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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추모글 12월 25일




금일 제 크로커다일 레이디 양가죽 장갑이 오른쪽 베필을 잃었습니다. 모든 것이 제 부주의 때문에 생긴 일이었습니다. 기형도 시인의 글처럼 너무도 가까운 거리가 나를 안심시켰습니다. 지하철을 타면서 그것들이 고스란히 안주머니 속에 있다고 생각했는데, 지갑을 꺼낼 때 오른쪽 녀석이 영영 제 품을 떠난 것을 뒤늦게야 확인했습니다.


이 장갑과 함께 했던 날들을 추모합니다. 손이 작아 남성장갑이 맞지 않는 고로 어머니께서 쓰시던 것을 물려 받은 이 장갑은 저와 두 번의 겨울을 보냈습니다. 어머니와 함께 보낸 시간까지 합치면 적이 오 년은 되었을 것 같습니다. 제 수명을 채우지 못하고 버림 받는 작금의 소비 생활 속에서 이 녀석은 나의 굳건한 친구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시리디 시린 날들을 함께 보냈습니다. 이 장갑이 있어서 내 손들은 추위를 피해 호주머니 속으로 숨지 않았습니다. 이것들은 단지 장갑이 아니라 추울 때마다 나를 보듬는 또 하나의 손이었고 온기였습니다.


불현듯 떠난 장갑 한 쪽을 기억하며 저는 담배 두 개피를 태웠습니다. 하나는 제가 피운 것이고 다른 하나는 혼자 남은 왼쪽 장갑이 피웠습니다. 참을 수 없는 것은 제짝을 잃어버린 왼쪽 장갑의 슬픔이었습니다. 이제 혼자 남은 왼쪽 장갑은 모습이 성한 불구가 되어 영영 장롱 속을 전전하겠지요. 그렇게 왼쪽 장갑은 부재한 오른쪽의 무거움을 안고 망각 속으로 침몰할 것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이러한 비극의 원인은 어디까지나 저의 불찰이었고, 내 실수로 인해 나와 내 오른쪽 장갑, 왼쪽 장갑은 다시는 만날 수 없는 갈림길에 섰습니다. 이 애통하고 미안한 마음 금할 수 없어 이처럼 추모의 글을 남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