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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따조의 전설 우리회사 막내 디자이너에게 따조를 아느냐고 물어봤다. 모른단다. 아무리 설명해줘도 모른다. 이것이 치토스를 먹으면 나왔고, 포켓몬빵보다 유서깊은 수집활동이며, 어린 아이들이 서로의 힘과 지혜를 겨루기 위해, 때로 사행성 도박중독의 위험과 현질조차 마다하지 않았음을 이 아이는 모른다. 뭐가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더보기
위악에 대하여 2 원시주의의 모순은 문명화된 세태의 반대급부로서 원시의 순수성을 해결책으로 삼았다는 것에 있다. 이미 '문명 세계'에 속하는 화가들에게 원시란 환상 속의 낙원에 불과했다. 그들은 원시의 순수성을 포착한 것이 아니라, 원시에 대한 동경을 그린 것에 불과했다. 세계의 위선에 대한 그들의 문제제기는 일리가 있었다. 문제는 해법에 있다. 그들은 문명의 개념적 반대인 원시에 답을 찾았고, 피상적인 이해에 기인한 것이다. 만약 그들이 비판하려던 핵심이 문명에 오염되어 병들어가는 정신에 있다는 것을 정확하게 인지했다면 그 문명의 중심에서 병든 정신 그 자체를 드러냈어야 옳다. 마찬가지로 위선은 개념적 대립인 위악으로서 치료되는 것이 아니라, 위선적 상황을 그대로 인정하는 것, 즉 어떠한 저항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위선에.. 더보기
위악에 대하여 위선이 역겹다고 위악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은 위선보다 더 타락한 사람이다. 위선적인 사람은 자신이 선이라고 착각하거나 최소한 선한 행동을 함으로써 자신이 선해질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지만, 위악적인 사람은 위선으로 자신을 치장한 사람들을 혐오하면서, 동시에 완벽히 선한 인간에 도달할 수 없는 현실에 비관하면서 지나치리만치 악한 본성을 부각시킨다. 그들은 마음 속의 충동을 공공연히 드러냄으로써 선에 대한 불능을 자위한다. 이것은 선한 본성에 반대하는 허무주의적 태도다. 그러나 위선이나 위악이나 둘 다 똑같은 자기기만이다. 위선적인 사람이 본성에 대해 차라리 순진하게 생각한다면 위악적인 사람은 위선에 반동으로써 이중의 타락을 한다. 위악적인 사람은 위선적인 사람보다 비교적 이성적이지만 '솔직함'에 있어 그릇.. 더보기
힙합가슴의 전설 예전에 한 친구가 원피스를 입고 온 적이 있었는데, 화사한 봄날에 맞춰 꽃문양이 그려진 그리스풍의 원피스였다. 보고 있으면 파르테논 신전에서 아테네 여신을 영접할 거 같았다. 그러나 문제는 그 녀석의 가슴이었는데, 풍만한 그리스 여인의 옷답게 커다란 가슴품에 비해 그녀석 사이즈는 청빈했다. 원피스의 매력은 봄바람에 살랑살랑거리는 치맛자락이라지만 덩달아 그 친구의 슴가 부위가 태극기가 바람에 펄럭이듯 공허를 드러내니까 일주일에 먹는 술까지도 깨는 듯했다. 그래서 그녀석 별명을 힙합가슴으로 붙였다. 다른데는 다 정사이즈인데, 가슴만 힙합으로 입는다고. 물론 그 친구는 페이스북을 하고 있고 나와 친구를 맺고 있지만 '좋아요'를 누르지는 못할 것이다. 더보기
2013. 8.25. 인터넷은 악마가 되어가는가? 김구라 황붕알이 라디오에서 시발시발 거리기 전에도 인터넷의 언어폭력은 해묵은 논쟁거리였다. 익명성은 과연 인터넷 유저에게 해인가 득인가라는 주제 역시 고전이다. 문제는 인터넷 보급기라는 과도기적 시기를 지나, 전국민이 숨을 쉬듯 인터넷을 쓰는 작금에서도 이런 불필요한 폭력이 난무한다는 것이다. 인터넷 문화가 성숙할수록 사이버 에티켓도 성숙해질 것이라는 낙관적 전망은 설득력을 잃어간다. 모니터를 마주 보고 자판을 치는 사람은 인터넷 회선 너머의 상대에 대한 공감능력(sympathy)을 잃는다. 일종의 싸이코패스가 되는 것이다. 여기에 중2병을 앓고 있는 윤리회색분자들과 위악론자들은 인간으로서 지켜야할 가치를 관습적인 터부로 오인하면서,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마저 무시한다. 이쯤되면 소송과 법적 제도 마.. 더보기
황지우 시집 <어느 날 나는 흐림 주점에 앉아 있을 거다> 중에서 당신은 홍대 앞을 지나갔다 내가 지도교수와 암스테르담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을 때커피 숍 왈츠의 큰 통유리문 저쪽에서 당신이 빛을 등에 지고서 천천히 인화되고 있었다.내가 들어온 세계에 당신이 처음으로 나타난 거였다.그것은 우연도 운명도 아니었지만,암스테르담은 어떤 이에겐 소원을 뜻한다.구청 직원이 서류를 들고 북구풍 건물을 지나간 것이나가로수 그림자가 그물 친 담벼락, 그 푸른 투망 밑으로당신이 지나갔던 것은 우연도 운명도 아닌,단지 시간일 뿐이지만 디지털 시계 옆에서음악이 다른 시간을 뽑아내는 것처럼,당신이 지나간 뒤 물살을 만드는 어떤 그물에 걸려나는 한참 동안 당신을 따라가다 왔다.세계에 다른 시간을 가지고 들어온 사람들은어느 축선에서 만난다 믿고 나는 돌아왔던 거다.지도교수는 마그리트 파이프에 다.. 더보기
무엇이 가산디지털단지역 커피빈을 짜증나게 만드는가? 무엇이 가산디지털단지역 커피빈을 짜증나게 만드는가? 커피맛은 잘모르겠다. 물맛나는거야 엷게 탔으니 그렇다치고(이 물맛나는 그란데 싸이즈가 거의 오천 원에 육박한다는 사실은 거의 혁명적이지만) 책상이 코딱지만하다. 이건 뭐 아기코끼리가 책상위에 올라가는 서커스할 때 쓰는 사이즈 같다. 커피와 랩탑 책을 놓으면 휴대전화 올려놓을 공간조차 없다. 두번째, 콘센트가 없다. 대체 커피빈은 까페를 뭐라고 생각하는 건까. 설마 커피맛으로 승부를 본다는 개수작은 아니겠지. 여기에서 할 짓이라고는 카톡게임을 하면서 배터리를 죽이거나 시시껄렁한 얘기를 나누면서 시간을 죽이는 일 둘 중 하나다. 세번째로 짜증나는 것은 후진 리필정책이다. 오전 모닝세트만 리필해주겠다는건 무슨 심산이냐. 아예 돈 받고 한 번만 리필해주겠다는 .. 더보기
서른을 앞두고 28살 초반에 내가 쓴 글을 다시 읽어 봅니다. 뭔가 아련하군요. 1.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산다고 자부하면서도 누구는 대기업 다니면서 월 실수익이 사백 언저리 즈음은 된다고 할 때, 그 사람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는데도 괜히 그 사람이 다니는 대기업은 모럴 해저드가 심각한데, 공부 잘하고 머리 똑똑해봐야 그런데서 일하는 거보면 생각 없는 놈이라고 흠 잡고 싶어진다. 2. 그래, 이건 열등감이다. 나에겐 무시무시한 열등감이 있다. 내 월급 몇 달치으로도 어림 없는 보증금을 내야 들어갈 수 있는, 그럼에도 비싼 월세는 꼬박꼬박 내야하는 원룸의 리얼리티를 비로소 깨닫는다. 사람이기 때문에 누려보고 싶은 허영심과 실제로 그것을 누리는 사람들에 대한 미움이 나를 엄습할 때가 있다. 사실 내가 그토록 하고 싶던 .. 더보기
더바이크 1월호 발행 1. 더바이크 1월호가 나왔다. 벌써 일 년이 다 되어간다. 겨울이라 특별히 현장을 뛰거나 바쁜건 없었지만 늘 시간에 쫓긴다. 그게 마감의 마법이기도 하다. 2. 촬영표지를 찍으려고 대관령을 다녀왔다. 새벽부터 출발한 탓에 주말은 고스란히 날아갔지만 오밤부터 일출을 기다린다는 것은 묘하게 설레는 일이기도 했다. 차 안과 바깥을 왔다갔다하면서 촬영을 했다. 강원도는 역시 강원도더라. 암만 방한을 해도 조그만한 틈으로 얼음 송곳이 푹푹 찌르는 듯했다. 가장 고생을 한 것은 바로 이 자전거였다. 나중에는 프레임에 된서리가 끼었는데, 그게 또 나름의 멋이 있어서 걷어내지 않고 그냥 촬영했다. 적설 깊이가 한 30센티를 되는 것 같았다. 멀쩡한 지면인줄 알고 들어갔다가 신발이 눈속에 파묻히기도 했다. 고생스러웠지.. 더보기
추모글 12월 25일 금일 제 크로커다일 레이디 양가죽 장갑이 오른쪽 베필을 잃었습니다. 모든 것이 제 부주의 때문에 생긴 일이었습니다. 기형도 시인의 글처럼 너무도 가까운 거리가 나를 안심시켰습니다. 지하철을 타면서 그것들이 고스란히 안주머니 속에 있다고 생각했는데, 지갑을 꺼낼 때 오른쪽 녀석이 영영 제 품을 떠난 것을 뒤늦게야 확인했습니다. 이 장갑과 함께 했던 날들을 추모합니다. 손이 작아 남성장갑이 맞지 않는 고로 어머니께서 쓰시던 것을 물려 받은 이 장갑은 저와 두 번의 겨울을 보냈습니다. 어머니와 함께 보낸 시간까지 합치면 적이 오 년은 되었을 것 같습니다. 제 수명을 채우지 못하고 버림 받는 작금의 소비 생활 속에서 이 녀석은 나의 굳건한 친구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시리디 시린 날들을 함께 보냈습니다. 이 장갑..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