 근처에 갔더니 남산만한 태극기를 빌딩 전면부에 가려놓은 광경을 두 번씩이나 목격했다. 요새 통유리로 된 빌딩이 빛 공해를 일으킨다고 하니 차라리 태극기를 보는게 나을 것도 같다. 문제는 그게 애국이라고 떠받들고 강제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려는 분위기다. 이런 종류의 애국이라면 우리는 이미 월드컵 때 많이 하고 논다. 그래도 월드컵 때는 다들 들뜨고 취해서 뭐가 잘못인지도 모르고 지나간다지만, 맨정신에도 나라 사랑하는 마음으로 활활 타올라야 한다니. 뜨겁다 못해 뇌세포가 탈 지경이다. 내가 보기에 이들은 정말 나라를 사랑해서 애국이라는 말을 쓰는 것 같지 않다. 애국이라는 단어를 공공연히 입 밖으로 꺼낼수록 애국의 의미는 오염이 된다. 전체주의자들이 생각하는 애국이라는 관념은 종국에는 단지 너와 내가 같은 편이라는 것을 확인하는 것 이상의 기능을 하지 않는 껍데기에 지나지 않는다. 마치 나치스가 "하일 히틀러"를 외칠 때도 마음에 히틀러에 대한 존경심이 우러나와서 그러는 것은 아니 듯 말이다. 그래서 나는 태극기를 보면 기어코 왼쪽 가슴의 안부가 궁금한 분들에게 나는 간곡하게 부탁하고 싶다. 월드컵으로도 충분하잖아. 이제 우리 애국놀이는 좀 그만하면 안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