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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tional Doragraphycs/시사

문제는 코끼리가 아니라고 멍청아(It's not an elephant, stupid.)




 금일(정확히 말하자면 10월 29일) EBS 다큐 프라임에서 '킹 메이커'란 주제로 대통령 선거에 관련된 다큐멘터리를 방영했다. 총 3부작으로 방영할 계획인 이 다큐멘터리에서 첫번째로 공중파를 탄 주제는 '네거티브 전략'이다.


 네거티브 전략이란 상대 후보에 대한 음해성 루머를 퍼뜨려 유권자에게 혐오감을 조성하는 전략을 말한다. 이 '음해'라는 것의 종류는 다양해서 기본적으로 상대의 실책을 부풀려서 광고하는 것에서부터 아예 없던 이야기를 의혹으로 제기하는 방법도 있다. 이러한 음모론적 억측은 오로지 몇 가지 억측과 가정법으로만 지탱되기 때문에 반박기도 어렵다. 왜냐하면 음모론적 가설들은 반증가능성이 적기 때문이다. 즉, 그들의 주요한 가설의 전제가 불분명하므로, 결백을 주장하는 측에서도 효과적인 반박이 어렵다는 말이다. 또한  지난 '타진요'사태와 같이 상대가 명백한 증거를 들고 나와도 그 증거 자체를 의심하는 수준에 도달하면 진실에 대한 해명은 아무런 효과를 갖지 못한다.



한때 학력 위조에 대한 음모론을 제기해 이슈가 되었던 타진요 까페.



 설사 이러한 음모론에 대해 적극적으로 반박할 물증이 있다 하더라도 부정적인 이미지는 지속된다. 일단 의혹이 제기되면 이것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시간이 길어질 수록 대중의 뇌리에는 후보자와 후보자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연결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지난달 '안철수와 목동 애인'은 안철수가 숨겨둔 애인을 둔 인물이라는 이미지를 각인시킴과 동시에, 이를 공개적으로 질타한 안철수 선거 진영 전체를 오히려 정치전략으로 매도함으로써 안철수 후보를 공작정치의 달인인양 몰아가려 했다. 결국 택시기사의 증언으로 인해 정준길 공보위원의 발언이 갖는 신뢰도에 금이 가면서 공격은 실패로 끝났지만, 이로 인해 대중들은 안철수 후보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가 환기되었다고 볼 수 있겠다.



정 위원. "친구 사이. 협박 아니다."란 주장의 배경을 무너트린 택시 기사의 증언.



 그런데 어째서 이러한 얼토당토한 의혹이 지지율에 영향을 미치는 걸까? 맥락상 황당할 정도인 의혹이 대중에게 영향을 끼치는 이유는 간단하다. 조지 레이코프[각주:1]가 주장한 것처럼 사람은 "코끼리를 생각하지 마" 라는 말을 들으면 자신도 모르게 코끼리를 생각하게 되는 인지적 요인 때문이다. 인간은 마이너스적 심상을 떠올릴 수 없다. 즉, 생각하지 마라는 술어와 상관없이 그 단어를 언급하는 것만으로도(심지어 그것을 부정하는 맥락의 문장에서도) 그 단어를 떠올린다. 사실무근의 의혹도 지속적으로 제기하다보면, 그러한 의혹이 과연 합리적인 의혹인가 아닌가와는 상관없이 우리는 당사자가 그 의혹과 관련이 있는 거처럼 마음이 기울기 마련이다. 심지어 일부 미디어와 결탁한 특정 후보가 상대 후보에 대한 비방을 전방위로 가할 경우, 사람들은 더더욱 '아니 땐 굴뚝에 연기나랴'라는 심정을 갖는다. 


 이것이 소위 '프레임'이라는 것이다. 사태의 본질이 '코끼리'가 아니라고 말해도 우리는 코끼리를 떠올린다. 조지 레이코프가 역설한 '프레임 이론'[각주:2]에 근원을 둔 이 정치전략의 정수는 유권자의 인식을 특정한 프레임 속에 가둠으로써 사태를 보는 시야를 협소하게 만듬에 있다. 이렇게 되면 선거에서 가장 중요한 쟁점들은 사라지고 대중들이 눈을 돌릴만한 선정적인 이슈만 난무하는 것이다. 이러한 면에서 본다면 '대중은 무지하다'란 말까진 아니더라도 '대중은 스스로 이성적인 판단을 내리는 것을 부담스러워 한다'란 말은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는 듯 보인다. 플라톤 선생이 들으면 '거봐, 이래서 민주주의는 안된다니까.'라고 박수를 칠 일이다.

  1. 조지 레이코프 (1941년 5월 24일 ~). 미국의 인지언어학자. 진보주의자들이 선거에서 패배하는 이유를 기술한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외에도 프레임 전쟁 등 다수의 저서를 발표했다. [본문으로]
  2. 미국 캘리포니아대 언어학과 교수인 조지 레이코프가 발표했다. 프레임은 '기본 틀ㆍ뼈대'라는 뜻이며, 프레임이론에서 프레임이란 현대인들이 정치ㆍ사회적 의제를 인식하는 과정에서 본질과 의미, 사건과 사실 사이의 관계를 정하는 직관적 틀을 뜻한다. 프레임이론에 따르면, 전략적으로 짜인 틀(frame)을 제시해 대중의 사고 틀(frame)을 먼저 규정하는 쪽이 정치적으로 승리하며, 이를 반박하려는 노력은 오히려 프레임을 강화하는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는 것이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