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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

미스터 소크라테스, 최진원 감독 / 김래원 주연, 2005



대학시절 논리학 시간에 들은 우스갯소리가 있다. 어느 날 교수가 한 학생에게 “A가 과연 A인가란 질문을 한다면, 자네는 어떻게 되겠나?” 학생 왈, “A는 A가 아닐 것이라고 답하겠습니다.” “어째서?” “만약 A가 A라면 애초에 질문을 하는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학생의 대답은 틀렸지만, 한 가지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 있다. A에 대해 질문을 하는 배후에는 이미 A에 권위에 도전하려는 저항이 깔려 있다는 것이다.


<미스터 소크라테스>는 2000년 초를 강타한 조폭 영화의 굴곡진 끝물에서 나왔다. 단순하고 무식해서 웃긴 무법자들의 시대가 가고 무모한 상상력으로 제도권에 편입하려는 ‘잔대가리 주먹’들이 뜨는 것이다. 미래가 없는 동네 양아치 한 명을 붙잡아서 주입식 교육을 통해 강력계의 끄나풀로 활용한다는 그들의 전략은 황당무계하지만 나름 신선하기는 했다.  기존 조폭영화의 평면적 흐름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다. 깡패가 경찰로 위장근무를 한다는 내용은  <무간도>에서 차용한 아이템이지만 그래도 '한번 깡패는 영원한 깡패여.'라고 깡패순혈주의를 외쳤던 이전의 영화보다는 확실히 몇 번 꼬아서 들어간 노력이 보였다.


그러나 이 영화는 제복을 입은 조폭이 나오는 그저 그런 범작의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제목이나 설정에서 느껴지는 영화의 시니컬함은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현실의 가랑이 사이로 기어들어가고 있는 형세다. 악이 선으로 전향한다는 그럴듯함, 그리고 영화 전체에 깔린 순응주의는 한껏 기대를 하고 온 관객들을 맥 빠지게 한다. 예컨대, 동혁이 처음 조폭의 ‘학교’에 끌려가서 주입식 교육을 받는 장면은 한국식 교육에 대한 호들갑스러운 패러디에 지나지 않는다. 주입식 교육이 일시적이나마 동혁의 의식을 개조하고 결국 경찰시험까지 합격하는 쾌거(?)를 이루는 과정과 경찰로서 현실적인 포지션을 찾아가는 동혁의 시선은 무기력하기만 하다. 우리가 <미스터 소크라테스>를 보면서 카타르시스를 느끼지 못하는 것은 이 영화의 절정에 이르기까지 ‘역발산기개세’할 듯한 주인공의 저항이 없기 때문이다. 잘못된 것을 알지만 따를 수밖에 없다는 것. 그야말로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허허. 제목을 잘 못 지었다. <미스터 소크라테스>가 아니라 <미스터 성철스님>라고 하면 차라리 그럴 듯하려나. 


영화 <미스터 소크라테스>에서 동혁은 말한다. “악법도 법이다.” 그는 자랑스럽게 소크라테스가 말했노라고 유래를 밝힌다. 그런데 이 명제에는 거세된 진보성만이 존재했다. 그리고 ‘악법도 법’이라는 모토는 ‘법은 어쨌든 법’으로 치환된다. 동혁의 과거사 청산 내지 선으로의 전향은 이미 예정되었다. 어쨌든 주인공은 정의의 편이여야 한다는 영화의 상투성 때문이 아니다. 문제는 이야기의 흐름에 떠밀리는 동혁의 굴복적 태도다. 조폭에게서 있을 때는 조폭 행세를 하다가 경찰이 되니 어느 순간 경찰의 윤리의식을 도둑질하면서 인간이라면 의례 있어야할 정체성의 분열이 나타나지 않는다. 영화에서 동혁의 변신은 영 맥아리가 없다. 이 근본적인 결핍은 스크린을 제아무리 폭력과 욕설로 가득 채운다고 해도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과연 소크라테스가 ‘악법도 법이다’라는 말을 했느냐? 그것도 아니다. 하기야 검정고시를 통과한 동혁의 수준에서 그 잘못된 정보라도 알고 내뱉는 것이 기특하긴 하다만, 이 말에는 숱한 오해가 있음을 알려둔다. 혹은 ‘악법도 법이다’를 사도신경 외우듯이 되풀이하는 동혁의 이미지에서 미스터 소크라테스라는 제목을 추출한 제작진의 의도도 미심쩍다. 실상 소크라테스가 생각한 법에 대한 개념은 보다 파괴적이다. 독배를 마시기 직전 소크라테스는 크리톤에게 법의 절차적 정당성을 논한 적이 있다. 결론만 말하자면 그는 악법도 어쨌든 법이니까 지켜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법의 정의와 구속력이 고루 미친다는 전제 하에 법적 절차에 따라 누구든 권리를 주장하되 결과를 받아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법 외 다른 이유를 구실로 초법적인 권리를 행사하는 자들을 경계하는 것이다. 소크라테스가 스스로 독배를 마신 까닭은 아테네 법정의 정당성에 의거하여 자신이 변호에 실패했음을 인정하는 것이지, 아테네 법정이 사악하지만 법이니까 따라야 한다는 말은 아니었다. 오히려 누구나 그것이 온당치 못하다고 생각하는 법이 있다면 그 법의 정당성은 보증 받지 못하며, 법의 정당성이 온건하지 못하다면 법적 구속력 역시 온건하지 못하다. 그러나 법이 정의롭다면 설령 그 법으로 인해 내가 다소 억울한 피해를 볼 지라도 받아야들어야 함이 옳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동혁은 교과서에 나오는 소크라테스를 인용한다. 수능용 소크라테스는 악법도 법이라고 가르쳤을지도 모른다. 설사 그럴지라도 달면 삼키고 써도 삼키는 동혁의 사고관은 주인공의 그것으로는 너무 순순하다. 하기야 이야기를 한번 꼬고 다시 또 한번 꼬았는데, 그것이 한번도 꼬지 아니한 영화보다 밋밋하다면 어디 주인공만의 문제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