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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황지우 시집 <어느 날 나는 흐림 주점에 앉아 있을 거다> 중에서

당신은 홍대 앞을 지나갔다


내가 지도교수와 암스테르담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을 때

커피 숍 왈츠의 큰 통유리문 저쪽에서 당신이 

빛을 등에 지고서 천천히 인화되고 있었다.

내가 들어온 세계에 당신이 처음으로 나타난 거였다.

그것은 우연도 운명도 아니었지만,

암스테르담은 어떤 이에겐 소원을 뜻한다.

구청 직원이 서류를 들고 북구풍 건물을 지나간 것이나

가로수 그림자가 그물 친 담벼락, 그 푸른 투망 밑으로

당신이 지나갔던 것은 우연도 운명도 아닌,

단지 시간일 뿐이지만 디지털 시계 옆에서

음악이 다른 시간을 뽑아내는 것처럼,

당신이 지나간 뒤 물살을 만드는 어떤 그물에 걸려

나는 한참 동안 당신을 따라가다 왔다.

세계에 다른 시간을 가지고 들어온 사람들은

어느 축선에서 만난다 믿고 나는 돌아왔던 거다.

지도교수는 마그리트 파이프에 다시 불을 넣고

나는 당신을 모른다.

당신은 홍대 앞을 지나갔다.

암스테르담을 부르면 소원이 이뤄졌을지도 모른다.

마그리트 씨가 빨고 있던 파이프 연기가

세계를 못 빠져나가고 있을 때

렘브란드 미술관 앞, 늙은 개가 허리를 쭉 늘여뜨리면서

시간성을 연장한다. 권태를 잡아당기는 기지개;

술집으로 가는 다리 위에 자전거가 세워져 있었다,

그친 음악처럼.





몹쓸 동경


그대의 편지를 익기 위해 다가간 창은  지복이 세상에

잠깐 새어들어오는 틈새; 영혼의 인화지 같은 것이 저 혼자

환하게 빛난다. 컴퓨터, 담뱃갑, 안경, 접어둔 화집 등이

공중에 둥둥 떠다니고, 천장에서, 방금 읽은 편지가 내려왔다.

이데올로기가 사라지니까 열광은 앳된 사랑 하나; 그 흔해빠진

짜증스런 어떤 운명이 미리서 기다리고 있던 다리를

그대가 절뚝거리면서 걸어올 게 뭔가.

이번 생에는 속하고 싶지 않다는 듯, 모든 도로의 길들

맨 끝으로 뒷걸음질치면서 천천히 나에게 오고 있는,

그러나 설렘이 없는 그 어떤 삶도

나는 수락할 수 없었으므로 매일, 베란다 앞에 멀어져가는

다도해가 있다. 따가운 후두음을 남겨두고 나가는 배; 그대를

더 오래 사랑하기 위하여 그대를 지나쳐왔다. 격정 시대를

뚫고 나온 나에게 가장 견딜 수 없는 것은 지루한 것이었다.

맞은편 여관 네온에 비추인 그대 속눈썹 그늘에 맺힌 것은

수은의 회한이었던가? "괴롭고 달콤한 에로스"[각주:1]

신열은 이 나이에도 있다. 혼자 걸린 독감처럼,

목 부은 사랑이 다시 오려 할 때 나는 몸서리쳤지만, 

이미 산성을 덮으면서 넓어져가는 저 범람이 그러하듯

지금 이렇게 된 것은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것. 그대는,

이삿짐 트럭 위에 떨궈진 생을 두려워하지는 않는지.

신화와 뽕짝 사이 사랑은 영원한 동어 반복일지라도

트럭짐 거울에 스치는 세계를 볼 일이다.

황황의 물 속에서 삐걱거리리는 베키오 석교를

그대가 울면서 건너갔을지라도

대성당 앞에서, 돌의 거대한 음악 앞에서

나는 온갖 대의와 죄를 후련하게 잊어버렸다.

나는 그대 앞의 시계를 보면서 불빛번을 선다.

그대 떠나고 없는 마을의 놀이터 그네에 앉아

새벽까지 흔들리고 있었다. 그렇다.

동경은 나의 소명받은 병이었다. 지구 위에 저 혼자 있는 것 같아요,

라고 쓴 그대 편지를 두번째 읽는다




세상의 고요


맑고 쌀쌀한 초봄 흙담벼락에 붙어 햇볕 쬐는데

멀리 동구 밖 수송기 지나가는 소리 들렸을 때


한여름 뒤란 감나무 밑 평상에서 낮잠 자고 깨어나

눈부신 햇살 아래 여기가 어딘지 모르게 집은 비어 있고

어디선가 다듬이질 소리 건너올 때


아무도 없는 방, 라디오에서 일기 예보 들릴 때


오래된 관공서 건물이 고궁으로 드리운 늦가을의 짙은 그림자,

그리고 투명하고 추운 하늘을

재판 받으러 가는 호송 버스에서 힐끔 보았을 때


백미러에 국도 포플러 가로수의 소실점이 들어와 있을 때


야산 거울숲이 저만치 눈보라 속으로 사라질 때

오랜만에 올라온 서울, 빈말로라도 집에 가서 자자는 놈 없고

불 꺼버린 여관 앞을 혼자 서성거릴 때


흰 영구차가 따뜻한 봄산으로 들어갈 때


그때, 이 세상은 문득 이 세상이 아닌듯,

고요하고 한없이 나른하고 무궁과 닿아 있다

자살하고 싶은 한 극치를 순간 열어준 것이다.





신 벗고 들어가는 그곳


아파트 15층에서 뛰어내린 독신녀,

그곳에 가보면 틀림없이 베란다에

그녀의 신이 단정하게 놓여 있다

한강에 뛰어든 사람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시멘트 바닥이든 시커먼 물이든

왜 사람들은 뛰어들기 전에

자신이 신었던 것을 가지런하게 놓고 갈까?

댓돌 위에 신발을 짝 맞게 정돈하고 방에 들어가,

임산부도 아이 낳으러 들어가기 전에

신발을 정돈하는 버릇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녀가 뛰어내린 곳에 있는 신발은

생이 여기서 끝난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듯하다;

그것은 영원히 어떤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다만 그 방향 이쪽에 그녀가 기른 열대어들이

수족관에서 물거품을 뻐끔거리듯

한번의 삶이 있을 따름이다


돌아보라, 얼마나 많은 잘 든 길들이 있었는가

가서는 안되는 곳,

가고 싶었지만 끝내 들지 못했던 곳들;

말을 듣지 않는, 혼자 사는 애인 집 앞에서 서성이다

침침한 밤길을 돌아오던 날들처럼

헛된 것만을 밟은 신발을 벗고

돌아보면, 생을 '쇼부'칠 수 있는 기회는 꼭 이번만은 아니다






성 찰리 채플린


영화 <모던 타임즈> 끝장면에서 우리의 "무죄한 희생자,"

찰리 채플린이 길가에서 신발끈을 다시 묶으면서, 그리고 특유의 슬픈 얼굴로 씩 웃으면서 애인에게

"그렇지만 죽는다고는 말하지 마!"하고 말할 때

너는 또 소갈머리 없이 울었지


내 거지 근성 때문인지도 몰라

나는 너의 그 말 한마디에 굶주려 있었단 말야;

"너, 요즘 뭐 먹고 사냐?"고 물어주는 거

성자는 거지들에게 그렇게 말하지;

너도 살어야 헐 것 아니냐

어떻게든 살어 있어라




일 포스티노


자전거 밀고 바깥 소식 가져와서는 이마를 닦는 너,

이런 허름한 헤르메스 봤나

이 섬의 아름다움에 대해 말해보라니까는

저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으로 답한 너,

내가 그 섬을 떠나 너를 까마득하게 잊어먹었을 때

너는 밤하늘에 마이크를 대고

별을 녹음했지

태동하는 너의 사랑을 별에게 전하고 싶었던가,

네가 그 섬을 아예 떠나버린 것은


그대가 번호 매긴 이 섬의 아름다운 것들, 맨 끝번호에

그대 아버지의 슬픈 바다가 롱 숏, 롱 테이크되고;

캐스팅 크레디트가 다 올라갈 때까지

나는 머리를 박고 의자에 앉아 있었다


어떤 회한에 대해 나도 가해자가 아닌가 하는 생각 땜에

영화관을 나와서도 갈 데 없는 길을 한참 걸었다

세상에서 가장 쓸쓸한 휘파람 불며

신촌역을 떠난 기차는 문산으로 가고

나도 한 바닷가에 오래오래 서 있고 싶었다





뼈아픈 후회


슬프다


내가 사랑했던 자리마다


모두 폐허다


완전히 망가지면서

완전히 망가뜨려놓고 가는 것; 그 징표 없이는

진실로 사랑했다 말할 수 없는 건지

나에게 왔던 사람들, 

어딘가 몇 군데는 부서진 채 

모두 떠났다


내 가슴속엔 언제나 부우옇게 이동하는 사막 신전;

바람의 기둥이 세운 내실에까지 모래가 몰려와 있고

뿌리째 굴러가고 있는 갈퀴나무, 그리고

말라가는 죽은 짐승 귀에 모래 서걱거린다


어떤 연애로도 어떤 광기로도

이 무시무시한 곳에까지 함께 들어오지는

못했다, 내 꿈틀거리는 사막이,

끝내 자아를 버리지 못하는 그 고열의

신상이 벌겋게 달아올라 신음했으므로

내 사랑하는 자리는 모두 페허가 되어 있다


아무도 사랑해본 적이 없다는 거;

언제 다시 올지 모를 이 세상을 지나가면서

내 뼈아픈 후회는 바로 그거다

그 누구를 위해 그 누구를 

한번도 사랑하지 않았다는 거


젊은 시절, 내가 자청한 고난도

그 누구를 위한 헌신은 아녔다

나를 위한 헌신, 한낱 도덕이 시킨 경쟁심;

그것도 파워랄까, 그것마저 없는 자들에겐

희생은 또 얼마나 화려한 것이었겠는가


그러므로 나는 아무도 사랑하지 않았다

그 누구도 걸어 들어온 적 없는 나의 폐허;

다만 죽은 짐승 귀에 모래의 말을 넣어주는 바람이

떠돌다 지나갈 뿐

나는 이제 아무도 기다리지 않는다

그 누구도 나를 믿지 않으며 기대하지 않는다


The Temptation of St. Anthony, 살바도르 달리, 1946


1.


황지우 시인의 <어느 날 나는 흐린 주점에 앉아 있을 거다>는 고등학생 때부터 나를 시의 세계에 초대한 시집이다. 그로부터 십 년 동안 나는 황지우를 읽고 있다. 동경과 동감 사이에서 어스름하게 자리 잡은 감정의 표정은 나이를 먹을수록 명료해지고, 대신 늦은 봄밤 같이 허공에 뜬 세기말적 감수성은 점점 사라졌다. 이제는 추억으로만 떠올릴 수 있는, 김광석 씨의 '그녀가 처음 울던 날'을 부르면서 울컥 눈물이 났던 그런 시대가 막을 내리고 나는 다시 늙은 시인의 시집을 읽는다. 이제야 그가 무엇을 보았는지, 어떻게 아파했는지 알 거 같다.




2.


나더러 왜 연애를 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가슴이 철렁 주저앉는다. 한두번 받아보는 질문도 아닌데 늘 그렇다. 그럴 때마다 성격이 더럽고 가난하고 못생겨서 그렇다고 에둘러 도망간다.(그래, 쿨하게 인정하자면 사실이기도 하다.) "네가 사랑을 알아?" 라고 코웃음 치는, 나를 몇 년 아는 어느 건방진 계집애에게 불끈 화가나서 술잔을 쾅 내려놓으며 그깟 연애 몇 번 해봤다고 다 안다는 식으로 말하지 말라고 으름장을 놓았지만, 사실 나의 사랑에는 뚜렷한 대상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그렇다고 모태솔로라는 것은 아니다. 진짜로) 자아의 과잉에 괴로워하는 사춘기 소년처럼, 내 애정의 역사는 비현실적이었고 영혼을 갉아먹는 암 같은 것이었다. 나는 나에게 상처를 주고 덩달아 상대까지 지치게 만들었으며, 아포칼립스적 결말로서만 구원을 받았다. 하기야 어느 사랑의 기억이건 결론은 '망했음'이지만. 그래도 그 불우했던 시간들이나마 내 이십대 초반을 수놓은 훈장이고, 불행인지 다행인지 지금도 오랜 단골손님처럼 띄엄띄엄 찾아오기도 한다. 

 

  1. 사포의 시구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