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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홍대 이야기


한림 여중에서 계약한 한 학기가 끝났습니다. 끝나자마자 비행기를 타고 이제 좀 쉴까 했는데 저번 주는 홍대도 다녀왔습니다. 집에 붙어 있는 시간보다 밖에서 보낸 시간이 더 많은 거 같군요. 집에 도착하자마자 읽으려고 도서관에 대출한 책이 세 권이나 있는데, 열흘 동안 한 권을 간신히 읽고 대출연장신청을 해야 했습니다. 

 홍대 이야기를 할까 합니다. 수능이 끝난 직후, 그러니까 아직 십대였을 시절 딱 한번 홍대의 밤 골목을 배회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제 친구가 홍대 근처  학원에서 실기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어느날 저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아는 누나가 클럽에 데려가기로 했는데 같이 놀지 않겠느냐는 거였죠. 당시 나름 힙합에 심취했던 저는 멋지게 올드 스쿨 힙합퍼처럼 차려입고 홍대로 갔죠. 그러니까 당시 나름 멋지게 입었다는 겁니다. 지금 보면 창피하긴 한데, 어쨋건 그랬습니다. 뉴에라와 농구 저지를 입은 우리는 클럽 문 앞에서 담배를 피며 들여보내주기로 한 누나를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삼십 분이 지나도 누나는 오지 않는 겁니다. 핸드폰도 받지 않고...우리는 홍대 놀이터에서 한 시간 정도를 기다렸지만 결국 누나는 오지 않았죠. 알고 보니 누나는 남자친구와 압구정 나이트를 갔다더군요. 그리하여 성스러운 크리스마스날, 저는 저의 소울 브라덜과 보드 게임방에서 즐거운 한 때를 보냈죠... 참고로 저는 남자고요, 제 친구는 당연히 남자였습니다. 

 갑자기 씁쓸하군요. 이런 이야기를 하려던 것은 아니었는데 말이죠. 간만에 가본 홍대의 느낌은 제 기억과 많이 달랐습니다. 당시에 저는 문화를 이해하기엔 소양이 부족했습니다. 단지 홍대하면 놀기 좋고 놀기 좋아하는 애들이 모인 곳 정도로만 생각했었습니다. 이번에 가본 홍대는 제게 다른 인상을 보여주었습니다. 일단 옷차림들이 재미있더군요. 쁘띠 브루쥬아처럼 차려입은 클래식 마니아부터 똥꼬를 잡아먹을 듯 꽉 끼는 가죽바지를 입은 미사리족까지 참 입맛대로 있었습니다. 그리고 기타를 매고 다니는 친구들이 꽤 많더군요. 음악을 사랑하는 청년들이 모이는 곳이라 다르긴 다른가 봅니다. 

 
 밤이 되자 홍대의 진면목들이 보였습니다. 옷을 산 것이 아니라 직접 만들어 입은 듯 특이한 의상들과 재미있게 화장을 한 여자들, 롱 가죽 부츠와 팔뚝에 온통 타투를 한 남자라니. 홍대는 마치 가장 무도회 같았습니다. 놀이터에서는 음악과 함성 소리가 끊이질 않았습니다. 이게 바로 홍대를 젊게 만드는 힘인 것 같습니다. 저는 문득 지방에 사는 젊은이들은 홍대의 젊은이들을 이해할 수 있을까를 묻게 되더군요. 획일화된 문화와 패션에 익숙한 지방의 젊은이들이 홍대의 젊은이들에 비해 '늙었다'는 평을 피하긴 왠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지방에서도 다양한 문화를 소비할 수 있는 여건이 되어야 하는데, 아쉽게도 시장도 작고 젊은이들의 인식도 따라오지 못하는 것 같아 아쉽더군요. 어쨋건 오늘밤 홍대 놀이터에서는 웃통을 전부 벗은 남정네들이 섹시하게 땀을 흘리며 북을 두드리고 있었습니다. '더 퍼커션'이란 타악기 밴드였는데, 왠지 난타가 생각났습니다. 밴드 주변에는 온통 한 손에 맥주를 들거나 담배를 피는 젊은이들이 신나게 리듬을 타고 있었습니다. 누구랄 것 없이 거리에서 춤을 춥니다. 어찌나 뜨거운 밤이던지 머리에서 수증기가 뭉글뭉글 피어오르더니 열대의 밤하늘로 흩어지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