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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칼럼

모에화, 욕망의 재구성

모에화, 욕망의 재구성


함문수

 

 

검찰총장 모에

 지난 3월 크림 공화국이 우크라이나에서 독립을 선언한 직후, 인터넷에 가장 화재가 되었던 것은 우습게도 크림 공화국의 신임검찰총장의 미모였다. “김태희가 밭을 매고 있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로 이 지역에 자자한 평균 미모의 우월성(?)은 주요 공직자에게도 여지없이 적용이 되나보다. 덕분에 크림 공화국의 나탈리아 포클론스카야 검찰총장의 유투브 영상은 다른 의미에서 엄청난 조회수를 기록했다. 덩달아 재미있는 현상은 일본과 한국 등지에서 그녀의 미모를 찬양하는 캐리커처가 엄청나게 유행했다는 점이다. 이것이 얼마나 국제적으로 화제였는지, 크림 공화국의 현지 언론사는 나탈리아 검찰총장과 인터뷰에서 이를 언급할 정도였다.

 

미소녀 숭배와 모에 현상

 한 대상을 귀엽고 사랑스러운 미소녀 등으로 바꾸는 형태를 흔히 모에화라고 한다. 모에화는 일본의 서브 컬쳐 소비자들의 취향, 또는 취향의 대상 중 하나의 형태를 일컫는 개념이다. ‘-화(-化)’가 붙은 단어가 응당 그렇듯 이 모에화라는 개념은 ‘싹트다’라는 의미를 가진 일본어 ‘모에(萌え)’라는 개념이 실현된 상태를 지칭한다. 모에는 특정한 대상에게서 강렬한 매력을 느끼는 마음의 상태, 또는 그러한 매력을 품어내는 대상의 형태나 조건 등을 말하는 일종의 형용사로 사용되는데 그 용례나 적용대상이 폭넓기 때문에 고정적인 정의를 내리기가 어렵다. 

 

 일부 사람들이 이 모에를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미소녀 취향’으로 일축하듯, 재패니메이션에 자주 등장하는 미소녀와 모에의 상관성은 짙다. 그러나 모에가 단순히 만화에 나오는 아리따운 여성에 대한 동경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모에라는 개념이 통용되기 이전에도 일본 소년만화에서 미소녀의 등장은 낯선 것이 아니다. 남성 소비자가 주류를 이루는 소년만화의 여자 주인공, 또는 미소녀의 역할은 서사를 이끄는 등장인물임과 동시에 소비자의 욕망을 결합하는 매개가 된다. 그러나 미소녀, 또는 미녀의 등장은 단지 일본 만화에만 전유하는 것이 아니며, 헐리우드 영화뿐 아니라 대부분의 통속적 이야기 매체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나는 장치다. 그러나 모에는 일본의 미소녀 만화에서 발현되는 특수한 현상이거나 적어도 일본 만화에 기원을 둔 어떤 미적 태도를 의미한다.

 

 그렇다면 미소녀 모에와 전통적인 방식의 미소녀/미소년 숭배의 근본적인 차이점은 무엇일까? 여기에 대해 만화 연구가 김낙호 씨는 이렇게 말한다.

 

 

예를 들어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레이’라는 캐릭터를 좋아한다면, 그냥 팬일 뿐. 하지만 붕대를 맨 미소녀 캐릭터를 좋아하는 것이고, 하필이면 레이가 그 결정체이기 때문에 좋아한다면 그건 어엿한 ‘붕대소녀 모에’다.(중략) 80년대의 애니광들은 『오렌지로드』 마도카의 팬이고 민메이라는 아이돌을 숭배했지만, 2000년대의 오타쿠들은 『오네가이 티쳐』 미즈호를 보며 누님 모에를 한다는 식의 차이다. 특정한 이야기 속에 놓인 캐릭터 전체를 하나의 동경의 대상으로 놓기보다, 그 캐릭터가 지니는 특정한 구성요소에서 쾌감을 느끼는 구조 말이다.[각주:1]

 

 같은 글에서 그는 모에는 “원형적인 요소들의 파편을 긁어모아서, 그 속에서 자신만의 이상향을 조합하여 맞추어내는 방법”이라고 정의한다. 모에가 과연 ‘방법’에만 국한되는가라는 의구심이 차치하더라도 그의 설명은 적절하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감정이입하는 인물과 인격적인 관계를 맺는다. 캐릭터의 생김새나 말투, 버릇, 개인사는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고유한 개성을 이룬다. 물론 캐릭터의 숭배자는 그것이 가진 특정한 매력을 주장하거나 그가 가진 다양한 속성에 대해 찬반을 표할 수는 있다. 그러나 인물의 고유한 개성을 임의로 변경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숭대의 대상은 숭배자의 호오와 독립해서 존재하는 인격으로 대우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에의 대상은 모에를 느끼는 자와 인격적인 관계를 맺지 않는다. 모에의 대상이 되는 캐릭터는 하나의 개성을 가진 인격이기보다는 특정한 매력요소의 집합이다. 모에는 등장인물의 복잡다단한 특징 속에서 소비자가 원하는 특징만을 추출함으로써 발생한다. 예컨대, 어떤 이가 안경모에라면 오로지 안경을 낀 대상에만 반응한다. 또한 병약모에를 가진 이들은 신체가 다치거나 질병을 앓고 있는 소녀 등에 매력을 느끼는 식이다. 이때 해당 캐릭터가 어느 만화에 등장했는지, 또는 어떠한 개인사를 갖고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모에 현상에 이르면 대상 자체를 숭배하는 것이 아니라 대상에게서 모에를 일으키는 특징만을 뽑아내 소비하는 형태로 나아간다.

 

모에화

 모에는 단지 대상에 대한 주관적인 소비에 그치지 않고, 대상을 적극적으로 자신의 취향에 굴복시키려는 행위로 발전한다. 이것을 모에화라고 한다. 모에화는 대상을 그대로 두지 않고 자신의 욕망을 투영하여 정체성을 변경하는 이차 창작의 형태를 띤다. 따라서 모에보다 능동적인 행위이며, 더 파괴적이다. 모에는 해당하는 특징을 가진 대상을 그것이 있던 맥락에서 이탈시켜 하나의 범주로 재편성하는데 그친다. 그러나 모에화는 전혀 관계없는 대상에게도 모에한 속성을 부여한다.

 

 모에나 모에화의 대상은 문화 일반으로 확장된다. 모에화의 대상은 연예인이나 유명 인사부터 지하철이나 의류 브랜드처럼 무생물이거나 추상물일 수도 있다. 국내에 유입된 모에화 놀이는 급기야 세종대왕이나 이순신과 같이, 역사적으로 추앙받는 인물까지 헐벗은 미소녀로 재가공하면서 네티즌들의 비난을 사기도 한다. 모에화는 또한 이미지의 패러디나 캐리커처와는 다르다. 의도가 어찌되었든 패러디나 캐리커처가 대상의 특징이나 맥락에 충실한 것에 비하여 모에화는 탈맥락적이며 대상의 외형에만 집착한다. 한편 모에화는 단순한 미화와도 조금 다르다. 미화는 대상에 대해 어느 정도 호의적인 태도도 갖고 있는 것과 달리, 모에화된 대상은 철저하게 그것을 바라보는 소비자의 욕망을 따른다. 예컨대, 세종대왕이나 지하철을 미소녀로 표현하려는 행위는 대상을 미화했다기보다는 모에화에 가깝다.  

 

 앞서 언급한 크림 공화국의 검찰총장 나탈리아 포클론스카야의 모에화는 국지적인 영역을 넘어 국제적인 반응을 이끌었다. 이것은 필자에게 충격적 사건이었다. 왜냐하면 그녀의 모에화는 조심스럽게 판단해야할 국제적 정황을 철저히 무시했기 때문이다. 모에의 시선은 주관적인 욕망에 충실했고 그녀를 제복을 입은 미소녀로 변모시켰다. 모에화는 대상과의 거리두기를 거부하고 열광의 주물 속에 집어넣어 새로운 정체성을 부여한다. 모에화에 대해 알지 못하는 나탈리아 포클론스카야는 머나먼 섬나라 팬들의 호응을 웃어넘기고 말았지만, 실제 인물과 모에화된 대상 사이에 존재하는 정체성의 혼동은 정치적으로 악용될 수도 있었다.

 



대장군사전도(大將軍思戰圖),김화현, 2008




토르소 04, 이윤성, 2013

 

주관의 미적 태도

 이러한 관점에서 보자면 모에 취향은 일종의 미적 태도로 볼 수 있다. 모에는 대상의 특성을 원소 단위로 분해하고, 다시 그 원소들 중 자신의 기호에 맞는 것만을 취사선택한다. 모에는 검색과 수집을 통해 이미지의 쇼핑 형태로 나아간다. 또한 모에화는 세계를 객관적인 의미를 무너뜨리고 자신의 욕망을 반영하는 사물로 재구현한다. 

 

 이러한 주제로 작품 활동을 전개하는 작가들이 더러 있다. 대표적인 작가라고 할 수 있는 일본의 MR.은 10살 이하로 보이는 어린 소녀를 그리면서 모에화 개념을 정면으로 담아내고 있다. 그의 그림 속에서 소녀들은 특유의 귀여움과 발랄함, 변태적 성욕과 서정성을 드러냄으로써 로리타 콤플렉스보다 풍부한 ‘로리콘’의 정서를 전달한다. 

 

 국내 화가 중 김화현 작가와 이윤성 작가을 서로 비교해서 주목해보는 것도 흥미롭다. 이 두 작가는 여러모로 상대관계에 놓이는데, 모에 현상을 어떻게 미술에 접목시킬 것인가에 대해서도 서로 대척점을 보인다. 

 

 먼저 김화현 작가를 살펴보자. 김 작가의 <대장군사전도>(2008)의 인물은 순정만화에서 볼 수 있을 법한 남성 히어로다. 그들은 날렵한 몸매와 칼과 같은 오브제를 통해 성적 매력을 암시하면서 정적인 움직임과 부드러운 시선을 통해 순종적인 모습을 보인다. 즉, 그림의 인물이 무대 위의 배우처럼 기꺼이 감상자의 즐거움을 위해 포즈를 취하고 있는 것이다. 김화현 작가는 자신의 상상, 또는 이상적인 아름다움에 복무하는 남성들을 화폭에 담음으로써 모에화의 개념을 적극적으로 포섭한다.

 

 반면 이윤성 작가의 <토르소>(2013) 연작은 모에화의 형식을 차용하는 듯 보이지만 모에적 접근에 거리를 두고 있다. 이윤성의 이미지는 자기모순적인 면모가 있다. 예컨데 화면을 가득 채우는 풍만한 육체와 발랄한 표정을 짓고 있는 미소녀는 성적 흥미을 유발한다. 그러나 절단된 팔다리와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선혈은 어딘지 모르게 대상을 이질적인 것으로 보이게 한다. 그렇다고 인상이 기괴하거나 강렬해서 변태적인 욕망과 강하게 결부되는 것도 아니다. 소년만화적 갈무리는 비현실적인 대상에 밋밋한 느낌을 주고, 나와 상관없는 거리에 대상을 위치시킨다. 그래서 이윤성 작가의 미소녀는 감상자와 끈적끈적하기보다는 쿨한 관계를 유지한다.

 

 

문화 속 모에 읽기

 앞서 말했듯 모에를 이웃나라의 하위문화 영역에서만 향유하는 어떤 것으로 보아서는 곤란하다. 지난 세기에 오타쿠 문화가 그러했던 것처럼 모에 현상은 근시일 내에 국내에서도 일반적인 개념으로 자리 잡으리라 본다. 이미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모에 현상은 이미 익숙한 것이 되었다. 사실 인터넷 문화의 습성을 생각해보면 모에 현상이 그렇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도 아니다. 모에의 취향은 기존에 있던 것들에서 특정한 성질을 추출하고, 이를 범주화해서 수집하는 과정에서 발견된 현상이다. 그런데 검색과 수집은 이미 인터넷 쇼핑에서도 익숙한 행위가 아니던가. 

 

 문제는 모에적 소비경향과 미적 태도에 얼마만큼 거리를 둘 것이냐에 있다. 모에 현상은 사소하고 가벼운, 기껏해야 소규모 커뮤니티 안에서만 통용되는 비틀린 유머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진지하지 않음’을 구실삼아 모에/모에화가 대상에 얼마나 파괴적인 방법으로 접촉하는가를 생각한다면, 모에 현상의 확산에 조심스러운 태도를 가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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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의 콘텐츠 검열로 인해, 본 미술블로그인 컨셉오브테이스트(http://beelzubul.blog.me/)에 올릴 수 없게 되어 오픈스토리지에 게재합니다.

  1. 모에라는 취향문화를 바라보기, 김낙호, 문화저널 백도씨/창간호, 2006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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