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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tional Doragraphycs/이슈번역

저널리즘의 죽음-완, 우리가 해야할 일



그러므로 오늘날 저널리즘은 그것이 실천해야할 보도의 권리에서 진짜 문제를 갖고 있다. 이는 미국의 외교문제와 군국주의에 대한 보도를 할 때 가장 심각하게 나타난다. 공화당이나 민주당의 지도부는 하나 같이 미국이 007이라도 되는 양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미국은 당국이 이스라엘처럼 안보의 권리를 양도한 나라를 제외하고, 국제안보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은 어떤 나라도 이러한 권리를 행사하지 못하게 막고 있다. 그러나 이것에 관한 보도는 결코 뉴스 미디어에서 다루어지지 않고 있다.


따라서 미국은 다른 나라를 침공할 수 있는 권리를 갖고 있다는 생각이 성립된다. 때로는 사건이 일어난 다음에, 때로는 사건의 이전부터 미국의 수뇌부는 자신의 침공을 정당화하는 어떤 변명거리를 만들어낸다. 그러나 언론에서 이러한 정당화가 전혀 논쟁거리가 되지 않고 있다. 이게 바로 오늘날 우리 시대의 저널리즘이 취한 방식이다. 이러한 형태의 저널리즘은 단지 정치적 엘리트가 주고받는 말싸움의 놀이를 정확하게 보도하는 것만이 저널리스트들의 할 일을 다 한 것이라고 보고 있다.


만약 한 저널리스트가 미국의 침략권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면 그들은 그의 의견을 “비전문적”이라거나 “이념적”인 것으로 치부하거나 또는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이라며 비웃을 것이다. 그들에게 있어 저널리즘이란 “정확하게”, “객관적”이고 “기계적 중립”을 지키며 도보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바로 이러한 언로 업계의 인식이 저널리스트로 하여금 그러한 질문을 던지지 못하게 만들고 있다.


프로페셔널 저널리즘은 1960년대부터 70년대 사이에 전성기를 구가하였다. 그러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당시 저널리즘은 기업의 영향력을 위해 봉사하던 역할에서 최대한 멀어져서 그 시대에서 누릴 수 있었던 약간의 자치권을 보장받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권리는 당시 정치적 공간을 만들었던 대중운동의 결과에 비롯된 것이었다. 그러나 그 이후로 시민 운동은 축소되었고, 많은 우익인사들은 소위 “자유주의적”인 미디어의 재량권은 무엇이든 줄여야 한다고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저널리스트들이 거대한 사업이나 펜타곤을 비난하는 데 보다 신중하게 만들려면 저널리즘을 몰아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러한 전략은 성공했다.


이러한 전략은 저널리즘의 원천을 훼손할 뿐만 아니라 저널리즘의 콘텐츠를 길들이거나 상업화하는 것, 또는 심지어 저널리즘을 위협하는 중대한 위기를 초래했다. 


이러한 역사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야기한다. 프로페셔널 저널리즘은 자신의 소멸을 눈 앞에 두고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


백 년 전 메이저 신문사의 사주는 막대한 수익을 벌어들였다. 기실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들 중 많은 이들이 과거에 언론사를 운영했었다. 오늘날의 상황은 매우 다르다. 언론사 사주는 이제 그렇게 돈을 벌지 못한다. 그들은 아마돈이나 코치 인더스트리스(Koch Industries, 역주: 미국에서 제주, 유통, 투자 등 다양한 방면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 기업)를 통해 돈을 벌어들인다. 이러한 기업들은 자신의 주요한 산업에 경제적 이익을 주는 정책을 두둔하기 위해 신문사를 이용한다. 이것은 저널리즘과는 매우 다른 영역이며, 내 생각에 이 영역은 많은 부분에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저널리즘의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실존적 문제는 모두 저널리즘을 자립적이고 경쟁력 있도록 만들어줄 것인가 라는 질문을 동반한다. 독립적이고 재정적인 경쟁력을 갖춘 저널리즘이 우리를 공공의 영역으로 이끌 것이며, 우리가 참여해야 할 사안과 세상이 돌아가고 있는 형편에 대해 알려줄 것이다. 그러면 이 나라의 정책 입안자들은 무한한 신뢰성에 힘입은 저널리즘의 비판을 받아들일 것이다. 과거 제퍼슨이나 메디슨, 톰 패인, 벤 프랭클린, 워신튼과 애덤스, 해밀턴과 같은 정치가들이 저널리즘의 비판을 받아들인 것처럼 말이다.


위에서 언급한 정치가들은 믿음직한 언론의 체계가 잡혀있지 않으면 자치 정부는 제대로 운영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들 중 어떠한 사람도 “시장”이나 영리적 동기가 언론의 시스템을 올바르게 굴러가게 할 것이라고 믿지 않았다. 제퍼슨의 말을 인용하자면 부유한 사람은 사회를 움직일 수 있는 정보를 언제나 접할 수 있지만, 민중이 스스로 정치에 참여하는데 필요한 정보를 얻으려면 정부보조금을 만들어 비영리 신문사를 만들어야 한다. 우리는 언론사를 위한 재정을 기본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이것이 오늘날 위기를 타계하기 위한 나의 결론이다. 우리는 사회의 일원으로서 독립적이고 비영리적이며, 비상업적이며 검열 받지 않는 언론을 만들기 위해서, 해야할 일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러한 언론은 미안보국의 행태에 대해 다룰 것이며, 시카고 시에서 건설업자들과 기업, 은행이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그리고 그들이 무엇을 꾸미고 있는지에 대한 뉴스를 다룰 것이다. 이러한 뉴스는 집에서 블로그를 운영하는 개인 미디어로서는 꺼낼 수 없는 것들이기도 하다.


물론 이것은 어려운 일이다. 우리는 책임감 있는 뉴스룸을 원한다. 그러나 누군가는 이를 망치려 할 것이고, 또 다른 누군가는 이를 위해 돈을 지불할 것이다. 이것이야 말로 공공정책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점 중 하나이다. 그러나 사실상 미국의 헌법재판소는 일찍이 언론의 자유를 규정하면서 미국의 헌법체계는 자유 언론의 존재를 인정하고 있다. 자유시민으로서 가장 첫 번째로 해야 할 일은 바로 대중의 언론 시스템을 보장하는 것이다. 이러한 언론 없이 그 어떤 것도 존속할 수 없다. 그리고 이미 우리는 그러한 위기를 겪고 있는 것 같다. 





*이글은 소셜리스트워커.org에 실린 로버트 맥키스니의 <저널리즘의 죽음>을 번역한 것입니다.