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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칼럼

안녕, 잠자리. 안녕


"허허, 욘석. 놔라, 형의 겁나 쩌는 턱맛을 보여주기 전에." *본문과는 아무 상관없습니다. 출처: http://flworld.com/3605



 창문을 열었는데 고추 잠자리가 하나 들어왔다. 그러니까 형광등불에 교란당하는 것은 밤벌레만은 아닌가보다. 기어코 이놈이 형광등으로 돌격하더니 전구와 전구덮개 사이에 갖혀서 나오지를 못하는 거였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도 아니고, 이 놈 하나 구하자고 형광등 덮개를 뜯자니 덮개의 쌓인 먼지며 죽은 하루살이 시체를 마시기는 꺼림칙하다. 이놈은 자기 본능이 시키는 대로 움직인 것 뿐이다. 잠자리와 나는 세계에 대한 이해가 전혀 다르기 때문에 구해줄 의무 따위는 없다고 생각도 했다. 몇 번을 악다구니친 후에 포기한 듯 죽음을 기다리는 잠자리를 보다가 하는 수 없이 의자를 가져와 덮개 잠금 장치를 하나하나 제거했다.


 그것도 측은지심인지, 괜한 감정 투사인지는 모르겠다. 이게 살려주면 또 얼마나 살 것이냐. 내가 구해준들 어디서 또 엉뚱한 형광등에 처박고 죽을지도 모르는 일인데. 살려준다고 고마워나 하겠어? 여튼 이것은 귀찮은 일이다. 덮개를 열어보니 지칠대로 지쳐서 '아이 시부럴 죽이든 살리든 니 맘대로 혀'하고 배째라 식으로 엎어진 잠자리 날개를 잡았다. 


 엉뚱하게 죽지 말고 천수를 누리라는 말은 낯간지럽다. 내 눈 앞에서 뭐가 죽는게 꺼림칙해서 그런거야. 호의라기 보다는. 조금 귀찮으면 이 놈은 죽음을 모면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공리주의자들은 전체의 행복을 증진시키는 것이면 그것이 옳은 것이라고 했다. 공리주의로 본다면 나는 세계 쾌락 총량에 기여한 것이다. 그놈을 집게 손가락에 끼운채로 다시 덮개를 씌우고 창문을 열어 방생했다. 기절한 건지 담뱃재처럼 바람에 휘날리다가 날개가 깜빡하더니 다시 정상적으로 비행하기 시작한다. 


 너는 적어도 날개에 분가루는 없는 곤충이니 살려준거야. 나방이었으면 어림도 없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