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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

쇼미더머디(Show me the Money)(2009) 최익환, 남다정, 권중관, 이송희일, 김은경, 양해훈, 채기, 윤성호, 김성호, 김여남 감독, 다수 주연




배금주의라고 부르기엔 알싸한 '쩐'에 대한 푸념


 현대에서 돈은 사회적 공기다. 금전을 매개로 가치를 주고받는 사회형태가 바람직한가를 논하기에 앞서, 우리는 이미 시장의 체제 속을 헤엄치고 있다는 이야기다. 생각해보면 한낱 청동 덩어리, 혹은 종잇조각에 불과한 그것으로부터 무소불위의 권력이 나온다는 것이 웃긴 일이지만, 법정에서 '무전유죄, 유전무죄'를 외친 지강헌의 외침[각주:1]이 신파조로 들리는 것이 어쩔 수 없는 것이 요즘의 풍조이기는 하다.

 이러다보니 정치권, 또는 운동권 인사가 자본주의를 향해 돌멩이를 던지는 행위가 새삼스러운 일이 되었지만, 살에 와 닿는 돈의 위력에 대해 예민한 후각을 유지해야 함은 여전히 유효하다. 왜냐면 화폐라는 것이 이것과 저것의 등가가치를 보장하는 역할을 넘어 –우리가 화폐교환이라는 게임의 룰을 지속하는 한- 삶의 질을 계측하는 척도이자 삶을 사는 목적가 되었기 때문이다. 돈이 많다는 것은 단지 소비능력이 높다는 것을 넘어 그의 인격과 인간의 품격마저 규정한다. 돈으로 사랑을 살 수는 없지만 돈으로 존중과 존경을 얻을 수 있는 시대가 바로 오늘이다. 

 이 영화는 금전에 대한 에피소드를 다루고 있지만 자본주의의 모순을 다룬다고 보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 ‘황금시대’를 구성하는 여러 단편 영화들 사이에는 유기적인 구조가 존재하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배금주의에 대한 일편적인 시각마저 포기한다. 마치 술자리에서 중심 없이 옮겨가는 수다의 소재처럼 영화는 ‘돈’을 중심으로 파편적인 이야기의 모음일 뿐이다. 그것은 사업에 실패하고 청산가리마저 사기를 맞아 죽지도 못하는, 웃을 수도 울을 수도 없는 사람의 이야기[각주:2]일 수도 있고, 복권으로 흥했다가 복권으로 망하면서 좌지우지하는 인생[각주:3]을 보여줄 수 있다. 또는 10원에 얽힌 센티멘탈리즘[각주:4]을 떠들다가도, 한편으로 부도가 난 공장에서 월급도 못 받고 쫓겨난 공장직원과 공장장이 돈 일이만 원에 인간적인 유대를 놓지 않는, 유토피아적 상상[각주:5]을 꾸며내기도 한다. 

 돈에 대한 푸념들로 점철한 이 영화가 하나의 의미를 가질 수 있는 까닭은 이 모든 사건들이 ‘돈이 절대적으로 많았더라면-혹은 아예 없었더라면-’ 일어나지 않을 해프닝이기 때문이다. 부제인 ‘Show me the money’에서 보이듯 우리는 돈을 욕망한다. 그러나 이 욕망의 정체는 단지 무언가를 구매하고 과시하기 위한 외형적 욕구가 아닌 사랑이나 우정과 같은 내면적 열망에서 비롯한다. 삶과 불가분의 관계로서 돈에 대한 개념은 이미 우리 마음의 일부분이 되었다. 따라서 돈은 더 이상 소유의 대상이 될 수 없고 삶을 투영하는 매체이다.

 물과 싸워서 이기는 물고기가 없듯, ‘돈맛’을 아는 우리가 돈을 거부할 수는 없다. 그런 면에서 영화 황금시대는 자본주의의 모순을 파헤치는 지식인들보다 차라리 솔직한 맛이 있다. 달리 말하자면 사회의 문제를 바깥에 있는 적으로 간주하고 날카로운 펜을 휘두르는 지성보다, 폐부(肺腑)까지 스며든 금전의 위상을 드러내는 영화인들의 감수성이 우리가 가진 ‘쩐’에 대한 애환을 잘 표현한다.





  1. 지강헌(池康憲, 1954년~1988년 10월 16일)은 1988년 교도소 이감중에 도망쳐 서울에서 인질극을 벌였던 탈주범이다. 지강헌 일당이 서울시 북가좌동에서 인질극을 벌이는 장면은 TV를 통해서 전국으로 생생히 중계되면서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되었다. 특히 '돈 있으면 무죄, 돈 없으면 유죄'라는 뜻으로 '유전무죄(有錢無罪), 무전유죄(無錢有罪)'라고 사회의 불평등에 대해 절규하면서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또한, 지강헌 일당이 보호감호제도에 대한 불만 때문에 탈주극을 벌이면서, 보호감호제에 대한 논란도 불러일으켰다 <출처 위키백과> [본문으로]
  2. 극 중 첫 번째 에피소드 <유언LIVE>(감독 최익환) [본문으로]
  3. 극 중 <신자유청년> (감독 윤성호) [본문으로]
  4. 극 중 (감독 김성호) [본문으로]
  5. 극 중 <백 개의 못, 사슴의 뿔>(감독 김영남)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